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산당은 형도 고모부도 국민도 처형하고
만수산(萬壽山)이 어디 있습니까?
지난 2018. 11. 27일에 노인복지관에서 부여무량사(無量寺)에 고전 답사 겸 놀이를 갖는데 입구의 현판에 만수산 무량사(萬壽山 無量寺)하고 표시데 있다.
만수산 기슭에 자리 잡은 무량사는 통일신라 문성와 때 법일국사때 창건 되었으나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조선 인조왕때 진묵선사에 의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무량사 극락전은 보물 제 356호 무량사의 중심 건물로 외관상 2층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단층구조로 되어 있다. 또 무량사 5층 석탑은 보물 제185호로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무량사의 석등은 보물 제233호로 무량사의 5층 석탑 바로 앞에 있으며 이 석등은 고려초기의 석등으로 선이나 비례가 매우 아름답고 무량사의 극락전과 5층 석탑과 석등으로 이루어진 기본의 무량사로 구성되있다고 보겠다.
만수산 무량사의 절은 절보다 거기서 기거하다가 돌아가신 고려 말의 유학자(儒學者)
김시습(金時習) 보물 제1497호 때문에 무량사가 더욱더 빛났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김시습(金時習)옹은 1435년~1493년 동안 그의 생애는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가던 중에
국내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며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그 곳에서는 머물며 쉬어가고 하며 김시습 옹은 재주와 지혜가 탁월했으니 유가( 儒家)의 종지를 잃지 않았으며 불교(佛敎)와 도교(道敎)에 이르러서는 깊이 원근에 대해서 연구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유학자(儒學者)이면서 행적은 불가(佛家)에서 살아가니 세상 사람들이 그을 보고 해괴한 사람이라고 의심을 할까 봐 두려워했다고 하며 있다 금 술을 먹고 미친 척도하기도하며 평소에도 남에게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시습(金時習)詩 중에서 사청사우(乍晴乍雨)
사청사우 우환청(乍晴乍雨雨還晴)
천도유연 황세정(天道猶然況世情)
예어편응환훼아(譽我便應還毁我)
도명각자 위구명(逃名却自爲求名)
잠간 개다 잠간 비오고 비오다 비개네
천도도 이러하거늘 세정이야 말해무엇하리
나을 칭찬 하는가 했더니 곧 나을 헐 뜻고
이름을 피한다더니 도리어 얻고자 애쓰는 구나
화개화사 춘하관(花開花謝 春何管)
운거운래 산부쟁(雲去雲來山不爭)
기어세상 수기억(奇語世上 須記億)
취한무처 득평생(取歡無處 得平生)
꽃이 피고 진들 봄이 어이 상관하며
구름이 가고 옴을 산은 다투지 않네
세상에 말 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어디서든 즐거워함은 평생에 득이 되느니 하며 김시습옹은 詩을 읊었다.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는
此赤何如
披赤何如-
城隍堂後但
赤何也 -
我輩若此爲
不死赤何如.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어 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햇고
위 글에서는 만수산이 나오지 않는데요‘
정봉주의 (丹心歌)에서
此身死了死了 一
百番 更死了-
白骨爲鹿土
魂魂有也無
向主 一片丹心
寧有改理也라,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했다.
옛날에는 정변(政變)이 있을 때마다 조정에서는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며 싸우고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며 싸우고 정적이라며 어제의 동지도 오늘의 적으로 몰아서 사형 시키고 또한 친 인척 간에도 사형시키고 그 속에 해당되어 처참하게 희생되고 사형당한 분이 단종대왕과 정몽주선생님이라고 보겠다. 조정에서는 피비린내가 낭자 해도 국민들과는 관계가 없으니 국민들은 불난 집 구경하듯 처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도 조정에 몸을 둔 사람들은 희비가 얻 깔려 정권을 잡은 자들은 환호에 춤을 추겠지만 정변에 가담하다가 정권을 잡지 못한 패족들은 무차별하게 처형을 당하던가 아니면 도피하거나 유배형으로 살아가는 인생길을 걷게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는 정보란 입과 입으로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진 때라 국민들은 항상 정부와는 관계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세상이 였다고 보겠다. 또 그때는 국민들의 의식구조가 자급자족(自給自足)할 때며 진정 게으른 사람과 재산 없는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상당이 차별이 많은 때 였다. 그래도 국민들은 잘 살고 못사는 것도 자기 탓이라고 해서 불평불만(不平不滿) 없이 잘 살아갈 때었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생활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과 직장이 좋고 나쁨에 딸아 잘 살고 못사는 것이 내 탓이 아니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직장 없고 나이 많고 어린이들과 장애인들은 직업이 없으니 못 살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보호대상으로 정해서 의식주를 해결 할 수 있게 도와 주어야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기 힘들다”고 까지 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구제하며 살아가자하니 자본주의를 하는 정부는 최저 생활 보호란 이름 하에서 겨우 살아갈 수 있는 구호금과 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살아가자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제도로 살아가는 방법과 공산주의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로 살아가자는 공산주의 제도가 발생해서 공산주의 제도로 살아가는 나라도 있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에 딸아서 민주주의를 한다, 공산주의를 한다,하고 항상 대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이 되었다.
