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현상이란 사물을 그대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나 주변의 상황에 따라 실제 사실과 다르게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착시효과를 재미나게 보여주는 그림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천사가 먼저 보이는 사람도 있고 악마가 먼저 보이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아래 그림은 '루빈스의 컵'이라 불리는 그림으로 명도에 의한 착시(바탕과 도형의 착시)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어떻게 보면 컵(술잔)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 두 선분은 직선인데 사선의 영향으로 가운데 부분이 휘어져 보인다.
아래는 고려시대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안춘문이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부재인 공포와 공포 사이에 마치 부처상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도에 의한 착시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고대 건축에서도 착시효과를 고려하여 건물을 설계하였는데 바로 배흘림 기둥(엔타시스)이다. 기둥을 민흘림 기둥으로 만들면 멀리서 봤을 때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약간 갸냘프게 보인다고 한다. 이를 시각적으로 보정하기 위해 가운데 부분을 약간 볼록하게 만든 기둥이 배흘림 기둥이고, 이를 적용한 건축물로 유명한 게, 바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우리나라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시각적 보정효과를 영어로 optical refinement 라고 한다. (과연 고대 그리스인이 이러한 시각적 보정효과를 고려하여 파르테논 신전기둥을 설계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도리아식 기둥이 민흘림 기둥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시각적 교정효과는 제쳐두고 얼마나 밋밋하게 보이겠는가?)
우리 청자에는 이른바 '동전무늬'라고 불리는 문양이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옛 동전은 그 모양이 서양 동전과 달리 동그란 원판에 사각형 구멍을 뚫어놨다. 따라서 그냥 '동전무늬'라고 부르기 보다는 '엽전무늬'라고 부르는게 그 형태에 부합되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엽전무늬라고 부르기로 하자.
아래는 2016년 하반기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인 '신안해저 유물전'에 전시되었던 중국 원나라 향로(제작시기: 13-14세기 초)이다. 몸체 상단을 빙둘러 엽전무늬가 있다. 유물 전시 담당자가 도록에 '동전무늬(=엽전무늬)'라고 설명해 놓은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고고미술학계에서는 이 문양을 동전무늬(=엽전무늬)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같은 엽전무늬는 중국 명,청시대 자기에서 흔히 사용되었다. 엽전을 2방연속 (띠 문양) 또는 4방연속으로 배치하면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여러분은 아래 사진에서 몸체를 두른 문양이 엽전처럼 보이는지요? ^^
(중국 북경 고궁박물원 소장품)
사실 이 엽전무늬도 착시효과에 기인된 문양이다. 이 문양에 어떤 착시효과가 있는지 살펴보자. 동그란 원을 아래 그림처럼 배치하고 왼쪽처럼 색칠하면 '엽전무늬'가 되고, 오른쪽처럼 색칠하면 '칠보무늬'가 된다. 그런데 이 색칠을 길이방향으로 계속 해 나가게 되면 엽전무늬랑 칠보무늬가 똑같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즉, 엽전무늬 = 칠보무늬 인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엽전무늬로 보이기도 하고 칠보무늬로 보이는 것이다.그러면 이 문양을 엽전무늬라고 부르는게 맞는지? 아니면 칠보무늬라고 부르는게 맞는지? 살펴보자.
사실 이 문양의 기원은, 필자가 이곳에서 여러차례 증거를 밝힌 바 있지만,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 기원후 2-3세기경에 제작된 로마의 모자이크 문양을 살펴보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엽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칠보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비아의 빌라 사일린의 저택 모자이크 문양
아래는 터키 에페소스의 테라스 하우스 (부자들의 저택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 문양
아래는 스페인 세비야 박물관에 있는 '바쿠스의 승리'라고 불리는 모자이크 문양
로마시대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는 엽전모양의 동전을 사용한 적이 없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이 문양을 두고 '엽전무늬'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칠보무늬'라고 불렀을까? 로마인에게는 '칠보'란 단어와 개념이 없었을테니 당연히 칠보무늬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무량보주문 (=여의주문)"이라고 불렀을까? 당근 아닐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이 문양의 아키타입(원형)을 인더스 계곡 문명의 토기에서 발견하였다. 이 문양은 인더스 문명의 청동기인이 고안한 문양이었던 것이다. 이 문양이 어떤 경로로 로마까지 흘러들어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대 사회에서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아라비아해로 연결되어 있어 상업적 왕래가 활발히 일어났으니, 아마도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일단 건너간 다음, 그리스를 거쳐 로마까지 흘러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 문양은 로마시대는 물론이고 15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에서도 널리 사용된 문양이다. 카파도키아에 흔하게 있는 기독교 석굴사원의 기둥이나 천정을 장식하는데 널리 사용되었다.
아래 사진은 인더스 계곡 문명의 토기인데, 청동기 시대에 이런 문양을 토기에 그려넣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몸통에 그린 십자형 꽃잎 문양을 보라! 로마의 모자이크 문양이랑 우리나라 청자의 칠보무늬와 똑같이 생겼다. 그런데 인류최초의 청동기 문명을 일으켰던 하라파인이나 모헨조다로인들인 이 문양을 칠보무늬라고 불렀을까? 당근 아닐 것이다. 나는 이 문양이 꽃을 디자인한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토기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의 그림을 서로 연결지어 바라보면 꽃이라는 느낌이 저절로 들기 때문이다.
고려청자 칠보무늬 (칠보무늬의 아키타입은 인더스 문명 토기의 십자형 꽃문양이다.)
사실 우리나라 고고미술사에서 말하고 있는 '칠보무늬'는 실체가 없는 문양이라고 생각된다. 왜 이런 명칭을 붙였는지 정말 궁금하다. 엽전무늬나 무량보주문(=여의주문)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원형에 해당하는 인더스 문명 토기의 십자형 문양을 보면 칠보무늬는 원래 꽃문양이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나는 십자형 꽃잎을 갖고 있는 식물을 열심히 찾아봤다. 바로 '산딸나무'와 '풀산딸나무'의 꽃잎이 정확히 십자형 꽃잎 형태였다. 아래 사진은 '산딸나무 꽃' 사진이다.
나는 고려청자에 사용되고 있지만 실체가 없는 (정체불명의) '칠보무늬'라는 용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칠보무늬'대신 '산딸나무 꽃무늬'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
* 사진 (왼쪽) 인더스 계곡 문명의 토기 문양, (가운데) 산딸나무 꽃, (오른쪽) 청자 투각"산딸나무 꽃무늬"뚜껑 향로
* 사족: 우리나라 퀼트업계에서는 이 '산딸나무 꽃문양'을 일컬어 '여의주문'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족보가 없는 잘못된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