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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1월26일 주일오전설교
성경합독: 이사야25장, 사도행전9장
성경낭독: 시편118:14-23절
설교본문: 사도행전4:1-18절
설교제목: 복음의 증거는 막아설 수 없다.
예배찬송: 143장(시47편), 353장(시131편), 4장(시3편), 357장(시134편).
시118편 14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행4장 1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목, 미문에 앉았던 앉은뱅이가 사도들의 명령을 따라 일어나 뛰었고, 성전 안에 들어가 사도들이 전하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거요 표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조상들과 모세,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라는 담력 있는 복음의 선포 앞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성취라는 말씀 앞에서, 구약에 정통했던 유대인들은 설득되었고 예수님께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회심한 것이 아니라 오순절 날 삼 천명이 회심하여 큰 무리가 형성되었듯이 이번에는 남자만 오천이나 되는 수가 교회에 가담하는 큰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또한 사탄의 공격 또한 발발합니다. 주께 속한 사람들이 주님의 교회에 가담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대규모의 회심이 벌어지기가 무섭게 움츠려 있던 악한 세력이 슬그머니 악마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원수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두려워 뒤로 물러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복음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세력을 우리는 마땅히 예상해야 합니다. 1-4절을 봅시다.
1. 원수의 공격이 시작되다.
1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앉은뱅이가 나음을 입은 이적과 함께 복음이 공중에서 선포되고 대규모의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회심하는 일이 벌어지자 악한 무리들은 즉시 행동에 돌입했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관리들과 사두개인들이 몰려왔습니다. 사도들이 하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통해서 대대로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성전을 통해서 나오는 종교적 권력과 권세로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성전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도들의 가르침을 미워하여 제지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2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라고 말합니다. 저들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미워하고 싫어했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 성전관리인들은 자신들의 권한으로 싫어하는 복음을 막을 생각으로 달려 나온 것입니다. 성전관리를 책임졌던 이들의 시선에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사도들은 의심 가는 불순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로마식민지 시절이었고, 각종 사건과 사상들이 난무하는 때에는 권위 있는 교훈을 그대로 유지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여겼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부인하는 몸의 부활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는 혐오감을 가지고 제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을 사독의 후예들이라 자부하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껍데기를 둘렀지만 영혼불멸조차 믿지 않는 유물론자들이었습니다. 부활조차 믿지 않는 성전의 지도자들과 관리들의 모습을 보면, 당시 교회가 얼마나 끔찍한 혼란 속에 머물러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교회전통을 내세워 믿음을 부인하고, 교리를 변형시켰습니다. 멸망의 원수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고 무지로 인해 망하고, 굳게 믿었던 것들이 파멸로 이끄는 올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전 맡은 자’는 제사장 중에 선발된 인물이거나 아니면 로마군대의 지휘관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대지역은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언제고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관리지역이었고, 반란 시에 인공적으로 천혜의 요새가 되는 성전이 반란군의 주둔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안토니오 요새 뿐 아니라 성전을 관리하고 경비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혼란이나 분란을 방지한다는 목적을 핑계로 세속적인 권력의 도움을 받은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로마제국의 평화유지를 이유로 자신들의 권리와 가르침을 보존하기 위해 열을 올렸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던 사도들은 잡혔고 옥에 갇혔습니다. 제자들은 잡혀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전한 복음은 갇히지 않았고,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의 심령에 역사하였습니다. 말씀은 박해나 폭력의 어떤 방해에도 변함없이 전파되고 역사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메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딤후2:9). 사탄과 악한 무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여 얼마든지 광분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양떼를 모으시는 일이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있어서는 완전히 무력할 뿐입니다. 비록 성도들이 박해를 받거나 어려움을 겪는 일이 실제일지라도, 두려움과 공포로 위협할 수는 있어도 육체에 고통을 가할 순 있어도 영혼을 해하거나 멸할 수 없습니다.
권력자들의 손에 붙들리고 갇히는 연약한 사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입술과 목소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의 역사를 선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천의 숫자를 더하셨습니다. 물론 이 숫자는 새롭게 오천 명이 더해 졌다기 보다는 전체 성도들의 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몸을 가두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력에 의해 붙들렸지만, 성령이 강림하기 이전의 도망하던 제자들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령께서 담력을 주셨고 그들의 입에 증거 할 말을 심어주셨습니다. 5-12절을 봅시다.
2. 하나님께서 담력을 주시다.
5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들을 잡아 가둔 다음 날에 관리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공식적으로 모였습니다. 성전주변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변화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기 위해 서둘러 모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지시키고, 말살시키기 위해 온갖 어떻게 온갖 수단들을 동원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원수들에게 두려운 마음으로 멈칫하는 시간을 두지 않으셨다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가두고 말살시키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들을 때에 따라 제어하시는 주권자가 되십니다.
대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의 문중 사람들까지 모두 회집하여서 사도들을 세워서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름’은 권위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전과 하나님의 영광을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라고 생각하고 행세하고 있었습니다. 답이 뻔한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심문함을 통해서 사도들을 질리게 만들고, 힘을 빼서 가르치는 일을 멈추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져 다시는 이러한 일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궁하며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한 이들의 교활한 술책과 방법을 허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이 원치 않은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도들 중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저들의 심문에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워 뒤로 물러나고 복종할 것을 기대했던 저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전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학력과 성경 전문가들에 둘러싸여 있던 베드로는 조금의 구김이나 쭈뼛거림도 없이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같이 않고 권세가 있었던 것처럼,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권세를 드러내듯 능력 있게 증거 하였습니다. 9, 10절입니다.
