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변득중(邊得中) (사학징의 P.161~164)
포청초 : 저는 본래 양민으로 대묘동(大廟洞)에 삽니다. 사학에 깊이 빠진 까닭에 나라에서 엄격하게 금지함을 보고 마음이 몹시 송구하여, 금년 3월 17일에 집을 팔고 공북문(拱北門) 밖 원동(院洞)으로 옮겨가서 자취를 감출 계획을 세우려다 이제 잡혀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처지가 되었으니 어찌 하나하나 바른대로 고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지난 을사년(1785) 6월에 명례동 사는 김범우에게서 사서를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최창현과 더불어 함께 강학하였지만, 제가 능히 부지런히 힘쓸 수 없다 보니, 십계를 자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와 같이 어울리려고 하지 않은 것이 장차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을묘년(1795)에 다시 이용겸과 더불어 뒤얽혀 강학하여 묵은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점차 깊이 미혹되었습니다. 이른바 함께 배운 여러 사람은 장덕유(張德裕) 및 이름을 모르는 어의궁(於義宮) 대청지기 황가(黃哥)와 한금(韓金), 이름을 모르는 정가(鄭哥) 등인데, 밤낮으로 학문을 논하였습니다. 이밖에 신자는 동네 어귀 안쪽에 사는 성돌(聖乭) 아범, 향교동(鄕校洞)에 사는 복술(福述) 할멈의 딸, 성돌이의 사돈, 약현(藥峴) 사는 성명을 모르는 과부 등입니다.
연전에 이용겸을 통해 남대문 밖에서 약계(藥契)를 하는 손인원(孫仁元)의 집에 갔다가, 아현의 황사영을 처음 보았습니다. 특별히 친숙해서 상종한 일은 없습니다. 제가 죄를 범해 붙잡혀온 뒤에는 황사영을 붙잡아서 바쳐서 죽는 중에 살기를 구하는 계책으로 삼으려고, 황사영이 갈만한 곳을 널리 탐문하고 몰래 기찰할 때, 마침 함께 배우던 한 대일(韓大一)과 한 대열(韓大悅) 등을 광주(廣州) 말죽거리(末竹巨里) 지천동(池千同)의 집에서 만나서 먼저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황사영이 슴은 곳은 막연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으로 장교 앞에 고하였으나 여태 잡아 들이지 못했으니, 제 죄가 죄 위에 죄를 더하였다고 할만 하여, 비록 형벌을 받아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전날에 사서에 깊이 미혹되었으나, 이적금수와 같은 학문인 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마음을 고쳐먹고 바른 길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이밖에는 다시 더 바칠 말씀이 없습니다.
형추문목 : 너는 김범우에게서 사술을 배웠고 최창현과 요서를 강학하였다. 이합규와 체결하였고, 황사영과 뒤얽혀서 각처의 흉악하고 요망한 남녀의 무리를 가르쳐 꾀어 같이 강습하였다. 심지어 도망간 죄인을 집안에 두기까지 했으니 진실로 이미 만번을 죽이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하물며 남의 재물을 속여 기만하고, 남의 아내를 훔쳐 음행을 저질러, 이제껏 그 솜씨로 세상에서 지목함이 되었으니, 본래 사학의 죄를 범한 것 말고도 다시 용서하지 못할 죄를 더하였다. 심동(深洞)으로 집을 옮겨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할 계획을 꾸며, 달아나는 죄인을 몰래 맞아들였으니 뜻을 씀이 흉악하다. 사적 주문모는 몇 곳에서 따랐는가? 세례를 받고 사호를 받은 것은 어느 때인가? 이른바 사학은 또 다시 무어라고 하는가? 네가 여러 해 동안 속여 꾄 남녀노소가 틀림없이 포청의 공초에서 말한 그 사람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엄한 신문 아래 감히 버티지 말고 사실대로 바르게 고하렸다.
