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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장
제 15 장 공 회
(대 지)
一. 할례에 대한 변론(1-5)
二. 공회 소집(6)
三. 의논(7-21)
四. 공회 결의(22-29)
五. 안디옥 교회에 전달(30-35)
六. 제 2차 전도여행 출발(36)
七.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짐(37-41)
(본문 강해)
一. 할례에 대한 변론(1-5)
.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에 내려왔는데 그들은 안디옥 교인들에게 "너희가 예수를 믿어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었으나 아직 율법주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자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결국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 15: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유대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데 바울과 바나바는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로 인해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 안디옥 교인 중에 동요를 받는 자가 생긴 것 같다(24절). 신앙과 율법, 할례와 구원의 문제는 초대 교회에 있어 처음으로 대두된 중요한 교리문제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도리에 확고히 서 있었으나 율법주의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미혹시킬 염려가 있고 성도들 중에 미혹 받는 자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신득구(以信得救) 교리를 확립시켜 놓는 것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인 줄로 깨달았는데 이것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갈2:1-2 참조).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그 외 몇 형제를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와 바른 교리를 세울 사명감에서 동행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 15: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바울 일행이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간 것은 그 곳 교회도 돌보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도 말해 주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도리를 좀 더 가르쳐서 율법주의자들에게 동요를 받지 않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교회와 장로와 사도들의 영접을 받았다. 바나바는 본래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파송하였던 사람이다(행11:22 참조). 사울은 다메섹에서 회개한 후에 바나바가 그를 예루살렘 교회에 데리고 가서 소개해 준 일이 있다(행9:26, 27 참조).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가 그들을 기쁘게 영접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에 나가 전도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일을 말해 주었다. 이방인들이 구원에 참여한 일과 또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일하여 놓은 것을 말해 주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세우려는 기초적인 일이었다.
. 15: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은 바리새파 중에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기를 아직 율법과 의식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방인 신자에게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참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전통과 습관에 얽매어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이 주장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러한 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신득구(以信得救)의 교리를 확립할 필요성을 깨닫고, 또 공회에서 이 문제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하여 공회소집 전에 유명한 자 몇 사람을 사사로이 만나서 의논한 것이다(갈2:2 참조). 여기에서 유명한 자들은 베드로와 야고보 같은 분들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총회하기 전에 자기들의 의견을 세우고, 자기들이 권세를 잡으려고 임원과 안건을 사전 모의하여 짜고 들어가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자기를 위함이요, 바울이 한 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에 실수가 없이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기 위함이었다.
二. 공회 소집(6)
. 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할례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공회가 모인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최초의 광대 회의였다.
장로 사도 외에 교회의 원로급 중견들이다. 그 때 장로를 감독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도를 도와 교회를 다스리며 성경을 가르치며 양을 먹이고 치는 일을 하였다(행20:28, 29 참조). 이 중에는 예루살렘 교회 감독인 주의 동생 야고보도 있었다.
사도와 장로들과 안디옥 교회에서 온 바울 일행이 모여서 공회를 개최했다. 공회는 하나님의 기관이다. 사도신경 마지막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고 하였는데 한 교회의 소공회와 여러 교회가 모인 대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제도적인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하고 개교회는 대회(노회와 총회)에 속해 있어야 한다. 개교회에서 처리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는 공회에서 처리하고, 공회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전한 신자와 건전한 교회로 발전해 나아갈 수가 없다.
하나님은 공회(당회나 노회, 총회)를 통하여 일하신다. 공회에서 결의하고,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다(마18:18 참조). 그러나 공회도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실수할 수 있는 것이다. 공회의 결정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성경에 의하여 판명된다.
三. 의논(7-21)
. 15:7-9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공회가 모여 많은 변론을 하였다. 조상 적부터 할례를 행하여 왔고, 오랫동안 율법을 지켜왔는데, 이젠 할례를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변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의 중에는 누구나 자기 의견을 기탄 없이 모두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변론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두어야 한다. 자기 의견만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악한 행동이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전에 고넬료의 가정에서 경험한 것을 들어 말했다.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한 사도지만(갈2:8 참조)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여 이방인에게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행11:18)고 말했다.
둘째, 성령을 주신 일로 증거하였다. 고넬료가 복음을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을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 할례 받지 않은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성령을 주신 것을 보면 할례 받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외모(유대인과 이방인, 할례자와 무할례자)로 사람을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아신다. 누구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셋째, 하나님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케 하셨다는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치 않고 마음을 깨끗케 하셨는데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이다.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를 믿음으로 영혼이 거듭나는(중생) 것이다. 그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되는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다. 이것은 중생한 영혼이 마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 15:10-11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베드로의 논증이 계속되고 있다.
넷째,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시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멜 수 없는 무거운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는 율법을 다 지킨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것이다(롬3:20, 갈3:24 참조).
조상 적부터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롬3:10) 이방 신자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해 놓은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는 가혹한 일이다라고 증거하였다.
