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기대해주시고, 이 글로 만남을 더욱 의미 있게 준비해주시려는 분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니, 지금까지 자기소개서를 입시 평가만을 위해 써온 저로서 정말 신기하고 기쁜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형식적이고 객관적으로 저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딱, 긴 소설의 처음을 여는 프롤로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길게 나누고픈 이야기는 따로 있기 때문이죠. 쥔 주먹을 하나씩 펴며 제 소개를 하다 보면 반갑게 흔들 수 있는 양손이 준비될 것 같습니다.
그럼 빠르게 첫 번째 손가락을 펴보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도시화가 제일 적게 진행된 '강원도'라는 곳에 위치한 '삼척'이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작은 시내와 상반되게 앞뒤로 우릴 넓게 감싸고 있는 산과 바다 덕분에 산으로는 산딸기와 밤을 주우러 다니고, 바다로는 작은 게들을 잡으러 다니며 자랐습니다.
두 번째 손가락. 그랬던 제 어릴 적은 우리 가족이, 엄마 아빠와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언제나 함께했지요.
세 번째 손가락을 펼 차례입니다. 제 장점은 신중, 계획, 인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어서 단점은 우유부단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 또한 장점보단 단점이 부각되고, 그 개수 또한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장점과 단점을 건조하게 늘어놓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강점을 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장점에 속하든 단점에 속하든 그 사람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성질을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을 장점과 단점으로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이거니와, 내 눈에 색안경을 씌우기 때문입니다. 강점을 보려 노력하는 것이 진짜 그 사람을 보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 손가락입니다. 저는 스티커 모으기와 퍼즐 맞추기, 친구들과 교환일기 쓰기 등의 취미가 있습니다. 그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는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는 것인데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총 네 명의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그 횟수는 1~2주에 한 번씩으로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로 힘든 일이나 인상 깊었던 경험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우리들의 교환 일기장이, 저에겐 참으로 소중합니다.
다섯 번째 손가락입니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라고 말씀드린다면, 프롤로그가 왜 이렇게 기냐고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프롤로그의 마지막이니 만큼, 빠질 수 없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어진 지 8년 된 하얀색 지붕의 교회. '소명교회'입니다. 학창 시절, 아버지는 캠퍼스를 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 캠퍼스 100미터 안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제가 이곳에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졸업 후 10년 뒤, 아버지는 그 기도대로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와 1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교회를 세우시고 대학생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또 대학교 앞에서의 전도뿐만 아니라 삼척의 여러 초등학교 또한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유초등부를 세우기 위해 애쓰셨지요.
그때의 기도를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목회에 힘쓰시는 우리 목사님. 우리 교회를 어디까지 넓혀주시고 어디까지 사용해주실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 교회는 영혼 구원과 하나님 기쁨을 위해 예배하고 섬길 뿐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개의 손가락을 접었습니다. 이제 한 손이 남았습니다. 이제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 제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곳에 가서도 서로의 꿈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길 기대합니다. 나머지 한 손은 제 "꿈"입니다.
중학교 시절, 제 하루는 굉장히 지루했습니다. 힘겹게 눈을 뜬 아침은 언제나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시간에, 심지어는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빨간불의 개수까지 같을 때가 많았죠. 학교에서 또한 정해진 시간표에, 정해진 선생님들의 잔소리에, 정해진 정답들에 진절머리가 났었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제 하루를 어제와 오늘로 구분해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친구들과의 대화였습니다. 우리는 주제를 불문하고, 그 범위 또한 정해놓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각자의 의견을 내놓으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녁 메뉴가 맛있으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뭘까?"라는 소소한 주제부터, "대한민국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능을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가치관부터 바뀌어야 하는가." 따위의 무거운 주제까지 우리는 폭넓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에 '다른 이들의 마음'을 담고 싶어진 것이요..!
