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카니발의 공식적인 역사는 17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이후 박해를 받던 카니발은 18세기에 이르러 베니스 카니발을 모방해서 다시 열리기 시작한다. 가면과 가장무도회복을 차려입은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이 거리에서 축제를 벌인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던 프랑스 군대가 쾰른을 점령한 후 일반 시민들도 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군대가 프로이센에 의해 쫓겨난 후 엄격한 규율과 안정을 추구하던 새로운 주인은 카니발을 금지시켰지만, 쾰른 시민들은 이를 무시했다.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빠른 1823년 ‘카니발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창립되었고, 같은 해 2월 10일 ‘카니발의 영웅 즉위’라는 주제로 ‘장미의 월요일’ 행진이 있었다. 이 행렬에 참석한 단체들은 ‘붉은 불꽃’을 비롯한 4개 시민 단체였다. 이들이 카니발을 부활한 것은 자유 제국도시 쾰른의 영광을 회상하기 위해서였다. 위원회의 주도로 카니발이 열리면서 카니발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내용도 다양해졌다. 1883년부터 일반 시민 중 한 명은 카니발 기간에 ‘왕자’ 또 다른 사람들은 ‘농부’와 ‘처녀’로 분장할 수 있게 된 것이 그것이다. (쾰른 대성당에는 동방박사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왕자, 농부, 처녀는 3명의 동방박사를 패러디 한 것이다.) 1902년에는 ‘농부’와 ‘처녀’를 호위하는 호위대, 4년 후에는 ‘왕자’ 호위대가 창설되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후 카니발에 관련된 노래와 만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노래들은 카니발 뿐 만 아니라 독일 축제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또다른 사진들..
http://blog.daum.net/skcoskc/14954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