형추초 : 제가 을사년(1785)부터 김범우의 집을 왕래하며, 비록 오로지 사서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귀로 들은 것이 익숙하였습니다. 장덕유(張德裕)가 매번 저에게 권하여서 사학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을묘년(1795)에 장덕유가 이용겸과 함께 와서 말하기를 제게 목욕하러 북단(北壇) 아래로 같이 가자고 청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용겸이 여러 가지로 꾀어 얘기하며 사학이 배울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래도 강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포청에 붙잡힌 뒤에는 황사영을 기찰하여 체포하는 일로 별청(別廳)에 보내져서, 장덕유와 함께 염탐하여 자취를 추적했으나 끝내 붙잡을 수는 없었고, 다시 포청에 갇혔다가 형조에 이송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황사영을 묵게 한 한 가지 일은 너무도 억울합니다. 염탐을 한다면서 남의 재물을 빼앗고, 남의 아내를 간음했다는 것도 억울합니다. 이밖에는 달리 고할만한 말이 없습니다.
가형문목 : 너는 사학에 깊이 빠져, 최창현, 이용겸, 황사영의 무리와 혈당을 맺어 여러 해 동안 뒤얽혀 남녀를 속여서 꾄 형상을, 포청에서 바른대로 고해놓고 본 형조에서 말을 바꾼 것은 잠시의 목숨을 연장하려고 감히 얼버무리려는 수작이니, 그 정황을 살펴보매 더욱 흉악하다. 네가 사학하는 무리를 기찰하고 염탐한다는 명목으로 남의 재물을 나꿔채고, 부녀를 훔쳐 간음한 것은 사학 말고라도 진실로 이미 만번 죽여 오히려 가볍다 하겠다. 감화되었다고 속여 말하였으나, 입으로만 그렇다하고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은 자취를 볼 수가 있다. 이제 다시 추궁하는 자리에서 감히 앞서처럼 둘러대어 꾸미지 말고 거듭 사실대로 바르게 고하렸다.
승관초 : 저는 사학에 깊이 미혹되어 이용겸, 최창현의 무리와 더불어 여러 해 동안 강습하였음은 이미 포청의 공초에서 바른대로 아뢰었습니다. 본 형조에 온 뒤에는 감히 살아보려는 꾀를 내어, 근년에는 배반하여 버렸다는 뜻으로 속여서 공초를 올렸습니다. 이제 다시 조사하는 날을 당하여 어찌 계속해서 둘러대어 꾸밀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염탐한다는 핑계로 남의 재물을 빼앗고, 부녀자를 속여 간음한 죄는 진실로 이미 용서받기 어렵고, 배웠던 사서는 바른 도리가 됨을 알아, 비록 이 때문에 바로 형장에 끌려가 죽는다 하더라도 어찌 가르침을 배반할 뜻이 있으리이까? 다만 빨리 죽기를 원합니다.
결안초 : 저는 김범우에게서 사서를 배웠고, 최창현, 이합규, 황사영, 장덕유 등과 뒤얽혀 함께 강학을 하였습니다. 각처의 흉악한 남자와 요사스런 여자와 몰래 서로 뒤섞인 곳에 한데 모여, 잘못 그르치고 속여 미혹시킨 죄는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의 재물을 빼앗고, 남의 아내를 훔치기에 이르렀으니, 사학을 범한 것 외에 또 용서받지 못할 최를 더하였습니다.
37. 이경도(景陶) (사학징의 P.164~167) * 가롤로, 福者 : 성은 이(李)이고, 일명 오희(五喜)다. 이윤하(李潤夏)의 아들이다. 한동(翰洞)에 살고 있다.
포청초 : 저는 한동(翰洞)에 삽니다. 신해년(1791) 간에 집안에 마침 사서의 책자가 있길래, 저 혼자 살펴 보다가 점점 깊이 미혹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뒤 나라에서 금함이 지극히 엄한지라, 요사스런 책자는 모두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저는 본래 곱사병을 앓아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친한 벗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계축년(1793)에 부친 상을 만나고 나서는, 따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단지 황사영 한 사람만 매년 한 두 번 찾아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또한 사학을 강론한 일도 없었습니다. 숨겨둔 사서 책자나 강습하고 수학한 곳이 있다면, 이제 지경에 이르러 무슨 마음으로 바른대로 고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무거운 형벌 아래 죽는다 해도 실로 다시 고할 일이 없습니다.