9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일에 대해서 자신들의 관리의 권과 재판관 행세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 악한 마음, 그 핵심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는지 묻는 것에 대해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던 예수님은 부활하여 살아계시고, 그 분의 권능과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쳤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이름도, 부활의 교리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담대하게 말씀대로 답하고 증거 하였습니다. 이어서 말합니다. 11절입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유대문화에서 건축자들은 자주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것과 연관된 표현입니다. 지도자들이요 직분자였던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이 돌’, 즉 약속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건축자들에게 버려진 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너희 모두에 의해서 버려졌다고 말함으로써 당시의 직분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심문하는 이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저들의 무지와 죄악,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하고 부정한 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멸시하고 버린 바로 이 예수님께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말은 선명합니다. 사도들을 둘러 서 있는 너희들이 박해하고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신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건물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 곧 가장 큰 기초부분에 놓여 있는 두 벽을 지탱하는 아주 큰 돌, 서고 넘어짐의 중심, 살고 죽는 것,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의 토대가 되게 하셨습니다. 시편118:19-22절에서 말합니다.
19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시편118편에서는 거부당한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대적은 적대하는 이방나라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여기에서 언급하는 대적은 유대 지도층이요, 당대의 교회의 우두머리들과 직분자들이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의 설교의 결론이 나옵니다. 구원을 의지할 수 있는 다른 것은 도무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에는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제공할 방도를 가진 분은 예수님 외에는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방도를 가르쳐야 할 직분자가 되고 유대인의 지도자가 된 당신들이 메시야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생명에서 떠난 일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우리를 구원받게 할 다른 이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당신들이 버리고 거절한 예수 그리스도를 회개하고 믿어야 할 것이라는 선언인 셈입니다. 원문에서는 완전히 배타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필연적이며, 다른 이름은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사람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유일한 이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요 아버지와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생명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복음을 가르치는 방해하고 말살하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제사장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유일한 이름, 곧 예수님을 박해하고 배척하는 일은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어야 할 백성들에게 담을 두르고 막아서는 악행이며, 이로 인해 갑절로 정죄당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변론과 선포를 들은 이들은 당황하였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무시하였다가 크게 놀랐습니다. 13-18절을 봅시다.
3.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1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심문하던 이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말함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학문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설득력 있고 거침없는 논증 앞에서 놀라고 이상하고 여겼습니다. 학문이 없다는 말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유대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율법을 읽고 쓰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학문이 없다는 말은 ‘종교적 교육’을 가리킵니다. 당시에 교육은 종교교육을 빼고는 제대로 된 교육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체계적으로 수련 받지 못한 사람인데도 성경에 대하여 선명하고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앉은뱅이였다고 나음을 입은 사람이 증인으로 옆에 서 있는 까닭에 반박하고 비난할 거리가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한 일은 명백하였고, 누구나 다 알았던 앉은뱅이의 치료는 사도들이 가르치는 복음을 드러내는 표적으로 부인하기 힘들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딜레마에 빠져버렸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에게 예수님과 부활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도록 틀어막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무리들에게 이미 표적은 알려졌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인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기적이 너무도 명백하기에 부인할 방법이 없어 곤란에 빠져버렸습니다.
만약에 저들에게 표적을 부인할 수 있는 티끌만한 빌미가 있었다면 아무거리낌도 없이 안면몰수하고 일어난 표적을 부인하고 반박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무도 선명한 방식으로 사도들의 사역에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증인이 되어 진 상황에서 부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틀어쥔 이권이 상실될 위험에 대하여 똘똘 뭉쳐서 고의적으로 사도들을 처리하고, 복음을 거부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지만 부글부글 끓는 적개심을 삼켜야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저들은 함께 합의하여 사도들을 위협하였습니다. 17, 18절입니다.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강퍅하고 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악인들과 대적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의 핵심이요, 교사들이요, 직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는 천국 문을 막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있었습니다. 바른 믿음이 없는 때에 직분을 맡은 이들이 얼마나 악한 역할과 끔찍한 상태로 주의 뜻에 반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바로 서지 못할 때에는 중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일수록 더욱 주제넘게 광분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치리하는 높은 자리에 악한 이들, 곧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요, 중보이심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이 앉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권세로 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겸손하고 처신해야 합니다. 주어진 직분과 역할을 주의 뜻을 드러내는 일에만 헌신해야 합니다. 어떤 직분도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넘어설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만약 권위자로 자처하는 직분자들이 자신의 권위를 넘어 말씀을 부인하며 한계를 넘어 행할 때에는 순종을 거부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왜곡된 권위에 순종하는 일은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탄은 복음의 진리가 증거 될 때 모든 능력과 수단을 동원하여 대적하며, 힘써 복음을 저지하고자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담력을 주시며 올곧게 복음을 전하도록 힘을 주실 것이며, 사역자들은 약하고 갇힐 수 있으나 복음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고 힘입게 증거 되어 갈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