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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교훈
BY Dr. Peter S. Ruckman
“현명한 사람은 듣고 학식을 늘릴 것이요, 명철한 사람은 현명한 조언들을 얻으리니”(잠 1:5).
“선지서들에 기록되기를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으리라.’고 하였으니,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운 모든 사람들은 내게로 오리라”(요 6:45).
그리고 또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있다 – “그가 아들이면서도 고난받은 일들로 순종을 배워서”(히 5:8).
여러분은 방금 “현명한 사람은 듣고 학식을 늘릴 것이요,”라는 말씀을 읽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면 그분의 독생자에게 와서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까지도 사람으로서 “순종”을 배우셔야 했다.
문제는 여러분이 무엇을 배울 것인지와 어떻게 배울 것인지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그치라. 선을 행하기를 배우고”(사 1:16-17)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마지막 날들에”(딤후 3:1) 사람들이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7)고 썼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요 14:6)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7:17). 여러분은 교육 제도와 사람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 성경에 대한 무지가 만연해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롬 1:22은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말하나 우둔하게 되었고.”
이 구절은 고등 교육을 받은 여러분 같은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아무 계시도 보여주시지 않는다.
눅 10:21 – “바로 그 시간에 예수께서는 영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시여, 이런 일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는 나타내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아버지시여, 이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선함이니이다.”
이제, 모든 크리스찬들은 배우는 입장이고 그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죄인이 거듭남을 경험할 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기가 되며 누구나 알다시피 아기들은 자라면서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 크리스찬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할 때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신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은혜 안에서 성장할 때 배우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첫 번째 배워야 할 교훈은 이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것이다. 그 때 여러분은 주를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이미 자신의 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주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는가? 여러분은 금전 문제에 있어 주를 신뢰했는가? 한 가지 묻겠다: 여러분에게 더 중요한 것이 여러분의 혼인가, 여러분의 돈인가? 물론 여러분의 혼이 더 중요하다(막 8:36). 만일 여러분이 주께서 여러분의 혼을 돌봐 주시는 것을 신뢰했다면 주께서 여러분의 돈 문제를 책임져 주시는 것을 신뢰할 수 없는가?
어떤 목사가 자기 교회의 한 부유한 회원을 방문해서 그에게 “선교 헌금을 하라”는 요구를 했다. 목사와 잠시 대화한 후에 그 부자는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아는 한 크리스찬 사역은 항상 주라, 주라, 주라, 주라, 주라 밖에 없군요.” 그 목사는 이렇게 응수했다. “감사합니다, 선생, 내가 들어본 말 중에 크리스찬 삶에 대한 최고의 정의로군요.”
“주께서는 나를 매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네,
매일 인도하시는 것도 아니네;
내가 매번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의 주께서는 내 길을 인도하시네.
“내일 계획은 나 알지 못하네;
나는 지금밖에 알지 못하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씀하시리, ‘이것이 길이라,
너는 믿음 안에서 걸으라.’
“나는 그 사실이 감사하네,
오늘의 일들이 내게 족하네;
내일이 오면 그의 은혜가
넘치도록 나를 돌보시리.
“무엇을 걱정하고 조바심 내랴?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고
내 모든 날들을 그의 손 안에 붙들고 계시니
그것들 하루 하루를 내게 주시네
둘째로 배워야 할 교훈은 이것이다: 여러분은 “배수의 진”을 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과거를 잊는 법이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에 손을 뻗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좇아갈 뿐이라”(빌 3:13-14).
여러분의 뒤에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버려야 한다. 몇 해 전에 “Whispering Grass”라는 노래가 유행했었다. 노래의 가사 중에 그 가수의 과거 삶에 관한 부분이 있다. 그 가사는 이렇다: “속삭이는 풀들이여, ‘알 필요가 없는 일들을’ 나무들에게 말하지 말지어다.” 이 가사는 과거가 이미 지나갔고 종결되었으니 잊어버리라는 말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작년에 내렸던 눈은 어디로 갔는가?” 작년에 온타리오, 캘거리, 몬태나, 혹은 버팔로, 뉴욕에 내렸던 눈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눈은 사라졌다. 여러분은 그 눈을 찾을 수 없다.
이런 옛 속담이 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잔인한 일인 줄 알지만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어린아이로 이 세상에 왔을 때 우리에게는 꿈과 상상과 야망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세상을 더 오래 살수록 여러분은 세상이 부패한 것을 알게 되고, 세상이 부패한 것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여러분은 더 시니컬하고 냉소적으로 바뀐다. 여러분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그렇기에 과거는 과거로 남겨 두어야 한다.
