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회사를 옮긴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돌아 댕기니 속이 터질듯하지만 참고 보고 있으니 일자리 찾았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안경 부속 공장으로 직업을 바꿔서 안경 부속을 만든 가내공업에 취업을 했답니다. 우째끼나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라고 부탁했다. 안경 부속 공장에도 여자들이 일을 많이 하는 공장입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여자 없는 공장 찾아서 간다더니 여자가 많은 공장을 택해서 일을 한다 카이 그래도 우짭니까 본인이 좋다고 하니 안경 공장에 잘 댕기고 월급은 얼마 안되지만 공백기간이 없으니 다행으로 생각하고 지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남동생은 대구상고 졸업하면서 삼성그룹 취업을 해서 구미로 가고 여동생이 고등학교 댕긴다고 또 같이 생활하기로 하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이다보니 방을 2칸 붙은 걸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전세 120만원 연탄 방인데 연탄불이 방 1칸을 건너서 가니 방이 추워서 한방에 같이 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얼마 안되어서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신랑은 야간에 전기 학원 댕긴다고 저녁마다 학원에 간다고 챙겨가고 여동생은 저 나름대로 공부한다고 열심히 하는데 중간에서 내가 못할일입니다. 친정부모님은 당연히 제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쌀, 야채를 챙겨 주셨습니다. 그래도 나쁜 내색 한번 안하고 생활하니까 여동생이 저녁으로 조카를 잘 돌봐주더군요. 어느날 신랑이 월급을 안갖고 와서 월급 안받았냐고 물었더니 일주일 있음 갖고 온다고 하더군요. 일주일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되어도 월급을 안갖고 왔습니다. 월급을 왜 안가지고 오냐 물었더니 모른다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술집에 돈을 다 갖다 주고 모자라서 술집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신랑 찾는 전화가 수차례 전화가 왔는데 제가 받으니까 먼저 끊어서 이상하다 했더니 나중에서 술집 주인이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느 술집인데 외상으로 술을 먹고 갔다고 술 값 갖다 달라 했습니다. 언제 제가 갖다 준다고 약속하고 제가 돈을 마련해서 얼라업고 슬리퍼 끌고 가니 술집 주인이 깜짝 놀라면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시고 다음부터 신랑한테 술을 안주겠다고 약속하고 왔습니다. 신랑은 거짓말만하고 믿을 수가 없으니까 저는 애들 데리고 부업을 시작 했습니다. 애들이 어리니까 직장을 못가고 집에서 미싱으로 꽃 부치는 부업입니다. 애들이 어리니까 미싱에 올라 앉으면 땅바닦에 앉으라고 땅바닥을 칩니다. 여동생이 학교 마치고 오면 조카들을 돌봐줘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해서 애들 우유 간식도 사주고, 세금도 내고 마음은 편했습니다. 동생이 시간되면 조카들 데리고 놀이터가서 같이 놀아주는데 딴 애들은 엄마랑 온다고 투덜거려도 할 수 없이 이모랑 노는게 습관이 되니까 이모가 공부할 시간이 모자라서 안타깝더라구요, 그 모습을 신랑이 봤는지 얘들 데리고 놀아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미운정은 멀리가고 신랑이 이뿌게 보였습니다. 하루는 얘들끼리 장난치다가 책상 모서리 이마를 부딪혀서(상처남) 그만 피가 얼마나 흐르는지 신랑이 그때따라 직장이 없으니 의료보험카드가 없으니 일반으로 치료를 하는데 치료비가 엄청 나와서 고생하고 다친 아이는 다쳐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밥도 못넘기고 우유도 못 넘겨서 약국에 가서 물어보니 빨리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동산병원에 응급실로 갔더니 급성 후두염이라고 입원하자마자 산소호흡기 달고 아이는 보채고 갑자기 설사도 심하게 하고 입원 치료를 10일 동안해서 퇴원했습니다. 퇴원하고 아이를 계속 업어 달라고 해서 업고 밤을 세우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신랑이 가정을 돌보면서 안경 공장에 새로 취직을 해서 잘 댕기고 퇴근해서 일찍 집에 오고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밥 잘 챙겨주고, 도시락 잘 싸서 주고, 동생도 도시락을 싸야 되니 같이 싸서 주고 했답니다. 갑자기 시부모님께서 전화가 왔는데 시아버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큰 아이는 손잡고 걸리고 작은 아이는 업고 시골에 갔더니 시아버님께서 힘이 없으시고 일어서질 못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손자를 보시더니 웃으시고 괜찮다고 하시고 ‘어이 그놈~어이 그놈~’ 하시면서 손자를 안으시고 ‘밖에 나가서 밥해서 오너라’ 하시면서 손자랑 놀고 계시는데 손자는 할아버지를 아는지 울지도 않고 할배 턱에 손으로 만지면서 자꾸 쳐다만 봅니다. 할아버지는 좋아서 ‘그래 내가 니 할비다’ 하시면서 밥을 해서 상차려 드렸는데 밥 한그릇 다 드시고 아프다는 말씀도 없었습니다. ‘아버님 몸은 괜찮으셔요?’ 말씀 드렸는데 아픈데 없다고 하시고 ‘오늘은 자고 가거라’ 하시고 아들이 궁금한지 물어 보셨습니다. 얼라 아빠도 착하게 일 잘하고 지낸다고 말씀 드렸더니 그래 잘 타일러라 하시고 작은 방으로 가서 주무십니다. 시어머님은 소리를 얼마나 지르시는지 동네가 떠들썩 합니다. 별명이 빈 양철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도 아들 걱정은 되는지 아들이 마음 잡고 일을 해야 된다고 걱정을 합니다. 아들이 수시로 마음이 바뀝니다. 시부모님께서 늘 아들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한번씩 시골에 오면 일을 안하고 윗동네 아랫동네 여자친구들 있으면 놀다가오고 소풀(꼴망태) 한번 쥐보지 않고 마구간에 소 여물 한번 줄 생각도 없습니다. 마당한번 안쓸고 밥묵고 동네 어디를 가는지 하루 종일 안들어오는데 밥 때만 와서 밥 먹고 또 나가서 충풍령으로 놀러 댕기는데 김천시내 가서 돈 없으니까 전당포가서 반지 담보하고 돈다쓰고 없으면 집에 오고 하니까 아버님께서 얼라 아바이는 시골에 오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시골와도 도움이 하나도 안된다고 역정을 내시고 저만(며느리) 왔다 가거라 하시고 혹시 아들 시골 올까봐 노심초사 하시고 꼴망태를 한번 안쥐는데 어느 부모가 오냐 너오너라 하겠습니까 소(밥) 소죽 한번 끓여서 주는걸 못봤으니 갈 때 없으면 방에 배 방바닦에 붙이고, 팔에 문신이나 새기고 좋다고 동네 누가 있나하면서 나가면 함흥처사라카이 저가 시부모님께 걱정하시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제가 일을 많이 하니까 시부모님이 저만 찾으셔서 저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첫댓글 두례님?
신랑이 속 많이 썩였네요!
지금은 사람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