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급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숙제를 냈습니다.
숙제의 반대급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체벌(영원성 있는)이었습니다.
그 숙제도 도저히 그 학생들 수준으로는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어느 누구도 그 과제를 완성할 수 없었고 모두 운동장으로 집합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들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 약속을 이행해야겠다.
모두 엎드리거라. 나의 공의가 이것이다."
선생님이 팔을 걷어 부치고 몽둥이를 집어든 순간 그 학급의 일원이던 담임선생님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제시를 합니다.
"아버지 제가 대신 맞겠습니다. 도저히 우리 친구들이 이룰 수 없는 과제이었습니다. 그 잘못을 저에게 돌려주세요."
아버지는 그 말이 그럴 듯 해보였습니다.
"그래 좋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지만 너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겠다.
나의 아들 너와 함께 나의 공의를 실현하겠다."
그 이후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 사건의 위기를 모면한 몇몇학생들은 순수한 마음에 그 선생님의 아들을 존경하게 되고 따르게 되며 마음속으로 찬양하기도 합니다.
그의 온전한 희생에 순수한 마음으로 감동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좀더 성숙하고 냉철하고 지적인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자질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우리 선생님이 이전에 행한 처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어. 우리 모두 그선생님의 배경, 출신학교 등 과거를 들추어 보자"
이해하시겠습니까?
요즘 그야말로 말세에 판을치고 있는 안티기독세력들은 이와같은 의문선상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그들은 동호회를 만들고, 더나아가 조직을 구성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끊임없이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분하고 억울하게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저들이 불쌍하고 가련하게 느껴지십니까?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은 저들의 논리와 이성에 찬동하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선한 양심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저들만의 책임일까요...
만약 잘못된 신학과 성경의 이해로 우리의 공의의 하나님을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든다면 과연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일까요?
바로 다음에서 우리 성경이 표현하고 있는 끌 수없는 지옥불의 의미를 찾아보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악인도 영원한 생명을 가질까요?”
이 질문은 너무나 엉뚱하게 들리는 질문이지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이 질문에 대해서 “네”라고 대답하는 이유는, 불교나 각종 토속신앙에서 말하는 지옥을 그들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서 뱀이나 구렁이에 감긴채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된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들은 악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죽어서 귀신이 되어 허공을 방황하게 된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들은 악인은 죽는 순간에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지글지글 타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경은 말하기를, 악인들은 지옥의 형벌인 유황불에 의해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불은 영원토록 불타는 것이 아니라 그 끝이 있으며, 악인들도 생명을 유지한채로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 유황불을 통하여 영원한 사망에 이르며, 결국에는 재가 되어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옥에 대한 진리인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만드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이 지구가 궁극적으로 의인들을 위한 처소가 되도록 마련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 베드로는 이 땅이 굉음을 내며 폭발하면서 불타고 있는 장면을 설명한 후에, 의로 가득찬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13.
쥐불놀이(전통 민속놀이) : 이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잡고 들판의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의 알을 비롯한 모든 잡충(雜蟲)을 태워 없앨 뿐만 아니라 타고 남은 재가 다음 농사에 거름이 되어 곡식의 새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소망이 담겨 있다
궁극적으로 악인들은 이 지상에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사들에게 특별히 약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4:13).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죄의 저주를 정결케 한 후,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가야만, 원래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셨던 계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이며, 지구는 완전한 사람들을 위한 완전한 처소로 회복될 것입니다.
둘째로, 악인들은 이 지상에서 살 수가 없으며,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영생의 선물을 받은 의인들만이 그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그러나 마음 가운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멸망당할 것이다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이러한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단순한 진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들에게는 결코 약속된 삶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망이라는 정죄가 내려져 있을 뿐입니다.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악인들도 지옥의 고통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고 믿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결코 의인들에게만 약속되어 있는 생명 즉, 영원한 삶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11,12.
