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이제는 고인이 되신 최봉락 장로님 영전에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오정교회의 큰 기둥이셨고 교회의 아버지이셨던 장로님께서는 이제는 우리가 육신을 입고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시고 주님 곁으로 가시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팡이에 의지하여 교회에 나오셔서 교회 모습을 돌아보시고 교회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당회에 나오셔서 피곤을 무릅쓰고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우리와 함께 앉아 계셨는데 이제는 육신의 눈으로는 그 모습을 뵐 수 없게 되었으니 그 슬픔 감출 길이 없습니다. 장로님께서는 40대에 한남대학에 오셔서 한남대학 초창기에 농사일로 학교의 큰 살림을 맡아 하셨습니다. 마치 그때 일을 회상이라도 하시듯 얼마 전까지도 아침마다 한남대학 길을 걸으시며 건강 관리를 하셨는데 이제는 그 모습도 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건강진단을 받으시러 서울을 갔다 오셔서 교회에 나오시면 언제나 저를 불러서 이제 교육관 빚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빚 없이 하나님 앞에 헌당할 것을 생각하며 물으셨던 그 음성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이렇게 교회를 아끼시고 후배 장로를 사랑하시던 그 음성도 이제는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5남 3녀를 슬하에 기르시면서 안타까웠던 일과 속 태우시던 많은 나날을 오직 오래 참으시는 믿음으로 이기시고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시어 이제는 장로로, 목사로, 사업가로 훌륭하게 주 앞에 드려 우리 성도들의 본이 되셨습니다. 교회가 믿음의 본을 보이신 어른을 더 오래 모시고 성숙 된 신앙을 갖고자 염원하고 있는 이때 장로님을 그리 쉽게 잃은 것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하물며 젊은 날에 하지 못했던 효도를 이제 오래오래 사시면서 받으시기를 원했던 자녀들에게야 더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내가 피눈물 흘리면서 지었다’는 구교회당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시며 또 종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시며 가슴 아파하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40대에 대전에 오시어 고인의 감나무 밑에서 시작한 교회,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 처음으로 예배당답게 지은 건물을 완성했을 때의 감격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 생명과도 같았던 건물이 헐리고 종탑이 사라질 때 과거가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그 아픔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고인이 자녀들의 잘 되는 것만을 오직 기쁨으로 여기시듯 이 교회도 잘 커나가는 것만을 기쁨으로 여기시고 오래 참으시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시는 것을 보고 진액이 마르지 않는 고목 같은 든든함을 보았습니다.
고 최봉락 장로의 또 하나의 본이 되는 귀한 모습은 그 임종이었습니다. 장로님은 하나님의 종 모세가 일백이십 세에 불음을 받고 떠날 때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함 같이 장로님도 그처럼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찬 병원보다 따뜻한 집을 좋아하시고 만족하게 여기시며 하루를 가족과 함께 지내셨는데 말을 못 하셨을 뿐 보시고 들으시고 눈물로 응답하셨습니다. 주일 하루를 편안히 지내시고 10일 월요일 아침 6시 잠드시듯이 소천하셨습니다. 마지막 눈물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미국에 가 있는 두 아들을 못 보셨기 때문이었는지, 평생 섬기던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보지 못하신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지만, 주님께서는 다 아시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님 품에 안기신 주의 종을 예비한 처소로 맞으셨을 것을 믿습니다.
이제는 다시는 밤이 없고, 저주가 없으며, 눈물과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면류관만이 장로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을 믿습니다. 편안히 눈을 감으소서. 흙으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매 생명을 얻고 이 세상에서 부부의 인연, 가족의 인연, 교회의 인연을 맺고 지내셨습니다. 주께서 얼굴을 돌리시면 슬퍼하고 주께서 돌아보시면 기뻐하다가 주께서 부르시매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주께서 예비하신 처소로 가셨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은혜로 예비한 영원한 처소에 가시게 되었사오니 여기 남은 저희는 잠깐 헤어지는 것이 슬플지라도 찬송하며 기쁘게 보내옵니다. 이제 광명한 하늘에서 이 세상에서 작별한 저희를 기억하소서!
장로님! 유족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며 떠나보내는 자리에 함께 모인 저의 성도님께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갖게 해 주실 것을 굳게 믿으시며 장로님께서는 무거운 육신의 짐을 이제 벗으소서!
1994년 1월 12 일
오정교회의 교우를 대신하여
장로 오 승 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