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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부흥의 내용
출애굽기 33: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우리는 이제까지 이 특별한 연구를 해 오면서 모세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는가를 생각해 보았으며, 어째서 그런 기도를 드리는가를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어떻게 그 기도를 드렸는가도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청을 들으셔서 응답을 주시며, 모세가 요구했던 바로 그것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서 행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시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시고 그 축복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부흥이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심으로써 그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예기해야 하며 우리 기도를 통해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언가 이해하고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물론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사도행전 2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까지 교회가 알았던 신앙 부흥의 모든 경우는 오순절날에 일어났던 것에 대한 일종의 반복이요, 그 기원과 시작할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요, 다시 소생함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오순절날에 일어났던 것을 단 한 번에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계속 말하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1장으로 가서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족을 침례 준 일에 대해 다른 사도들에게 변증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도 베드로는 거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5).’
그가 말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는 ‘오순절날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과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도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성령께서 예루살렘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임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부흥이 일어날 떼에는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오순절날로부터 불과 나흘 뒤에 사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2장에서 사용된 어휘와 정확히 같습니다. ··· 여기 사도행전 4장에서는 성령으로 다시 충만함을 입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행한 어떤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행한 것은 다만 기도했을 뿐이고,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그들에게 다시 성령을 부어주셨고, 흘러넘칠 정도로 충만케 하여 주셨습니다.
··· 이것이 바로 부흥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의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의 백성들을 다시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5:18에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했습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우리에게 행해진 것입니다. 이 경우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에게 부어진 것입니다. ··· 저와 여러분은 다만 성령이 충만함을 계속 받을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하며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아야 되고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한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계속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흘러넘칠 정도로 충만하게 되기까지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 어떤 이론을 좋아하거나 어떤 열광적인 집단에 속할까봐 두려워하여 성령을 소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 점을 지적했으니 우리는 이제 이러한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부흥이 무엇인가?’라고 말합니다. ‘어째서 이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가? 어째서 우리에게 그것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라고 강권하고 있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대답은 여기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오늘날 바로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정말 이것이 교회에 필요하며, 그것만이 교회의 오직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을 교회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비교될 수 있는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들은 상황을 탐사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당면한 난제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 그들이 무엇을 제안합니까? 기도하고 금식하며 겸비한 자세를 취하라는 위대한 부르심이 있었습니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성령의 뿌리를 다시 새롭게 하여 주소서라고 울부짖는 울부짖음이 있습니까? ··· 어떤 그룹은 상황을 조사하라는 여덟 가지의 특별한 사명을 지정받습니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정치가들이 그렇게 합니다. 사업가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 영역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묻습니다. 기독교회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닙니까?
··· 이것은 기독교회의 모든 분파에게 다 해당이 됩니다. 그들은 정확히 같은 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능력을 위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도와 겸비한 자세와 하나님의 면전에 고뇌하는 것에 대한 요구는 전혀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초대교회에게 행하라고 명령했던 것을 빼놓고는 다른 모든 것을 행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말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상황이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20세기예요.’ ··· 20세기는 그러한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 제가 말씀드리건대 세상은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사도행전의 입장을 살펴보십시오. 그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거기서 불과 몇 사람들, 매우 평범한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후에 학문이 없고 무식한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 유대인들은 모두 다 한결같이 그들을 대적하고 나섭니다. ··· 이방인들은 모두 이교도들입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전적으로 적대적이고 거스르는 세대 속에 있는 불과 소수의 사람들, 그보다 더 악한 상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여러분은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사자와 같았고 그 힘에 있어서 능했습니다. 그들은 곧 세상을 둘러엎기 시작했고, 불과 몇 세기 안에 그 작은 종파로 여기게 된 것이 대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조사하고 탐사해 보라는 임무를 감당했습니까? 넌센스입니다. 그들은 계속 기도하였고 약속을 기다렸고 성령의 부어주심의 은사를 기다렸습니다.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했습니다. 다시 저는 여러분을 역사 속으로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서도 그와 같지 않았습니까? 한 사람 마틴 루터, 알려지지 아니한 무명의 수도사에게 무슨 소망을 가졌겠습니까? 그가 누구관대 모든 교회를 대적하여 맞서겠으며 15세기, 아니 적어도 12-13세기의 전통을 거스르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일어나서 ‘나 혼자만 옳고 당신들 모두 그릇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건방진 자세처럼 보입니다. ···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다루고 계셨던 사람이었습니다. ···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그 일은 계속되었으며 언제나 그러한 똑같은 양상을 띠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울부짖음과 탄원을 들으시고 그 복락을 보내실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여기에 그 패턴이 있습니다. 상세한 양상들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부흥이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작고 세밀한 국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그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시작하실 때에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의식하게 됨
“진실로 첫 번째 요점은,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게 되고 자기들 가운데에 그 능력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능력과 임재를 의식하는 일이 있습니다. ··· 그들이 언제나 의식하는 것은 자기들 가운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를 갑작스럽게 의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능력과 영광을 의식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것이 언제나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상들이 따라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와 같이 말입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방언으로 말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언제나 반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능력과 영광을 지각하는 일이 너무나 커서 사람들은 그 때문에 땅바닥에 굴러 넘어지기도 합니다. ···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말하느라 시간을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일, 하나님에 대한 의식, 성령의 주관과 임재를 느끼는 일은 강조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에게 하나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 모임을 누가 이끌어가든지 그 사람의 손에서 그 모임을 취하여 성령께서 장악하기 시작하시고, 그 모임을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와 영광과 능력을 의식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날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정도나 그 범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교회가 알았던 모든 부흥의 경우에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2. 진리에 대한 큰 확신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다. 이 결과로 교회는 진리에 대해 큰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는 진리를 탐사하거나 진리를 살펴볼 일을 착수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이야기 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서 사도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전후의 몇 주간 동안, 그들이 얼만 흔들렸으며 정말 거의 확신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었는지를 기억하십니까? ··· 여러분은 이보다 더 낙담어린 상황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일에 대해 흔들렸고 불확실했습니다. ··· 그들이 확신으로 충만하게 되고 충만한 이해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던 것은 오순절날 후에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만나고 나서부터입니다. ··· 이것은 부흥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경우에 이처럼 위대한 일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압니다. 그들이 바로 그것을 증거합니다. 사실상 그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몇 년 동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왔다. 그러나 나는 여러 번의 의심으로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나는 알았다. 그가 나를 사랑하시며 자신을 나를 위해 주셨음을 내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영적인 영역에 대해서, 그 어느 것에 대해서보다 더 많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증거합니다. ··· 말하자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 그것이 바로 부흥의 때에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체험입니다.”
