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구아의 숙소가 생각나는 곳에 머물고 있다. 이 박에 18유로라니. 동남아보다 싸다. 빈대는 있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터미널에서 20분을 걸어왔는데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혼자 있으면 몸은 회복되는데 심심하고 돔은 재미는 있는데 몸이 축난다. 여튼 6일을 푹 쉬어서 상태는 괜찮다.
여기 죽치고 있는 머스마 사인방은 저녁마다 술을 푸고 낮에는 숙소에서 게기고 있다. 그러더니 오늘은 산에 간다고 한다. '뭔 산?' 했더니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십자가가 있는 산이란다. 안 그래도 저길 갈 수 있나 궁금했었다. '어케 갈 건데' 했더니 택시 타고 중간까지 가면 케이블카가 있단다. 자기네들은 중간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등산을 할 거란다. 솔깃해져서 몇 명인데 했더니 '넷'이라고 한다. 끼어들 틈이 없다.
방에 들어와서 검색을 해 봤는데 저거에 대해선 아무 정보도 없다. 그러면 구글맵을.. 걸어서 두 시간이 넘는다.
저 정도면 걸을만한데 싶다.오키.고우. 짐을 챙기고 나오니 얘네들이 어딜 가냐고 묻는다. '응, 나도 그 산에 갈 거야 '했더니 뭘 타고 가는지 묻는다. 걸어가는디.
녀석들이 심각해지면서 벽에 붙은 전번을 가리키면서 여기 전화해 보란다. 콜을 하라는 얘기겠지. '걸어갈 거야' 했더니 한 녀석이 더워서 쓰러져서 산에서 경찰차를 부를 거라는 둥.. 하고 겁을 팍팍 준다. 경찰차 말고 헬리콥터를 부를 거라고 하고 나왔더니 얘들이 더 난리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날이 장난 아니게 뜨겁다. 이십분도 안되어서 포기각이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서더니 손님이 내리는 게 보였다. 꾀가 났다. 얼른 가서 손으로 크로스 하면서 산위를 손짓을 했더니 얘가 영어를 곧잘 하는 녀석에다가 눈치도 빨랐다. 하우 머치? 했더니 이 녀석이 잠깐 생각하더니 350 한다. 유로는 아닐 거고 데나르면 얼마지 하고 암산을 해보니 만원 언저리 같다. 그 정도면 괜찮네 싶어서 오케이하고 탔다.
와우... 구글 뭐야. 두 시간 넘게 걸릴 거라고.. 이건 축 사망각이다. 택시를 타고 산을 굽이굽이 중턱까지 한참을 갔다. 올라가면서 벌써 걸어 내려올 때는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산길도 아니고 포장도로를 걷는다고.
미친 짓이다. 녀석들이 놀라 기겁한 이유를 알겠다. 이곳은 걸어가기엔 턱도 없고 그만한 가치도 없다. 택시가 도착하고 오백을 주니 녀석이 잔돈을 안 준다. 나 데나르없다고 하면서 잔돈 줘했더니 마지못해 백을 준다. 그려.
니도 내려갈 때는 혼자니 봐준다.
어제 20유로만 환전을 해서 데나르가 지금 얼마 없는 상태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세어보니 택시비로 모자란다. 천상 걸어 내려가야 하나.
나중 일은 나중이고 일단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산속이라 좀 시원하다. 일요일이라 가족 나들이가 제법 된다. 올라가는 산길이 있나 찾아보는데 케이블카가 보였다. 걷기가 싫어졌다. 너무 더운 데다가 산의 나무들이 짤막해서 큰 그늘이 없다.
케이블카 가격을 물어보니 왕복 백이란다. 60이 1유로니 그럼 2500원. 안 탈 수가 없다. 호기롭게 걸어간다고 큰소리친 건 잊어버리자. 창구에 가서 20유로를 내밀었더니 안된단다. ㅠㅠ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카드 그런다. 여기는 트레블 월렛은 지원이 안된다. 신용카드를 꺼냈다. 복제 위험 때문에 가능한 한 안 쓰는데 어쩔 수가 없다.
같이 한 차에 탔던 분들이다. 혼자 타기 싫어서 트게들 했더니 오케이 했다. 숙소 녀석들도 케이블카를 탈 거다에 한표다. 진짜 여기도 한참 올라갔다. 북마케도니아 뭐냐! 케이블카 값도 택시비도 역대급으로 싸다. 여기 기름이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막상 산위는 별거 없었다. 진짜 산꼭대기이다. 공원이나 구경할 건 없고 볼 건 전망뿐이다. 전망은 하도 많이 봐서 그냥 그렇다. 뭐하고 노나했는데 비쩍 마른 까맣고 아파 보이는 강아지가 하나 보였다. 빵을 꺼내 찢어 주니 잘 먹었다. 이 녀석도 빵 하나를 다 먹더니 쌩까고 가버렸다. 힝.
삼십분도 못 버티고 도로 내려왔다. 중간 지점이나 구경할까 하면서 걷다가 화장실은 있나 하고 두리번거렸더니 벤치에 앉아있던 한 가족의 아빠가 불렀다. 뭐 찾냐고? 토일렛 했더니 주차장 쪽으로 가 보란다. 뒤돌다가 생각나서 여기 혹시 버스가 있냐고 하니까 있다고 한다. 걸어 내려갈 생각에 심난했는데 이게 웬 구세주인고. 내가 좋아하니까 버스 표는 있는지 물어본다. 당연히 없지.
생각났다. 여기는 버스 표가 귀해서 사기가 어렵단다. 길에서 파는 곳에서도 버스 표가 잘 없고 버스 기사도 없을 때가 많단다. 그래서 버스 타기가 어렵다고 했다. 난감하네.
그 아저씨가 잠깐 기다려보더니 전화를 했다. 그러더니 지금 버스가 있는데 자기가 말해 놓았으니 그냥 가서 타란다. 무료로. 그 옆의 부인은 달관한 표정이다. ㅋ 원래 그 사람이 오지랖이 넓은 모양이었다.
주차장에 버스가 딱 한대 있었다. 25번이다. 호스텔 벽에서 본 버스 번호다. 이건가 보다 싶어서 버스 기사한테 타도되나 하고 물었더니 진짜로 프리 하면서 타란다.
옆 좌석에 아시아인이 있다. 중국인이고 일하러 왔다고 한다. 그녀는 여기서부터 걸어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단다. 이 더위에..니 대단하다고 했더니 힘들었단다. 지도 공짜로 버스를 탄단다. 버스 표를 안 파니 어쩔 수가 없는지 모두 공짜 같다.
종점이 버스 터미널이다. 일요일이라 버스표 파는 곳은 문이 닫혔다.
시간표 사진을 찍고 터미널에 들러서 환전을 넉넉히했다. 북마케도니아가 마음에 들어서 더 있을 생각이다.
근처에 쇼핑몰이 보여서 갔다. 점심도 먹고 여기 쇼핑몰은 어떤지 구경도 하려고.
몇 개 담아서 계산하는 시스템에서 저만큼 담았더니 194란다. 오천 원가량. 마트에 가서 치약도 사고 빵도 샀다. 이틀 예약한 숙소를 하루 더 연장할 생각이다.
실컷 놀고 숙소로 왔다. 녀석들이 앉아있다가 나를 보더니 갔다 왔냐고 한다. 물론이지 사진 보여줄까 했더니 얘들이 기겁을 했다. 물론 택시를 타고 케이블카에 버스를 탔다는 건 말 안 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