이제 자연스럽게 제 꿈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저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올라온 후, 내가 단순히 '대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감정들이 나에게로 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가십거리들이나 뒷담화가 아닌, 누군가의 여러 마음을 담은 말들만이 제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보며 알게 되었죠! 저는 신기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호기심과 집중이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그리고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 '또래상담가'라는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아리에서 저는 색다른 상담을 배우게 됩니다. 보통 청소년 상담은 어른과 학생이 하는 것이지만, 그 동아리에선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서로 같이 대화를 나누며 하는 상담을 알려주었던 것이죠. 그곳에서의 상담 교육은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상담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른 저는, 4개월 간 다섯 명의 친구들과 상담을 해보게 되는 첫 발걸음을 떼게 됩니다. 거기에다 열정이 너무 커진 나머지, 장장 6개월에 걸친 '탐구보고서'를 작성하게 되기까지 하는데요, 그 보고서 안에는 다섯 명의 친구와 상담한 기록과, 심리에 관한 영화를 보고 작성한 감상문, 내가 생각하는 또래 상담자가 갖춰야 할 성품과 행동강령을 정리한 포스터 등 다양한 활동이 들어가게 됩니다.
보고서 작성은 저에게 청소년 상담과 심리학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제 힘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그 하루가 영원할 것 같았던 제 삶에, 어제와 다른 오늘을 내 손으로 생산해낼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죠! 그 즐거움에 빠져 1차 탐구보고서 작성을 완료하고 현재는 2차 탐구보고서를 작성 중이기도 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제 꿈은 '청소년 심리 상담가'입니다. 청소년은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펼칠 수 있는 때입니다. 하지만 학업에 억눌리고, 친구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마음의 문을 닫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을 보며 "내가 그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고 싶다. 그 아이들의 상처 받은 마음과 우울한 마음이 내게로 왔을 때, 공감해주고 같이 아파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떠한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한 그릇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릇은 내가 마음대로 키울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그릇을 키워달라고, 깨어지지 않게 두 손으로 감싸 안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가정 형편과 벌레가 나오지 않는 집을 위해서만 기도했던 제가, 제 꿈을 위해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아 했던 제가, 실로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꿈을 가지게 된 배경에서 우리 가족을 제일 드러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프린트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주현이의 보물 1호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릴 적 그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부모님'이라 적었던 그 마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아빠랑은 더 이상 볼 뽀뽀도 하지 않게 되고, 엄마와는 목욕탕을 가지 않고 싶어질 것 같았지만 사랑이 넘치셨던 우리 부모님은 제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빠와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걷고, 괜히 엄마에게 머리를 묶어 달라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모범적인 학생이라 불리고 선생님들의 기대와 갖은 부탁을 들었었던 제가 집에서 아이처럼 편히 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아무리 마음이 아팠어도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들어주시고 조언해주셨던 부모님과의 대화 때문에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 무서운 시간들을 함께 손잡고 버텼던 제 소중한 남동생이 있어서 제 어린 시절이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사실 제가 하나님께 눈물 흘리며 감사드린 적은 우리 가족밖에 없습니다. 보물을 떠올리면 동화에 나오는 반짝반짝한 보석밖에 떠올리지 못했을 그 어린 시절에, 보물 1호를 우리 부모님이라고 정성스레 적었던 어린 날의 제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지루한 하루가 이어지던 제 삶에 이러한 변화가 찾아온 것은 다 무엇 때문일까요? 나의 이익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어른들에게는 착하게만 보이려고 했던 제가, "나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계획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라는 문구를 지어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의 크신 계획인지라 저도 아직 그 이유를 알진 못하지만, 지루하게 느꼈던 만큼 나의 도화지를 희고 넓었던 것으로 준비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심했던 제가 조그만 동작을 해도 흰 도화지는 금방 알록달록해져갔고,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을 때에도 공간이 부족하지 않게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후에 제 도화지가 완성되어 하나의 작품이 되었을 때 꼭 'by God'이라고 쓰여 있기를, 그래서 천국의 한쪽 벽에 꼭 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작품 안에 우리 꿈마실과 함께한 미국 여행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겠죠?
끝으로, 이번 미국 여행은 제가 지금까지 그려왔던 그림과는 달리, 무지 크고 독특한 그림이 될 것 같아 너무나 기대가 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과 문화, 특히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곳의 사람들과 서로의 삶을 나누고 같이 생활할 그 시간들이 너무도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저희를 반겨주실, 그 특별한 추억을 함께 만들어주실 호스트 분들과 미국 현지의 여러 교회들께 정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말들을 나누게 될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또 어떤 일들을 준비하셨을까, 어떤 당신의 세계를 보여주실까 하는 설레는 마음과 준비된 양손으로 다시 인사드립니다.
(엄마랑 아빠 사이에 있는 주현이. 말도, 행동도, 표정도 성숙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