여러분들께 드리는 이 질문에 대답해 보길 바랍니다. “지옥불 가운데 쌓여 있는 악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들은 “결코 아닙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악인들이 지옥불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의 말을 들어보십시요.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일서 3:15.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지옥불에 불타는 고통 중일지라도, 악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된다고 믿지만, 성경에는 결코 그러한 말씀이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타게 된다는 가르침은, 영원한 생명을 예수님 이외에 어떤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엄청난 이단적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고 기록하였습니다(디모데후서 1: 10).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종류의 불멸의 생명도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에게 주어질 불멸에 대해서 언급한 성경절을 어디서 본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불멸의 영원한 생명을 받는 의인에 대해서는 흔히 읽을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자가 불멸의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기록은 전혀 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린도전서 15:51-53. 이 말씀은, 의인이 홀연히 불멸의 존재로 바뀌게 될 어떤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은 미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부활의 승리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때, 이 놀라운 사건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도 이러한 방법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악인들도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가르치는 어떠한 근거나 이유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서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상식 이하의 이야기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에스겔 18:4. 사람이 죽은 이후의 상태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죄를 버리고 회개하지 않는 영혼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단순한 성경상의 진리를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의 의미
지옥에 대한 몇가지 애매한 성경절들이 많은 사람들을 혼돈 가운데로 유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1:8,9)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이 꺼지지 않을 불로 삼킴을 당할 것을 예언하였으며(예레미아 17:27), 그 성이 타서 재가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역대하 36:19-21). 이 문제를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는, 성경에서 “꺼지지 않는다” 라는 표현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결코 꺼지지 않고 영원토록 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불은 아무도 끌 수 없으며, 그 불이 태우는 대상들이 완전히 재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 탄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예레미야 17:27에 있는 말씀에서, 꺼지지 않는 불의 의미를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예루살렘 궁전이 불에 타고 있는가요? 물론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전소시킬 때까지 불이 탈 것이라는 뜻이되는 것입니다. 지옥불은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이며, 한번 불붙으면 마귀와 악인들을 완전히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릴 때까지 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옥불을 설명할 때 사용되고 있는 “영원” 이란 말과 “영원토록 지속할” 이란 말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성경 가운데서 그 말의 정의를 찾아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용어나 표현들이 이스라엘의 신, 구약 시대 당시에 그것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고려하지 않은채, 단지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어서 그것들의 정의를 내리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뿌리 깊은 번역상의 잘못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불이란 결코 꺼지지 않을 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영원한 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유다서 7절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만일 소돔성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고 있다면, 지금도 소돔성은 불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중동 땅에 있는 소돔성이 오늘날까지 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소돔성이 “영원한 불로” 태워졌다는 말의 의미와 그것이 주는 교훈이 베드로후서 2장에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베드로후서 2:6)
바로 이것이 그 의미인 것입니다. “영원한 불”의 의미는 영원토록 타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로 인한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소돔성을 재가 되게 했던 그 “영원한 불”은 악인들에게 마지막으로 가해질 하나의 표본(샘플)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영원히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서 없어졌기 때문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진출처 http://blog.daum.net/suni7703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것과 똑같은 종류의 불이 악인들을 화염으로 태우게 될 것인데, 바로 그것이 영원한 불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악인들을 재로 만드는 것을 의미할까요? 성경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나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 4:1,3)
앞에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멸망의 형벌” 이란 영원토록 중단되지 않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의 결과가 영원토록 유지되어서 악인의 생명이 영원토록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즉, 형벌의 결과로서 영원한 멸망, 즉 영원히 멸망되어 완전하게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말씀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들에게는 부활이나 생명에 관한 희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세세토록, 영원토록”의 의미
