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By 척 상들랭
1969년 콜로라도주 그랜드정크션 시의 T-Heart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때(지금도) 조상 때부터 카우보이였다.
(내 조부는 5,000두의 가축을 기르셨고 그의 말들은 지금 5대 째 “T-Heart” 경기장에서 뛰고 있다.
그래서 내 편지지 상단에 넣는 주소 문구에는 잠 3:5-6을 인용하고 있다.
“네 마음(HEART)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나는 그 해 9월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울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나를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당시에나 지금에나 그 순간 이후 몇 분 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들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고 그 경험은 오직 주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인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실 때 할 경험에만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살전 4:13-18).
나는 중심가로 가서 성경을 한 권 샀다.
나는 종일 밤낮으로 성경을 읽었고 잠에 빠졌다.
그리고 일어나서 내 말들에게 여물을 주고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도시의 번화가에 가서 사람들을 붙잡고 성경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도시에는 LA에서 트리니티 감리 교회를 담임했던 “Fighting Bob”의 아들인 필 슐러라는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가 있었다. 그는 밥 존스 대학에 소개장을 써서 내가 그곳에 입학할 수 있게 주선해 주었다. 나는 내 카프 로핑(로데오) 경기말 한 마리(카프 로핑 세계 챔피언 말에게서 태어난)를 제외하고 경기장과 경주마들을 포함한 나의 모든 재산을 처분했다.
밥 존스 대학에서 나는 “크리스찬”
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온 솜털이 보송한 건방진 청년들 틈에서 30살 먹은 만학도였다.
나는 결혼했고 아이가 하나 있는 상태였다. 나는 수업이 없을 때 건설 현장에 가서 일을 했다. 내 이동식 주택은 올리버 B. 그린의 복음 방송국에서 지근 거리에 있었다.
첫 학년을 다닐 때 나는 연로한 거리설교자 한 분과 함께 주말마다 거리에 나가서 설교했다. 그 다음 해에 나는 매주 밥 존스 대학의 어린 친구들과 같은 교회 버스를 탈 기회가 있었다. 나는 길버트 스텐홀름 박사가 키워낸 “청년 설교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업 시간 때 나는 종종 일어나서 성경 본문을 즉각적으로 어떤 주제에 적용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몇몇 경우에 교수는 내 질문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코트에서 네슬의 헬라어 신약 성경을 꺼내서는 내가 “헬라어”를 모르기에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물론, 그 때 나는 그리스도 안의 영적 갓난아기였을 뿐이기에 왜 성경들이 서로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여러 교수들을 보면서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프레드 애프먼 교수를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어떻게 로마 카톨릭을 두둔하는 이 사람이 구원받았을 수 있지?” 나는 몇몇 교수들이 분명 구원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주말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그리어에 가서 설교할 때 나와 내 동료들이 거리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구금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1월이었고 나는 막 기말 시험을 마친 때였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학교 규율 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위원회에 가자 다섯 명의 “박사들”은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학생인줄 미처 몰랐다! 그들은 내가 학교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질책했다(말하자면 밥 존스 대학의 명성을 훼손했다는 이유). 루이스 박사는 내가 거리에서 성경을 허공에 휘두르며 “당신들은 지옥에 갑니다.
여러분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설교하면 안 되는 겁니다.”
나는 퇴학(출교) 처분을 당했는데 내 아들 레비 다니엘이 대학 부속 Barge Memorial 병원에서 태어났을 때 지불했어야 할 병원비 청구서를 그때까지 아직 지불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갖고 있던 로데오 말 한 마리를 팔아서 밀린 병원비를 해결했다.
다음 수요일 밤에 나는 “Big Bob” 페르손을 위해 설교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는 럭크만 박사의 찬양 인도자로서 그가 집회 때마다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나는 당시 “럭크만”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었다). 내가 해롤드 사이틀러의 학교(타버나클 침례교 대학)에 입학 등록을 하러 가기 위해 내 트레일러 주택을 차에 연결하고 있을 때 “Big Bob”이 트레일러 주차장에 나타났다. 밥 형제는 내게 말했다. “척, 자네 수요일 밤에 와서 설교할 수 없겠는걸. 내가 자네한테 그 설교를 시키면 우리 사람들이 더 이상 그 학교에 출입할 수 없을 거라고 밥 존스 대학에서 내게 통보했네.” 그 때 나는 왜 밥 존스 주니어가 “바람 속의 불꽃”을 지피는 종교 재판관이 되었는지 깨달았다.