어떤 크리스찬들은 그것을 결코 배우지 못한다. 그들에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들은 그 악재에 반복적으로 고생한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고난을 겪고, 재앙이나 쓰디쓴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일이 일어난 순간 이미 과거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라. 그 일은 지나갔고 끝났고 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진하라,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 여러분이 그렇게 하건 말건 시간은 멈춰 주지 않는다. 여전히 해는 아침에 뜨고 달은 차고 이지러지며 조류는 들어오고 물러난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바뀔 것이 없다. 여러분은 신랄함, 슬픔, 후회를 뒤에 남겨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세 번째 교훈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법을 배우라. 여러분은 생명의 빵을 먹고 그 풍성함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즐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성경은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암 8:11)이 올 것이라 말씀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였느니라”(마 4:4). 여러분은 성경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있는가? 욥은 말했다. “내가 그의 입의 말씀들을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도다”(욥 23:12).
아흔 살 평생의 대부분을 성경만 읽으면서 보낸 한 크리스찬 자매가 있었다. 그녀의 손주 중 하나가 그녀에게 성경을 왜 그렇게 많이 읽는지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란다. 최종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지.”
시대가 교회의 휴거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바른 성경 공부와 설교를 찾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오늘날 유럽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이교도 대륙이 되었다. 그곳은 모슬렘, 카톨릭, 무신론자, 동성애자로 들끓고 있다. 내가 보는 그들의 실상에 대해 나는 평소에 내가 편지 답장을 쓰듯이 쓸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미국의 크리스찬들로부터 항상 편지를 받고 있는데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럭크만 박사님, 성경을 믿는 교회를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는 모모 학교를 졸업했는데…(밥 존스, 테네시 템플, 하일스 앤더슨, 그 외 여러분이 알 만한 유명 신학교들) 그는 킹제임스 성경을 고치고 있습니다. 그런 짓을 하지 않는 교회를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아직 여러분이 올바른 성경 강해와 설교를 주변에서 접할 수 있다면 들을 수 있을 때 많이 들어 두라.
캐나다와 스웨덴에서 사람들은 단지 롬 1장을 읽었다는 이유로 체포당하고 있다. 롬 1장에 무슨 말씀이 있는지 아는가? 모르겠다면 여러분의 성경을 펴서 26-27절을 읽어 보라. 이제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기에 여러분은 조만간 성경대로 가르쳤다는 이유로 목사들이 체포, 구금되는 사건들을 보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예전에 레스터 롤로프와 네브래스카의 실레븐에게 그런 짓들을 했었다. 이제 성도착자들 문제에 관해서 세상은 “속도를 올리고” 있다.
네 번째 교훈은 이것이다: 신랄함을 제거하는 법을 배우라. 남편들이 특히 그렇게 하기 쉽기 때문에 바울은 남자들에게 아내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고 명령했다(골 3:19).
어떤 부부가 결혼 십 주년 기념일을 맞이했는데 아내가 말했다. “우리 결혼 십 주년을 맞아서 저녁 식사로 오리 고기를 준비해 볼까 하는데요.”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십 년 전에 있었던 일 하나 때문에 왜 오리를 죽여야 되지?”
어떤 여인의 남편이 매우 아팠다. 그녀는 남편의 친구들 중 한 명에게 남편이 아픈 것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그에게 항상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데 그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서 저렇게 아픈 거야.” 그러자 남편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병이 아니라 선물이네요.”
어떤 사내가 의사를 불러서 말했다. “선생님, 제 아내가 턱이 빠졌어요. 몇 주 뒤에 와서 그녀를 진찰해 주시겠습니까?”
남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크리스찬 아내들도 그렇게 신랄해질 때가 있다. 아내가 일하지 않는 게으른 남편 때문에 신랄해질 수 있다. 남편이 간통을 저지르고 아내가 그것을 수습해야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내들은 그런 상황에서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할 경우 힘든 경험을 하게 되는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런 상황에서 들어야 할 하나님 말씀의 충고가 여기 있다. 그 명령은 이렇다:
“너희는 서로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며 서로 용서하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엡 4:32).
용서하고, 잊어 버리고, 지워 버리고 앞으로 나가라.
