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민족은 하늘로부터 '노래축복'을 받은 민족인가보다 생각할 때가 있다. 좁은 땅에, 인구대비 시인 수가 가장 많다는 얘기도 떠돌고, 한국인만 아니었다면 세계적인 유명가수가 되었을 듯한 탁월한 보컬들도 너무 많다. 이식된 서양음악으로 시작된 대중음악의 역사임에도 다른 영역에 비해 성취가 유난해 보이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클래식음악을 익혔지만 지금은 대중음악가로 활동 중인 유희열이 그랬다. "대중음악은...그냥 동네 형들하고 어울리다가 배우는 거거든요" 지금도 중간계급의 서구 아이들이 끼리끼리 밴드활동을 하듯, 대중음악은 태생이 길거리 감성, 또래 감성, 그런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트렌디'하다.
오늘 우연히, 괴물같은 재능을 가진 여성뮤지션 한 사람을 보았다. 작곡, 작사, 편곡을 모두 해내는 싱어송라이터일 뿐 아니라, 데뷔를 프로듀싱으로 한, 실력있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이미 대중음악의 주류가 어쿠스틱이 아니라, '탑라이너'라 불리는, 떠도는 비트와 음원 위에 주된 멜로디만 입혀도 작곡자로 인정되는(-지드래곤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음악의 세계에 있으므로, 몇 가지 음악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면 누구나 작곡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물론, 장사익처럼, 온 몸으로 음악을 부르고, 소리를 내기에 '악보는 모른다. 녹음해서 가져 가면 정확하게 그려준다'는 음악인도 있지만, '나훈아-조용필-서태지'로 이어지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서태지가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탁월한 보컬이나 쇼맨십이 아니라 바로 '프로듀싱'능력과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감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우정아의 음악은, 마치 서태지의 등장처럼, 어려서부터 혼자 디지털 음반악기를 다루고, 연구한 세대, 혁오밴드의 오혁과 유사한 태생을 갖지만, 한국에서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스타일인데다가, 은근히 세계적인 데가 있다. (호주의 'Sia'나 에이미 와인하우스, 혹은 아델의 음색과 유사하다) 혁오밴드의 음악이 '브리티쉬 락'이라 불리는 장르와 친화성이 있다면, 선우정아의 음악은, 소울이나 알앤비, 재즈, 힙합, 일렉트로닉...장르를 분류하기 모호한 혼용이라 곡 마다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저 대중음악을 좋아하고 재능있는 예술가를 좋아할 뿐인 평범한 내 귀에도, 리듬과 화성을 다루는 솜씨, 한 곡 안에 등장하는 '모든 소리'에 대한 감수성(-단촐한 구성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부른 '라이브'인데도 소리가 마치 음반을 듣는 것처럼 고급스럽고 꽉 차있다. 자세히 보면 노래 부르면서 손으로 계속 튜닝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떠올리는것을 거의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듯한 매력적인 음색과 넓은 음역대까지, '천재'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메릴 스트립을 연상케하는 독특한 외모도 그녀의 재능에 아우라를 더해 주는 듯. 서태지는 보컬이 탁월한 가수는 아니었고, 하현후도 괴물같은 보컬이지만, 이 여성뮤지션이 아우르고 있는 음악적 영역과 가능성이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저 비디오 클립을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개그맨'을 직업으로 가진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구조적 한계가 있듯, 이 여성뮤지션도 그렇게 직조된 세상 속에서 버티고 상처받으며 걸어갈 것이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인데, 아래와 같은 인터뷰 속 발화가 눈길을 끈다. 내게 그녀의 이름 넉 자가 또렷이 기억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훌륭한 음악가들이 자꾸 절명하잖아요, 영화 속에선 멋있어 보여도 현실에선 너무 아픈 삶 같아요. 음악을 평생 하고 싶지만, 음악에 잡아먹히고 싶진 않아요. '음악인으로 태어난 사람' 대신 '살면서 음악하는 사람'이 될래요." (선우정아, 조선일보 인터뷰 <Friday>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