형추문목 : 너는 이윤하의 아들이고 권철신의 조카이다. 아비가 전해주고 아들은 익혀, 온 집안이 사학을 한 실상은 다만 남의 이목을 가리지 못해, 여러 죄수의 공초에 잇달아 드러났다. 그런데도 너는 감히 죄를 면하려는 꾀를 내어, 포청에 바친 공초에서 사서를 불에 태우고 곱사등이라 능히 출입할 수 없다는 등의 말로 미봉하여 말한 것은 마디마디가 교활하고 악하다. 뿐만 아니라, 또 하물며 황사영과 교유하여 마음을 나눔이 몹시 친밀하여 늘상 따르고 쫓았다면 그가 도망한 뒤에 숨은 곳을 듣지 않고 알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제껏 사학을 한 같은 무리의 여러 놈들과 사서와 요화를 감춰둔 곳이 어디인지와, 황사영이 간 곳에 대해, 이제 엄한 신문 아래 포청의 공초처럼 얼버무리지 말고 사실에 따라 바르게 고하여라.
형추초 : 저의 아명은 이오희(李五喜)이고, 한림동에서 삽니다. 집 안에 마침 사서가 있길래 제가 여러 해 동안 펼쳐 보다가 저절로 깊이 미혹되었습니다. 나라에서 금함이 지극히 엄한 뒤로부터는 이른 바 사서를 모두 불에 태워버렸고, 그 뒤로는 원래 학습한 일이 없습니다. 단지 황사영과 더불어 친숙했기 때문에 이렇게 붙잡혀온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황사영이 간 곳은 실로 알지 못합니다. 몸에 형해(形骸)의 질병이 있어서 이미 능히 들락거리며 교유할 수 없다 보니, 다른 사람 또한 찾아오지 않는지라, 사학하는 무리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대로 공초를 올립니다.
가형문목 : 너는 앞선 공초에서 금지령 이후로는 사서를 모두 불에 태우고 다시 학습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였다. 이는 살기를 도모하고 죽음을 면하려는 꾀가 아님이 없다. 너는 이윤하가 아비가 되고, 권철신은 외삼촌이다. 네 누이동생 이순이(李順伊)는 또 유항검의 며느리가 되었으니, 그 사학하는 무리의 소굴이 됨을 이것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또 극악한 역적 황사영과 자주 상종하며 뒤얽혀 강습한 정황이 낭자하여, 덮어 가리기가 어려운데도, 얼마 안 되는 목숨을 연장하려고 감히 형해의 질병을 가지고 애초에 문을 나가지 않았고, 또한 사학하는 무리가 찾아온 적도 없다고 꾸며 둘러대기를 일삼은 것은 지극히 교활하고 간악하다. 이제 다시 신문하는 중에 감히 말을 삼키거나 뱉지 말고 이제까지 흉악함을 행한 정황을 다시 하나하나 바른대로 고하렸다.
승관초 : 제가 앞선 공초에서 발뺌한 것은 비록 살아보려는 꾀에서 나왔으나, 이제 다시 조사함을 당하여 어찌 감히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윤하의 아들이고 권철신의 조카이며, 이순이의 오라비입니다. 인척과 가까운 집안 모두가 사학의 무리일 뿐 아니라, 집에 사서가 있어서 늘상 보아 익히고, 마음을 다해 깊이 미혹되었습니다. 도저동(桃渚洞)의 조신행(趙愼行)이 자주 찾아와 어지러이 강론하였고, 또 이가환, 황사영과는 혈당이 되어 종종 상종하였습니다. 심지어 제 ‘경도(景陶)’라는 이름도 이가환이 지어준 것입니다. 요서를 깊이 믿어 사당과 뒤얽힌 죄는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결안초 : 제 집에서 전해준 학술이고, 집에 사서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보아 익혀, 깊이 미혹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라에서 금지한 뒤에도 오히려 그칠 줄을 모르고, 황사영의 혈당이 되었고, 이가환이 지어준 이름을 받았으며, 여러 해 뒤얽혀서 밤낮으로 강습한 죄는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