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틱낫한 스님 저
🪴넷
비어 있음이여, 만세!
< 공은 공하다 >
P.65
🌱비어 있음의 지혜는 사실 지극히 낙관적인 것입니다.
내가 비어 있지 않다면 나는 여기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비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거기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거기 존재하기 때문에 나도 여기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비어있음에 참뜻입니다.
우리 몸은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없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우리가 이 점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비어 있다, 공하다는 말은 단순히 무자성, 즉 ‘본래의 자성과 실체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처럼 비어있음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면 [반야심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어 있음이 존재의 기초이며 만물의 존재론적 근거라는 생각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러나 비어 있음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거기에는 어떤 존재론적 근거도
없습니다.
비어 있음을 존재론적 본질로 바꾸고 그것을 모든 존재의 기초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어 있음은 영원불변하는 존재론적 근거가 아닙니다.
비어 있음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결코 절대적이거나 궁극적인
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이 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제거해야
합니다.
비어 있다는 말은 텅 비어 있습니다.
🌱우리가 비어 있지 않다면 활기를 잃고 굳어버릴 것입니다.
숨을 쉴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뜻이며,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뜻입니다.
비어 있음은 무상(impermanence),
즉 덧없음이자 변화입니다.
우리는 비어 있음,
덧없음 혹은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축하해야 마땅합니다.
한번은 한 남자가 찾아와서 인생이 텅 비어 덧없다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는 5년 동안 불교 수행을 하면서 공과 무상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열네 살짜리 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 무상하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무상함이 없으면 제가 어떻게 자랄 수 있겠어요?“
당연히 아이의 말이 옳았습니다.
🌱옥수수 알을 땅에 심을 때는 옥수수 알이 키 큰 옥수수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무상함이 없다면 옥수수 알은 영원히 옥수수 알로만 남게 되므로 절대로 옥수수를 먹을 수 없습니다.
덧없음은 살아 있는 만물에게 더없이 중요합니다.
2세기의 불교사상가 용(Nagarjuna)
는 ”비어 있기에 만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상함을 불평하는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상하기에 만물이 존재할 수 있다.
무상함이여, 만세!”
무상함 또는 덧없음은 더없이 낙관적인 말입니다.
그리고 용수의 글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이어집니다.
“비어 있지 않으면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어 있음을 축하하고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비어 있음이여, 만세!”
비어 있음 덕분에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마라반야바라밀
언제나 따듯한 부처님 마음으로
눈 밝으신 수행자 되시기를
두 손 모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