여섯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의 이론으로 구원받는 것은 동일하다고 하였다. 할례나 율법이 구원받는 조건이 될 수 없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확증하였다.
.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신앙적으로 권위 있는 베드로가 말할 때 회중이 그것을 받아들여 따라가게 되었다. 공회가 정돈이 되고 조용해졌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이방에 나아가 복음 전파할 때마다 하나님이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 주신 것을 말하였다.
① 성령이 이방에 가서 전도하라고 하신 일(행l3:2-3 참조).
②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일.
③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준 일.
④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역사한 일.
⑤ 그들이 구원받은 역사는 유대인이 구원받은 것과 동일하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이 말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여 할례를 주장하였으나, 베드로와 바나바와 바울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한 일(경험한 일)을 말해 줌으로 그것이 옳은 줄로 알게 되었다.
노회나 총회를 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여야 한다. 자기 의견만 내세우려고 하면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한다. 처음에는 자기 생각이 옳은 줄로 알고 주장하다가도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말하면 따라가야 한다. 회의 때에 자기 의견을 세우려고 하고 자기들의 유익만 도모하려고 하는 회의는 마귀가 주장하는 회의이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태도이다.
. 15:13-15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번에는 야고보가 일어났다. 이 야고보는 주의 동생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으며 기둥과 같은 인물이었다.
야고보의 논증은, 첫째, 시몬(베드로)이 말한 것을 시인하였다. 그 내용은
㉠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으로 보내셨다.
㉡ 이방 중에서 자기 백성(택한 백성)을 취하려 하셨다.
㉢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권고하여 주셨다.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것이며 선지자의 말 아모스9:11-12과 합한 것이라고 야고보가 증거하였다. 성경에 근거하여 말하는 것은 힘이 있다.
. 15:16-18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야고보의 논증 둘째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건설을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방인이 구원에 참여하는 것은 영원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경륜이다. 내가 돌아와서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한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 다윗의 왕통이 무너진 것을 말한다.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다윗의 왕통을 영적으로 다시 세우는 일을 뜻한다.
.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야고보는 이방인 신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 믿음 외에 다른 것 (할례)을 짐지우는 것은 괴롭게 하는 것이다.
.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야고보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방신자들에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말하고 다른 것은 짐지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우상의 더러운 것 우상의 제물을 가리킨다(29절). 우상의 제물은 하나님 앞에 더러운 것이다. 목매어 죽인 것과 피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는 먹지 말라고 하셨고(레17:10-11), 목매어 죽인 고기는 피를 빼지 않고 죽였기 때문에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에 위반되므로 목매어 죽인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다. 야고보가 이 4가지 금기(禁忌)에 대하여 말한 이유는
① 이 4가지가 가장 요긴하기 때문이다(28절). 그러나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② 이것은 성령의 명령이기 때문이다(28절).
③ 기독신자들이 우선 이 4가지를 지키면 다른 말씀도 점점 지키게 되겠기 때문이다.
④ 이방 기독신자들이 우선 이 4가지를 지키므로 안식일마다 각처에서 모세의 글을 읽는 유대인들과 서로 심한 마찰을 피하기 위함이었다(21절).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중요한 이 4가지를 먼저 지켜서 마찰을 피한 후에 다른 말씀도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을 유대인 기독신자와 이방인 기독신자간의 조화를 위한 과도적인 교훈으로 보고 그 후에는 그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신약교회시대에 음행해도 된다는 결론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진리요, 그 말씀대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이 4가지는 요긴한 것이요, 성령이 명령하신 것임을 기억하여야 한다(28절). 그러므로 신약교회시대 신자들이 이 4가지를 우선 지키고, 십계명과 다른 성경말씀도 지켜야 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지켜야 한다 (마7:24-27, 요8:31-32, 7:17, 계1:3).
.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이방 각 성에도 안식일마다 모세 5경을 읽는 유대인 기독신자들이 있는 고로 기독신자가 지켜야 될 것 (할례는 제외하고) 중에 그들과 심한 마찰이 될 것부터 먼저 지켜 마찰을 피해 나가는 것이 교회발전에 유익하겠다는 것이었다.
