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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산문선』의 역사 바로 세우기 |
추석 무렵,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청량한 공기에 상쾌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은데, 밤이면 달까지 밝아 일 년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계절임이 분명합니다. 요즘은 정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시절에 도숙어비(稻熟魚肥)의 살맛 나는 계절입니다. 세상이야 시끄럽고 뒤죽박죽이어서 모든 것이 불만스럽기 짝이 없지만, 추석은 역시 즐거운 명절이자 인정이 흐르는 가절(佳節)입니다. 햇과일, 햇곡식에 식욕이 증가되는 때, 이제는 기운을 차려 참으로 책을 가까이 할 때가 되었습니다. 1983년에 번역을 마쳤고, 1985년 연말에 간행되었던 졸역(拙譯) 『다산산문선』이라는 역주본이 이번에 새로운 모습으로 개역 증보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애초에 출간했던 「창작과 비평사」는 「창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그 출판사에서 공력을 아끼지 않아 예쁘고 단정한 양장본으로 간행하였습니다. 역자로서는 눈물겨운 역경 속에서 번역된 책이어서, 사뭇 많은 회포를 자아내게 하는 책인데, 다시 간행된 책을 손에 쥐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역자 서문에 자세하다.) 5・18민주항쟁으로 수배되어, 기구한 처지에 놓여 있으며, 18년의 유배생활로 기구한 운명 속에서 저술한 다산의 글을 번역하던 일은 특별한 인연의 일이었기에, 전에 나온 책도 볼 때마다 마음에 애잔한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다시 가필하여 새롭게 나온 책을 대하니 더욱 가슴이 뭉클해지기만 했습니다. 다산 자신의 자서전 격인 「자찬묘지명」 2본, 참으로 억울하고 비통하게 죽어간 이가환・권철신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패악한 정치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가를 금방 알게 되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패악한 정치는 왜 끊어지지 않으면서 착한 정치, 즉 ‘선치(善治)’는 지금도 나오지 않고 있는지,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합니다. 다산의 「자찬묘지명」 가운데에 있는, 사도세자와 그의 세자빈 혜경홍씨에 대한 존호(尊號)를 올리면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기록을 읽다보면, 왜 그렇게도 역사 바로 세우기와 과거사 정리는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탄식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억울하고 반역사적인 임오사건(1762년)에 대한 역사 바로 세우기와 과거사 정리 문제는 정조・채제공・이가환・정약용의 소수 정의파이자 진보적인 임금과 신하들의 막중한 책임이었는데, 그들의 고심 탄회한 노력 아래서도, 24년이나 재위했던 정조 임금은 끝내 그 일을 해내지 못하고, 다수파 극보수 세력에 몰려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800년 끝내 정조는 세상을 떠났고, 죽은 채제공은 관작이 추탈되어 비참한 사후의 비극에 처했고, 신유옥사를 통해 다산 일파 또한 처절하게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디고 무디며, 눈과 귀가 어두웠던 하늘은 결코 영원히 눈감지 않았습니다. 고종황제 때에 이르러 사도세자는 장조(莊祖)로 추존되어 뒤늦게나마 역사는 바로 세워지고, 과거사는 정리되었습니다. 우리도 실망만 하지 맙시다. 모든 역사적 정의가 사라지고 후퇴만 거듭되고 있는 지금, 역사는 반드시 바로 세워질 것이며, 과거사는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새로 나온 책이어서 이런 대목 저런 대목을 읽다보니, 특히 그런 부분이 눈에 띄어 감회의 일단을 적어보았습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