아마 가장 쉽게 오해 할 수 있는 지옥에 관한 표현은, “세세토록”(forever and ever) 연기가 피어오” 른다고 기록한 사도 요한의 표현일 것입니다.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10)
사실상, 성경에 나타난 이런 성경절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다면,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러한 표현들이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진정한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조사해보면, “영원, 또는 세세토록”이란 말이 57번이나 나오는데, 이 말이 언제나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1장에 나오는 노예법에는, 노예가 평생토록 주인을 섬기도록 규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한 법을 이야기 하면서, “송곳으로 귀를 뚫고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애굽기 5:6). 그러나 노예가 영원토록 주인을 섬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노예가 그의 주인을 섬길 수 있을까요? 물론, 죽을 때까지 밖에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영영히”(forever)란 말은 끝이 없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의 생명이 마쳐질 때까지 주인을 섬기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한나는 그녀의 아들인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영영히 있게”하였습니다(사무엘상 1:22). 그러나 이어지는 28절에서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린다”고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원” 이란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무한정한 시간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떤 사건이 완전히 마쳐질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고래 배속에 한동안 머물렀던 요나조차도 자신이 머물렀던 기간을 “오래도록” 즉, 영어로는 “forever”(영원토록) 으로 묘사하였던 것입니다(요나서 2:6).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지도 모릅니다. “하늘에 간 의인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하늘에 간 의인들의 생명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까?” 물론, “영원토록” 이라는 동일한 표현이 의인과 악인에게 모두 사용되었습다. 그러나 두부류가 처해 있는 상황 사이에는 한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않됩니다. 의인들은 불멸의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처럼 영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멸은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원”이란 말이 의인들에게 적용되었을 경우에는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토록 생명을 누리는 것으로 해석해야 되지만, 그것이 불멸의 생명을 받지 못한 악인들에 적용되었을 경우에는, 그것은 형벌의 불 가운데서 타서 없어질 그들의 육체와 생명이 살아 있는 동안(기간)만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공의
악인들이 받게 되는 형벌에 관련된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편주의(universalism)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너무 관대하시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악인은 영원토록 고난의 어두운 미로 속에서 끝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고 믿는 무서운 견해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성경으로 증명될 수 없는 가상적인 견해들입니다. 진리는 그 두 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형벌을 내리실 것이며, 자신들이 받아야 할 형벌이 마쳐질 때에 몸과 생명이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수많은 정직한 영혼들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서 그릇된 오해를 가지고 있을 경우, 그들은 어떤 순간에 마음이 갑자기 변하여 하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타당한 이유 없이, 끝없는 고통 중에 있어야 하는 악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하여 의심과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악인들이 받는 형벌은 하나님의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습니다. 지옥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성품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더 이상의 고통이나 죽음이 없음
사도 요한은 미래의 영광스러운 장면을 계시 가운데서 보면서, 이러한 말로 묘사하였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 21:4)
재창조함을 받은 우주에서, 어떤 사람이 어느 곳에서 고통을 겪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눈물이나 고통이 더 이상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습니까 혹은 인간의 추측을 따르시겠습니까?이 약속을 쓰기 바로 전에, 사도 요한은 악인들이 어떻게 지옥불에 던져지게 되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0:15, 21:1)
불타고 있는 악인들은 재가 되어서 이 땅에서 사라진 다음, 하나님께서 새 땅을 재창조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으며, 4절에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주 가운데에 더 이상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한 지옥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이 두 가지 것은 서로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의 고통을 종결지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사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새 왕국에는 어떠한 고통의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지옥은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곳이 아님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옥이 결코 여러분들과 저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 아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5:41).
만약 우리가 지옥불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범했던 것 중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간구,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의 경건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산산이 부서진 육체를 넘어서 그곳(지옥)에 가야 할 것입니다.
죄를 범했다고 해서 반드시 멸망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했고, 도적질을 했으며, 혹은 간음했다고 할지라도, 천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단지 그가 자신의 죄에서 돌아서기를 거부하고, 모든 불의(unrighteousness)를 용서하고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 사랑의 구세주의 가슴에 자신을 맡겨 버리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