신랄한 감정은 전염성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또 쓴 뿌리가 나와서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혹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며”(히 12:15). 내가 경험한 모든 교회 문제들은 좌절된 꿈 때문에 발생했다. 어떤 사람이 감정을 다치고 나면 다시는 용서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지지자를 얻을 때까지 계속 불평하고 험담한다.
다섯 번째 교훈은 이것이다: 여러분은 조롱과 반대, 의기소침을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조롱 정도는 반대 축에 넣지도 않는다. 내 어린 시절에 우리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막대기와 돌은 내 뼈를 부러뜨릴 수 있겠지만 험담은 내게 상처를 주지 못한다.”
진짜 반대는 꽤 힘든 경험이다. 내가 어떤 청소년 교정 시설에서 부흥 집회를 열 때 어떤 근본주의 “거물” 목사가 집회에 제동을 걸었던 적이 있다. 140명의 10대 소년들이 하루에 세 번씩 설교해 달라고 내게 요청했다. 그 “선하고 경건한” 친구가 내가 그 청소년들에게 설교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그는 그 교정 시설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는 그의 교회 회원 한 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럭크만이 그 아이들에게 설교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한 번 이상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 두 명이 합심해서 집회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막아 버렸고 그 아이들은 영적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이것이 진짜 반대라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 결과를 낳는다. 여러분은 “럭크만, 그 일이 있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그 일을 개의치 않고 내 사역을 지속했다. 여러분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거기 매달려 있지 말라. 무시하고 해야 할 일을 지속하라.
실망스러운 일이 생길 때는 책망과 질책을 무시하지 말고 교훈을 얻으라. 그 일이 마귀의 시험인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교훈을 주시거나 여러분의 성품을 개조시키기 위해 시험하시는 것인지 분별하라. 후자의 경우라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교훈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적용하면 된다. 그러나 여러분이 가장 어려운 시험은 사탄이 여러분을 실족시키기 위해 하는 시험이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경고하시거나 올바로 행동하는지 확인하려고 시험하시는 경우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썼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주께서 징계하실 때 고개를 빳빳이 들지는 말아야겠지만 실망한 나머지 하던 일을 다 놓아버리지는 말라.
“어느 날 어느 순간, 실패와 두려움이 찾아올 때
상처와 실수가 약함과 눈물과 함께 찾아올 때
그 고통과 중압감에 짓눌릴 때
그 시간이 찾아올 때, 우리는 버티고 견뎌야 하네.
“그 날, 그 순간이 찾아올 때 침착하고 강해져야 하네,
잠잠히 시험을 통과하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웃어야 하네;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멎으리;
슬픔은 잦아들고 사라지겠고, 밤은 평화를 가져 오리라.
“그 날 그 순간이 찾아오면 하루가 너무나 길어지리라.
마음에선 용기가 빠져나가고 혼은 연약해지리.
자애로우신 그리스도여, 그 때 함께 해 주소서.
용기와 인내, 하루를 견딜 힘을 주소서.
“그가 내게 주신 응답, 참으로 자애롭고 달콤하도다:
‘그렇다, 네가 시험을 통과할 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내가 너를 잊지 않겠고 포기하지도 않으리니 슬퍼하지 말지라.
내가 너를 잊지 않겠고 떠나지도 아니하리라.’
“어제의 고난은 우리가 견뎌야 할 것 아니며,
내일의 알 수 없는 근심 걱정도 지금 알 바 아니네;
앞이나 뒤를 보고 실망할 이유가 무엇이 있나?
자비롭게도 우리는 오늘의 고난만 통과하면 되네.
“어느 날 어느 순간, 주의 날이 찾아오리라;
사람들이 서두르거나 미루거나, 주께서는 그 시간을 계수하시네.
그의 은혜가 족하니, 우리는 홀로 걷지 않는도다;
그 날이 이를 때까지 주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힘을 주시네.”
(Annie Johnson Flint)
여섯 번째로 배울 교훈은 이것이다: 여러분은 악을 미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누구도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미워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다. 여러분이 듣는 소리는 아침, 점심, 저녁 언제나 “사랑” 타령 밖에 없다. 그러나 형제들, 미움이 없는 사랑은 왜곡된 감정이다. 여러분은 잡초를 미워하지 않고 정원을 사랑할 수 없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할 것이며 악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사랑에 대해 모르는 것이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잠 8:13).
“주를 사랑하는 너희들아,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들의 혼들을 보호하시며 그가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내시느니라”(시 97:10).