밥 형제는 계속 이야기했다.
“척, 플로리다의 펜사콜라로 오게.
거기에 피터 럭크만의 학교가 있다네. 그에게 전화는 할 필요 없으니 그냥 가게.” 나는 그 말대로 했다. 내 아내는 아직 둘째 아들을 임신 중이었고 레비를 낳을 때 했던 제왕절개 수술의 후유증도 치료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녀를 트레일러 뒤에 태우고 플로리다 펜사콜라를 향해 출발했다.
도착했을 때 나는 알린 호튼이 세운 펜사콜라 기독교 대학에 들러서 물었다. “럭크만 박사를 어디서 찾아야 됩니까?” 그들은 말했다.
“러트만이요?”
“아니요.”
“럭크만 말입니다.” “모르겠는데요, 그런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내게 대답했다. 당시 럭크만 박사의 사택은 그 대학교 부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사실, 그들은 나중에 럭크만 박사의 소유지를 매입했다. 그들은 럭크만 박사가 누구이고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나는 결국 럭크만 박사를 만났고 그 날 저녁 그 분은 내 가족을 교회 회원 중 한 명의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경에 대해 깨닫게 된 날이 그 때부터였다. 내 둘째 아들, 폴 유다가 태어났을 때 럭크만 박사는 밤에 병원에 찾아와서 주께서 그 아이를 주의 일에 써 주시라고 기도하고 갔다.
40여년이 지나 그 갓난아기는 내가 개척하고 다년간 사역했던 아이다호주 네이플스 시의 성경침례교회를 이어받아 목회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 수천 명의 바이블빌리버들이 성경을 수호하기 위한 “마지막 때”의 사역 일선에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45년 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모르고 있다.
그 당시에는 불과 몇 명만 싸우고 있었다.
J. J. 레이는 내게 하나님께서는 한 권의 성경만 쓰셨다라는 책의 개인 카피를 내게 주었고 데이비드 오티스 풀러는 내게 그의 두 권의 책, 어떤
성경인가?와 참 혹은 거짓을 주었다. 밥 존스 대학이 페리 F. 록우드를 배척할 때 나는 밥 존스 대학에 있었다. 물론 에드워드
F. 힐스와 같은 다른 사람들도 활약했지만, 형제들, 이 지구상에는 이 영적 싸움에서 피터 S. 럭크만과 같이 5성 장군에 비견할 수 있는 사역을 해 온 사람은 없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조롱, 교란, 비진리, 악의 맹습에 맞서면서 “빛을 밝히는 사역”(시 119:105)을 해 왔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육체의 가시들”을 주지 않으셨더라면(고후 12:7) 그는 승리를 자축할 만한 권리가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볼 때 주께서는 선을 이루기 위해 그에게 가시들을 주셨다(“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 내라” – 딤후 2:3).
나는
캐나다에서 선교 사역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몇 군데 라디오 방송국에서 설교했는데 충분한 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쫓겨났다. 내가 아이다호로 내려와서 성경침례교회를 시작했을 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개울가에 있는 인디언 티피 천막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야 했다. 내 아내는 그 시내가에서 아기 기저귀를 빨래판에 빨았다.
우리는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내가 아끼던 말 안장을 팔았다. 그런 악조건들은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을 통해 우리는 다른 형제들과 서로 돕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그 때도 지금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셨고,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나이다”(시 119:89)라고 말씀하신 그 축복받은 성경을 수호하는 우리의 입장 때문에 “악담”을 듣고 있다. 나는 오레곤 주에서 스페니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럭크만주의자들”의 공헌으로 마련된 1960년판 스페인어 레이나 발레라 성경 덕분에 나는 그 사람들과 성경 이슈를 놓고 자신 있게 맞설 수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해 냈다고 자평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내가 주를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몇 마리의 아름다운 로데오 경주마를 키우고 있는데 어쩌면 천년왕국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말 키우는 일을 시키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한 명의 카우보이일 뿐이지만 주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에 수백만 번 감사드린다!
백그라운드_By Chuck Sandelin(2016.1월).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