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草溪)는 어디에 있는가? 경남 합천군 중동부 인구 : 3,969명(2001) 면적 :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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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草溪)는 경상남도(慶尙南道) 합천군(陜川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초팔혜현(草八兮縣)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팔계(八溪)로 고쳐서 강양군(江陽郡 : 합천)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고려(高麗) 때는 초계(草溪)로 하였고 1018년(현종 9) 합주(陜州)에 속했다.
명종(明宗) 때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316년(충숙왕 3)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고, 1913년 합천군(陜川郡)에 병합하여 지금은 합천군(陜川郡)에 속한 초계면(草溪面)으로 남아 있다. |
초계정씨의 5대 종파 내급사공파, 천호장공파, 대제학공파, 박사공파, 대사성공파 |
◆ 초계정씨 시조 1세→諱 배걸(倍傑). ◆ 2세→휘 문(文) ◆ 3세→휘 복공(福公), 복경(福卿), 복유(福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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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종파와 분포 |
내급사공파 (內給事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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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배걸의 4세손 휘 영(榮)은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지냈고 그 후손들을 내급사공파라 한다. 안성을 비롯한 경기지역과 충북, 황해도, 전라도 일원에 세거(世居)해 왔다. 15세 휘 창(昌)의 아들 중원(仲元)의 자손들이 충북 음성의 도청, 위산에 터를 잡고 세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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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장공파 (千戶長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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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휘 행부(幸夫)의 자손들을 천호장공파라하며, 그 후손들은 경기도 이천, 남양 등지와 춘천, 전남, 황해도 일대에 세거해 왔다.
18대에 이천으로 낙향한 뒤에 자손들이 지금의 장호원읍 풍계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호희공파(胡僖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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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공파 (大提學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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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子, 정간공(貞簡公), 휘 문(文)의 손자 윤기(允耆:4세)가 대제학을 역임했으므로 그 자손들을 대제학공파라 한다.
대제학공파 가운데 입경산(入慶山)한 양헌공(良獻公), 휘 연(王+因:10세)의 후손들은 경산일원에 세거하고 있으며 ◀경산파(慶山派)라 한다.
경남의 합천 및 진주에 세거하고 있는 대제학공파를 ◀초계·진주파(草溪·晋州派)라 한다.
그리고 강원도 등지에 터를 잡은 대제학공파를 ◀관동파(關東派)라 한다. 특히, 11세 휘 편(便)이 고려가 망하자 주로 강원도에 퇴거하였으므로 그의 후손들이 강원도 횡성에 많이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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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공파 (博士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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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제7세 박사공(博士公), 휘 승(丞)은 고려국자박사(高麗國子博士)를 역임한 바가 있어, 그의 자손들을 박사공파라 한다.
박사공파는 경남 각지에 산재하며 ◀진정종파(眞定宗派) ◀장양공파(莊襄公派) ◀상시공파(常時公派) ◀용인파(龍仁派)로 나누어져 있다.
특히, 13세 휘 준(俊)의 자손들이 경남 의령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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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성공파 (大司成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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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성 사공(大司成 司公)을 역임한 제6세손 휘 태화(太華)의 후손들을 대사성공파라 한다.
대사성공파는 경남 합천의 쌍벽 일대에 많이 살고있다. 10세 휘사중(師仲)의 자손들은 지금의 쌍벽면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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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정씨의 전국분포 출처:元慶山의 전통문화(1994년) |
1930년에 이르러 초계 정씨의 자손들은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 일원, 화성군 일원, 강원도 춘성군, 양양군, 횡성군, 충북 음성군 일원, 경북 경산군, 경남 의령, 합천군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초계 정씨는 약 8만 3천여명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에 가장 많은 1만 8천여명, 경남에 1만 3천여명, 부산에 1만여명, 경기도에 1만여명, 강원도에 7천여명, 대구에 4천 6맥여명, 충북에 4천 4백여명, 전남에 4천여명, 경북에 3천 5백여명, 인천에 2천 5백여명, 전북에 2천여명, 충남에 1천 6백여명, 그리고 제주에 1백여명 살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