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운전을 잘(?) 하는 나라도 없는 듯
하다. 남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차선을 넘나드는 것은 예사이고, 간혹 정체가 되는 길에는 없던 차선이 두세 개쯤 더 늘어나
있기도 하다. 새로 만들어진 이 임시 차선들은 길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서로 끼어들고 껴주지 않으려는 실랑이로 더 심한 정체를
만들고 피곤해지게 한다.
또한 운전을 하다 보면 짜증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예를들어 내 앞차가 하염없이
거북이 운행을 한다던가,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차선을 걸치고 서 버리는 택시나 버스, 깜박이도 켜지 않고 무리하게 내 앞으로
끼어드는 자동차, 길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를 끼어드는 얌체족 등...... 게다가 남들이 다 이렇게 운전을 하다 보니
정석대로 운전을 하는 사람은 바보이고, 양보를 해 주는 사람은 멍청이가 되고 만다.
나도 스피드를 즐기던 철없던
시절, 그런 상황이 되면 화를 참지 못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곤 했었다.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것은 기본, 내 앞에
무리하게 끼어든 자동차를 앞질러 똑같이 앙갚음을 함으로써 얼마나 무리한 짓이었는지 깨닫게 해 준다던지, 느리게 가는 자동차를
추월해 감으로써 얼마나 그 차가 다른 차에게 피해를 주는지 느끼게 해 주려는 부질없고 하찮은 노력들 말이다.
하지만
차를 경차로 바꾸고 나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추진력이 떨어지는 경차는 아무리 해도 전처럼
앙갚음을 하거나 앞지르기를 하기가 힘들었다. 약이 올라도 발만 동동 구를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면서 차츰 포기하는 법을
배워갔고,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운전이 전처럼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고 짜증을
내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여유 있게 양보도 하게 되었으며, 조급하지 않은 운전이 한결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을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운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밀롱가에서 땅고를 추는 것이 도로에서 운전을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운전할 때 차선을 지키듯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라인을 따라 춤을 추는 것이 기본이다>
땅고는 걷는 게 기본인 춤이기 때문에 제 자리에서 머물러서 출 수 없다. 물론 잠깐 머물 수는 있지만 내내 자리를 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같이 이동을 하면서 춤을 추다 보면 서로 부딪히고 도저히 마음놓고 춤을 추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그래서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밀롱가의 차선, 즉 L.O.D (Line Of
Dance) 라고 부른다.
이 L.O.D는 왼쪽으로 큰 원을 그리며 움직이게 되는데, 모든 트랙이 있는 운동경기나
댄스 종목은 다 왼쪽으로 돌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보통 사람의 왼발보다 오른발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경우 절대 똑바로 앞으로 걷지 못하고 왼쪽으로 같은 자리를 빙빙 돌게 된다고 한다. 오른발이 힘이 더 센 이유에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지만, 지구가 기울어져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도 한다. 심장이 왼쪽에 있는 것과, 왼손잡이보다 오른손잡이가
더 많은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아무튼 그래서 왼쪽으로 트랙을 도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땅고도 왼쪽으로 돌면서 춤을
추게 된다.
그런데 무조건 왼쪽으로 함께 돌기만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춤을 추다 보면
똑바로 앞으로만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도 충돌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차선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운전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차선을 넘나들지 않고 잘 지킬 때 다른 사람과 충돌 없이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
춤을
시작하기 전에 자리를 잡을 때, 내 앞의 사람을 지정해 놓고 그 사람을 따라가면서 춤을 추자. 너무 바짝 붙어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거리를 두게 되면 내 뒷사람으로부터 정체를 만들게 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밀롱가에서 주로 고수들은 가장 바깥쪽 라인을 따라서 춤을 추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리더를 중심으로 봤을 때 내 오른쪽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동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춤을 추다가 사정상 정체를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트랙 안쪽으로 양보하여 내 뒷사람이 나를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초보일수록 밀롱가의 가장
안쪽에서 춤을 추게 된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춤을 추는 땅고는 라인을 지키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다>
내
앞이 막혔다고 앞지르기를 하는 경우를 아르헨티나 선생님들은 가장 무례한 경우로 꼽는다. 그 이유는 다른 차선을 운행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며, 나아가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결국 모든 라인이 엉망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차선을
넘나들며 운전하는 사람을 우리는 난폭운전자라고 부른다. 내 앞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 정체를 하게 되는 경우에 우리는 제자리에서
턴 동작을 하거나 락킹스텝, 혹은 포즈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땅고는 나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다.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이다. 그리고 음악 역시 함께 하여야 하는 춤이다. 나아가 춤을 추고 있는 홀 안의 모든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만들어
내는 군무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다운 밀롱가는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밀롱가이다. 모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함께 진행하고 음악의 호흡에 맞춰 함께 멈추며 어우러질 때 그 모습은 한 사람의 거인이 춤을 추는 것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