3. 교회가 큰 기쁨과 찬양의 느낌으로 가득 차게 됨
“제가 주목하는 다음의 요점은 교회가 큰 기쁨과 찬양의 느낌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 저는 죠지 휘트필드의 일기 속에서 읽었던 것을 인용하는 것이 결코 싫증나지 않습니다. 그가 췔텐함(Cheltenham)에서 한 번 설교한 적이 있는데 그는 ‘갑자기 주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 거기서 그는 설교를 하며 매우 훌륭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큰 기쁨과 찬미와 감사를 가져왔습니다. 교회가 부흥의 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찬미를 하지 말라고 그들을 말려서는 안 되고, 그들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 그들의 얼굴에는 하늘에 속한 모습이 드러나 보이고 이 기쁨과 이 찬미가 그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사람들이 교회 밖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는 인상을 우리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실 때 사람들은 기쁨으로 충만케 됩니다.”
4. 예배의 요소, 감사의 요소, 다같이 큰 자유로움을 누리는 요소
“다음으로 제가 강조하는 또 다른 요소는 예배의 요소, 감사의 요소, 다같이 큰 자유로움을 누리는 요소입니다. ···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2:42-47).’ ··· 하나님께서 부흥을 보내실 때 함께 예배하자, 찬미하자, 말씀을 숙고하자고 권면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일을 열심히 행하게 될 것입니다. ··· 그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 만일 이러한 일이 교회에 일어날 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부흥이나 재각성의 시기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과 같이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세상적인 방식에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내적인 필연성, 성령의 강권 같은 영광의 체험을 함께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5. 진리를 선포하는 데 담대함과 능력이 주어짐
“베드로를 다시 봅시다. 그는 불과 몇 주간 전만 해도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하녀 앞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예루살렘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다(행2:23).’ ··· 그는 그들과 그들의 관원들과 정부 당국자들을 탄핵합니다. 그는 더 이상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 세상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거룩한 담대함으로 충만해져서 부활을 증거하며 겁 없이 진리를 선포합니다. 다시 그 점은 부흥의 역사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 무디(D. L. Moody)는 성령의 부어주심과 성령의 침례를 경험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전에도 했던 설교들을 해나갔다. ··· 똑같은 설교였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설교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었다.’
··· 그러한 때에 교회에 일어난 일이 바로 그러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교회가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 찾아오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면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세상에 전도하게 됩니다. ··· 우리에게 처음 일어나는 일은 세상이 호기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알아보려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큰 무리가 거기 함께 모여 ‘이 어찐 일이냐?(행 2:5-6, 12)’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교회 밖에 있는 이 수많은 대중들을 향하여 어떻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았듯이 그 난제를 풀기 위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세우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 ‘어떻게 하면 그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가? ···.’ 그런 방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까? 만일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오고 싶으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 그 일을 위해서 동전 한 닢이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 부흥이 일어나는 순간 신문들이 그것을 보도할 것입니다. ··· 교회는 그 일을 광고비 한 푼 없이 광고하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올 것입니다. ··· 베드로는 채 설교를 끝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 사람들이 죄에 대한 깊은 각성을 하게 되었고 겸비해져서 상하고 놀라고 두려운 심정으로 그 설교 중간에 울부짖으며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것이 바로 모든 부흥의 줄거리입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설교 중에 설교를 하지 못하게 하는 유의 그러한 반응이나 무질서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깊은 회개와 깊은 개혁입니다. 사람들은 새 생명을 받고 옛 사람은 청산합니다. ··· 부흥이 일어나고 성령께서 당신의 역사를 행하실 때 도덕적인 전체 조건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유흥가의 문이 닫혀지고 유흥사업이 망합니다.
···회심자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됩니다. ··· 틀림없는 방식인데 그것은 성령께서 교회에 임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령이 다시 부어지는 것이고, 교회가 새로운 능력과 권위의 침례를 받고, 증거와 설교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 오늘날 바로 그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습니까? ··· 부흥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고 다른 어느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 일을 위해 쏟는 것을 확실히 하십시오. ···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사 복되신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
첫댓글 전하지 않아도 구원 받는 역사, 성령께서 직접 만나시는 역사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