특히나 한국은 남 북한으로 갈라져 살면서도 남한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에서 잘 살아가는 나라다. 그런데 북한은 공산주의로 세계에서 가장 못살아가는 나라가 북한 공산주의 체제의 국민들이다. 또한 북한은 공산주의를 빙자한 독제정치를 하고 있으면서 개혁 개방을 하며 살아가야하는데 그렇지 않고 계속 독제정치를 하려니 국민들이 불평 불만(不平不滿)이 많다. 이런것을 해소하려니 국민들을 더욱더 구속하며 통솔하는데 도 말을 안듣는 사람이 많아서 처벌이 강화대고 그러다보니 정부 내에서도 불평불만자들이 많아서 이들을 길 들이기 위해서 처형하다보니 그 중에 실권자의 고모부와 외국에 있는 자기 친 형도 그사람 많은 공항에서 독글 물로 사형시키니 이런 일은 권력의 최고의 극치의 난동이라고 보겠다. 이런 공산당의 극악무도한 족속 밑에 있는 국민들의 생활에는 안중에도 없는 공산주의를 좋다고 하는 국민들은 하늘 아래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공산당의 간부는 "국민들이 잘 살면 말을 안 듣는다"고 못살아야 말을 잘 듣는다,"하며 이런 말이 어디있나 국민들이 잘 살아야 나라도 부자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인 민주주의로 잘 살아가고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국민들은 못 사는 체제를 보면서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꼬시기를 분배를 잘해서 여러분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며서 그런 정치를 해서 다 같이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런 제도를 만들어서 국민들이 다 같이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공산주의자와 능력대로 노력하고 시장경제체제로 살아가자는 민주주의자와 대립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공산주의자로 말하면 나빠서 “진보주의자”로 자본과 시장경제로 능력주의로 살아가자는 민주주의자는 “보수주의자”로 이름을 변경하고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그래서 요즘 한국은 진보주의 정치와 보수주의자 정치로 국민들이 혼돈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정치가 바뀔 때마다 상대정부 요직 자들은 모조리 무쓴 죄목을 만들어 부치던지 간에 모두 징역을 보내고 있다. 다행이도 사형제도가 없어서 피 비린내는 안 나고 있다. 그중에 정변이 있을 때마다 승자와 패자를 보면서 국민들은 희비(喜悲)가 엇 깔리며 살아간다고 보겠다.
나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방원(詩)의 하여가(何如歌)와 정몽주(詩)의 단심가(丹心歌)를 복도 양면에 부쳐 두고 학생들에게 너히들의 앞으로 지조를 가일(詩)라하며 어느 글을 선택할 것인가 하고 물으면서 이 글을 선택함에 딸아 평생에 생활신조가 달라 질수도 있다고 하며 생각 잘 해서 마음속으로 정해보라고하기에 그 때부터 이 양시(兩詩)를 많이 읽고 택일 해보고자 했으나 아직까지도 마음속으로 택일 하지 못 했다. 이 양시를 많이 읽고 자주 보았지만 자주 만수산은 어디에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 만수산 드럵 칡 얽켜저 살아가듯이 우리도 이렇게 얼켜져 살아가자고 농담하며,,, 이 詩를 자주 읊었던 기억이 새롭다.
북한공산당은 무조건 형도 국민을 살해하고' 정치가 즐거워야, 하는데 무섭 다.
2019. 1. 5. 박성용.
첫댓글 정의와 진실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