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문제는 생각이 틀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종교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같다. 생각한다는 것은 압박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의사결정의 문제를을 되도록 집단에 떠넘기려고 한다. 자신을 압박하지 않고 집단을 압박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압박해야 한다. 자신이 느끼는 압박감을 의사결정에 쓰는 것이 균형감각이며 직관이다. 논리에 의해 뒷받침된 직관의 힘은 막강하다.
논리적인 판단은 객체를 보는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은 주체를 보는 것이다. 직관적인 판단은 주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호르몬이 변하고 무의식이 변한다. 에너지가 변한다. 주체의 변화를 보는 판단이 진짜다. 주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압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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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미로를 찾다가 길이 막히면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간다. 까마귀는 먹이를 꺼내는데 실패하면 도구를 사용한다. 인간은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을 쳐다본다. 문제를 집단에 떠넘긴다. 인간은 생각이 틀리는게 문제가 아니고 생각을 하지 않는게 문제다.
문제를 풀 수는 있다. 문제가 인간을 압박하므로 맞대응하면 된다. 타인을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상호작용 구조 안에서 밸런스를 따라가면 된다.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못하고 대신 집단을 압박한다. 남을 압박하되 자기 압박을 못한다.
논리가 아니라 물리의 문제다. 의사결정은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에너지를 연결하고 밸런스를 조절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자체 동력이 필요하다. 물에 빠지면 어떻게든 살길을 찾기 마련이다. 생각을 하려면 자신을 압박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압박하는 것은 균형감각이다. 균형이 어긋나면 불안해진다. 걸음을 걸어도 똑바로 걷고, 집을 지어도 똑바로 짓고, 옷을 입어도 똑바로 입어야 안심이 된다. 일을 처리해도 똑바로 해야 한다. 나란하지 않고 어긋나 있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 직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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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이 못되므로 초인이 되고 싶었다. 우리말로는 이인異人이다. 야사에 전하는 화담 서경덕이나 토정 이지함의 면모라면 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인은 못되어도 기인은 될 수 있다. 인간은 비참한 존재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어떤 존재가 되고 싶었다.
지식인은 시스템에 갇혀 부속품으로 끝난다. 지혜인이라면 하인들을 관리하는 청지기 정도 될 수 있다. 지성인이 되려다가 되지 못하고 지성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지성인은 의리의 끈으로 묶인 평등한 동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급할 때 부르면 즉시 달려오는 사람이 진짜다. 집단의 에너지를 모아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깃발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불러올 수도 있어야 한다. 인간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그릇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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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1이 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에너지의 몰아주는 성질 때문이다. 존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유체가 되고 유체는 하나가 전체를 대표한다. 하늘도 하나, 땅도 하나, 해도 하나, 달도 하나, 인류도 하나다. 나무는 한 그루씩 자라고 동물은 한 마리씩 산다.
하나는 안정된 상태다. 하나가 아니면 불안정하므로 하나가 될 때까지 잘게 쪼개진다. 하나의 바위는 쪼개져서 하나의 돌로, 하나의 자갈로, 하나의 모래로 되었다가 하나의 흙으로 돌아간다. 하나는 밸런스다. 밸런스는 나란하다. 나란해야 에너지가 전달된다.
자연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 가지 밸런스로 하나가 된다. 존재는 나란함을 통해서 에너지 전달에 성공할 때 하나가 된다. 나란함이 어긋나면 쪼개져서 더 낮은 차원에서 나란함을 찾아낸다. 에너지를 전달하는 경로를 추적하여 모두 알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