철안 스님과 함께한 집중수행.
아주 먼 옛적에 사람들이 맨발로 다녔다. 어느 날 여왕이 돌밭을 거닐다가 날카로운 돌에 발이 다쳤다.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아픈 여왕은 대신들을 모두 불러 놓고는 만민을 위해 전국토를 가죽으로
모두 덮을 것을 명령했다. 그때, 현명한 대신이 여왕 앞으로 나아가 보다 간단한 방안을 제안했다.
“전 국토를 가죽으로 덮는 것 보다 모든 사람의 발바닥을 가죽으로 덮어씌우는 것이 낫겠습니다.”
여왕은 이에 동의하였고, 이것이 바로 구두의 유래이다.
사람들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토를 가죽으로 덮어씌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살기 위해 우리의 세상 전체를 덮으려고 하곤 한다. 훨씬 더 효과적인
삶의 방법은 세상과 직접 접하는 부분만을 보호 하면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법은 신발처럼 우리를 보호한다. 하지만 신발은 단지 외부세상인
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데 그치지만 부처님의 수행법은 우리를 안팎의 모든 세계로부터 보호한다.
우리가 바깥세상을 더욱 분명히 볼 수 있기에 보호받고 우리가 반응하는 방법을 알아차림 함으로써
안팎의 세계로부터 보호받게 된다.
부처님의 법은 해로운 충동에 빠지지 않게 하고 유익한 행동을 하게금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준다.
세간적인 일들은 모두가 단 한생을 위한 것이다.
이 한생은 전체윤회에서 눈을 한번 깜빡거리는 찰나만큼 짧은 시간이다.
세간적인 일로 얼마나 바쁘건 정말로 길고 긴 윤회라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기에
윤회의 굴레를 위해서도 부처님 가르침과 법에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을 하면서 얻는 교훈의 하나는 삶의 가장 순수한 단순화이다.
반면, 대도시에서는 도처에서 넘침이 자신을 위협한다. 도시는 인간을 정착하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야만성을 드러낸다. 단추만 누르면 되는 사회 속에서 사계절은 사라졌고, 낮과 밤도 사라졌다.
도시는 사면이 벽으로 쌓여 있는 주차장이고 사는 집은 감옥이다. 문명은 이 건축물 속에 퍼져 있다.
도시의 무게에서 결국은 벗어나지 못하여 소음과 속도, 인공적인 것이 주는 매일 매일의 흥분,
모든 형태의 독이 주는 덧없는 약속을 외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교사는 콘크리트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달걀이 닭에서 나오고 감자는 사과와 달리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시골 농가로 데리고 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들과 활력 있는 사람들이 인간을 깨우쳐 그 본질을 되찾아 초월과 진보,
검소함을 완전히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과학문명과 모험에 이끌린 많은 서구 사회에 다시 활력을 주고 깨우침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소위 원시(자연)문명을
찾는다. 원시문명은 원시적이 아니다. 단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자연과의 균형에
주위를 기울이는 문화이다.
우리는 아주 적은 것을 가지고도 살 수 있고 잘 견딜 수 있다. 이러함은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기술위주와 물질주의의 함정에 빠진 21세기 인간이 잊고 있는 여러 가지 것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국가의 정치가는 국민을 마취시키고 유순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TV, DVD, 컴퓨터 정보,
스포츠 같은 각종 마약을 매일 국민들에게 복용시킨다. 정부의 금고를 채워주는 담배나 술은 ‘건강에 해로움,
적당히 마실 것’ 등의 건강을 걱정한 것처럼 이중적 독설로 쓰여 있다. 정부가 마치 국민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이고도 육체적인 중독은 국민으로 하여금 본질적인 것을
망각하며 어리석고 사납게 만든다.
지구를 바꾸는 데는 수천 년이 걸리지만 인간의 변화는 부처님 수행법으로 몇 년이면 된다.
수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하루 한 끼, 적은 잠,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나머지 시간은
몸-마음의 현상을 알아차림으로 보낸다. (무얼 하고 있나, 어떤 상태인가) 그럼으로써 하찮은 일,
쓸데없는 분주한 것들, 수다스러움, 게으름에서 벗어나 본질만을 취하게 된다. 단순, 적음, 멈춤의 여유,
침묵은 자신을 다시 중심을 잡도록 한다.
수행은 침묵과 고요와 지혜를 좋아하며 섬세하게 짜인 천과도 같다.
꽃이 져야 열매가 열린다.
철안 스님과의 집중수행도 이제 마지막 시간을 남기고 있다.
그동안의 시간은 결코 도피이고 혼자만의 시간은 아니다.
더 많은 것을 포용하고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2009년 7월 10일 고요와 적막함이 있는 집중 수행처에서.
-비구 붓다락키따
첫댓글 오랫만에 좋은 글 올려주셔서... 우리 회원님들 대표로 감사인사드립니다. 여여하시기를.....
*^ ☆~ 기쁜 소식! 기다림였어요~~~회향~잘 하시고 사뿐히 오소서~~☆^*
자연과 함께 벗하시며 좌선하시는 모습이 모든것에 초연해지시는 모습일것입니다/. 조은소식 접하니 정말 기쁨니다 ,^_^
_() () ()_ 눈맑은 수행자들의 조용한 깨우침의 말씀!!! 침묵은 더큰 법문 이었슴을 !!! 보여짐이 아닌 우리 모두의 느낌으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