“주의 법규들을 통하여 내가 명철을 얻으오니 그러므로 내가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시 119:104).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암 5:15).
“사랑에 거짓이 없게 하라. 악을 증오하고 선과 연합하라”(롬 12:9).
이 구절들을 보면, 여러분은 무언가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은 악을 미워해야 한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이렇게 썼다:
“악은 처음에는 끔찍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미워해야 하지만 자꾸 눈에 보인다;
악을 너무 자주 보다 보면 그것에 친숙해진다.
우리는 처음에 악을 견디다가, 동정심을 갖게 되고 결국 포용한다.”
이것은 다소 고어체 표현이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뜻이다. 죄는 실제적으로 괴물 같은 외관을 갖고 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하지만 그것을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너무 많이 쳐다 보면 그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죄를 참아주게 되고 동정심을 느끼며, 결국은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착 행위가 이 나라에 확산된 방식도 정확히 그것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성도착을 가증스러운 죄로 간주하고 증오했었지만 플레이보이 잡지가 보급되고 대법원이 1973년 포르노그래피를 허용하는 결정을 하면서부터 그 죄는 공공연하게 행해지게 되었다. TV와 영화들은 수위를 높여가면서 대중을 계속 포르노에 노출시켰다. 동성애 성도착자들은 여러분이 그들을 참아줘야 된다고 주장하다가 그 다음에는 여러분이 그들을 동정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들이 “태생적으로” 그런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들은 미국과 전세계가 그들의 죄악을 수용하고 장려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러분은 죄가 어떻게 여러분의 자녀들, 가족들, 친구들, 지역 사회, 그리고 국가를 좀먹어 들어가는지 보지 못하는가? 여러분은 죄가 그들에게 가져온 결과에 대해 인정하는가? 그렇다면 왜 여러분은 죄악을 미워하지 않는가? 자신의 삶이 죄 때문에 망가지면 그때서야 죄를 미워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생 귀리를 뿌리고는 그것들이 열매 맺지 말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죄악의 추수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은가? 밥 존스 시니어는 말했다. “젊었을 때 방탕하게 즐기고 살았다면 늙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여러분은 죄를 사랑해서는 안 되며 독거미나 독사를 쳐다보듯이 미워해야 한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죄 짓는 사람들 자체를 미워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원초적 욕망들을 억누르지 않고 분출하면서 공공연하게 가증한 짓을 하는 자들 옆에 괜히 어슬렁대지는 말라는 것이다.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고후 6:17). “어리석은 자들의 친구는 멸망하리라”(잠 13:20). 죄인들이 여러분에게 어울리자고 할 때 “싫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
“친구를 선택할 때 신중히 하라; 진실되고 용기 있는 친구를 찾으라; 그리고 친구가 시험을 당할 때 옆에서 그를 지켜보라, 옛 것에서 새 것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짓된 친구들이 여러분을 시험하면서 악한 일에 동참하자고 유혹할 때
여러분, 용기 있는 태도로, 단호하지만 침착하고 온유하게 대답하라, “싫다!”
잠 1:10은 말씀한다.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유혹할지라도 동조하지 말라.”
마지막 일곱 번째로 배울 교훈은 이것이다: 여러분은 혼들을 이겨오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구령의 “노하우”를 배우라: 어떻게 죄인의 관심을 이끌어 낼지, 어떻게 구원의 필요성을 제시할지, 어떻게 죄의 치유책을 보여줄지, 어떻게 죄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초청할지, 어떻게 함께 영접 기도를 할지, 어떻게 그에게 구원의 확신을 줄지에 대해 연구하라.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잃어버린 혼을 눈 앞에 두고서도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것은 여러분이 시간을 들여서 노력하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고 여러분이 배운 것을 실행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을 구령자로 만들어 쓰시곤 한다. 여러분은 “엉클 버드” 로빈슨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그는 테네시 주에 살던 주류 밀조자였다. 그는 정식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는 말더듬이에다 혀짤배기 소리를 냈다. 그는 2백만 마일을 여행하면서 33,000번의 설교를 했으며 10만 명의 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다. 그런 사람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다면 주께서는 여러분도 쓰실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도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선한 일에 진력하는 법을 배우게 하라. 이는 그들로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3:14).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교훈_2016년 1월(By Dr. Peter S. Ruckman).docx
첫댓글 인내심을 갖는다는 건 제게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네요. 하도 멸시받는 경우가 예전에 많았으니까 더이상 그 고통을 더 견디기 싫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