四. 공회 결의(22-29)
. 15:22-27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가결 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공회가 야고보의 제안대로 교리문제를 결의하고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를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들 편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희에게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미혹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유다와 실라를 택하여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로 일치 가결하였다. 이들이 가면 이 편지의 내용을 말로 너희에게 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 15:28-29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의한 것은 사람끼리만 모여서 결의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찾아 결의한 것이다. 이 결의는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여 예루살렘 공회로 하여금 그러한 결의를 하게 한 것이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20절 해석 참조). 율법의 의식(의문과 증서)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도말하였다(골2:14-16). 그러나 율법의 의식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는 오늘날(신약시대)에도 지켜야 된다. 음행을 피하고 우상의 제물과 목매어 죽인 짐승과 피를 먹으면 안 된다. 로마14:1-3에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라고 말한 것은 레위기 11장에 먹지 말라고 한 동물들을 말한 것이다. 고전 8장의 우상의 제물론에 있어서도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는 말이 없고 우상의 제물이 다른 사람의 양심에 거치는 것이 되므로 먹지 말라는 것이 중심사상이다. 다른 사람의 양심에 거치는 것이 되면 그 형제를 망하게 하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는 말은 한 번도 없다. 고전10:20에는 이방인의 제사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만 가지고는 온전한 것이 못된다. 고전10:18에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한 자들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딤전4:1-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느니라"는 말씀도 우상 제물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사도시대에 금욕주의가 나와서 고기 먹으면 죄이고 채소만 먹어야 된다. 또 결혼하면 죄이니 독신으로 살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말이었다. 하나님의 지은 것은 다 거룩하므로 고기를 먹어도 괜찮고 결혼도 정당하게 하면 죄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령이 본문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같은 성령이 다른 성경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고 하였겠는가! 그렇다면 성령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성령께서 피나 목매어 죽인 짐승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다음에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심판하실 때에 왜 목매어 죽인 짐승과 궤를 먹었느냐 하시면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신약시대에는 율법이 필요 없는가?
로마3:31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마태5:17-18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다.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면 율법주의요 이단이다. 반대로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하면 성경을 부인하는 폐법주의이다. 율법주의나 폐법주의는 다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다.
율법이 하는 일은
①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롬3:20 참조). 율법이 없이는 죄를 깨닫지 못한다. 가령 탐심이 속에 들어 왔다고 하여도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다면 탐심이 죄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롬7:7 참조).
②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갈3:24-26 참조).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③ 율법은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에게 알게 하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나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상을 미워하시고 간음, 도적질, 탐심, 거짓 증거를 싫어하시는 줄을 알게 된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율법의 의문과 증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도말하였으나 그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지켜야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생명과 성령의 권세로 율법을 지키게 된다고 한다(롬8:2-4 참조).
五. 안디옥 교회에 전달(30-35)
. 15:30-32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바울 일행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편지를 전하였고 안디옥 교회는 그 편지를 읽고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의된 것이 과거에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배운 성경대로 되었으므로 적지 않은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다.
성도는 진리로 기뻐하고 그 실현으로 위로를 받는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이었으므로 여러 말로 권면하여 안디옥 교회 형제들의 신앙을 굳게 하였다. 교인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교훈과 풍조에 요동치 않도록 바른 교리를 잘 가르쳐 굳게 서게 하는 일이 교역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 15: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안디옥 교회가 형제들을 진정으로 전송한 것은 그들이 참 진리에 굳게 선 증거이다. 안디옥 교회가 형제들을 사랑으로 전송하므로 자기 사명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유다와 실라에게 큰 기쁨과 힘이 되었다.
.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힘써 전하였다.
六. 제 2차 전도여행 출발(36)
. 15: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제 1차 전도여행 때에 설립한 각처의 교회를 다시 방문하기로 하였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세운 교회를 돌아보아 실족하지 않게 하고 진리에 굳게 세워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七.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짐(37-41)
. 15:37-39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마가는 제 1차 전도여행 때에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갔다가 밤빌리아에서 돌아갔다. 그리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 전하는 일에 큰 지장을 주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복음 운동에 지장이 많다.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왔다. 그 때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들어 주므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 사도 바울이 위대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사도이지만 받들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일이 더 잘되어 나간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였으나 바울은 과거에 사고를 일으킨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서로 심히 다투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하고 관용성이 있는 사람이요, 바울은 의에 서서 불의를 용납지 아니하고 징계하여 진리를 세워 나가는 엄격한 사람이다. 마가를 놓고 심히 다투게 된 것은 이 두 사람의 신앙인격에 의해서였다. 자기 개인에 대한 과오나 손해를 준데 대해서는 관용하여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는 것이 가하지만 하나님의 일에 대한 공적 문제와 진리와 참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 있어서는 불의를 용납지 않아야 되고 추호라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점에 있어서 바나바보다 바울이 우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시대에 바울을 통하여 진리를 세워 나갔고 바울의 복음운동에 함께 하여 창성케 하셨다. 바나바가 사랑이 많고 관용과 사람을 포섭하는 것은 좋으나 인정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그 후에 진리의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피차 갈라지니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 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일하던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같이 있어 서로 싸우는 것보다 갈라져서 서로 잘되기를 원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낫다.
같이 있으면서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전도 문이 막히고 피차간 손해만 보는 것이다. 마가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졌지마는 서로 잘되기를 원하고 사랑한 것 같다. 바울이 바나바를 좋게 여겼고(고전9:6), 마가가 회개한 후에 나의 일 하는데 유익한 자라고 하였고(딤후4:11), 골로새 교회에 특별히 소개하여 잘 영접하라고 하였다(골4:10). 바나바는 바울과 갈라져서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인 구브로에 전도여행을 떠났다.
. 15:40-41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났다. 실라는 예루살렘에 돌아갔다가 다시 안디옥 교회로 온 것 같다. 바울이 수리아와 자기 고향인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여러 교회를 굳게 하고 복음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