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따끈따끈 구들방 이불 속에서 나오길 망설이다 여럿이 함께 준비한 장터를 위해 멀리서 일찍 길을 떠났을 이들을 생각하며 일어났습니다.
이번 행사를 함께 기획한 고운 님께 드릴 동치미를 뜨러 부엌 뒤란 동치미 항아리 뚜껑을 여니 살얼음이 살짝 얼었네요. 국자로 조심스레 살얼음을 깨고 비닐봉지에 무 몇 개를 건져 담고 살얼음 국물도 조금 퍼 담노라니 그새 손끝이 아렸습니다.
함께 하는 이들과 나눠 먹으려는 마음으로 찹쌀현미가루와 쑥가루에 죽염간을 해서 손으로 고루 비벼 김 오른 찜솥에 쪄낸 후 콩고물을 묻히고 접시로 잘라서 인절미도 만들었습니다. 틈틈이 마끈으로 뜬 마수세미도 한 보따리 챙겼습니다.
‘채식평화연대와 함께하는 사랑과 평화의 나눔장터’는 채식레스토랑 ‘단지’ 사장님이 일요일 쉬는 날이라 그 곳을 내어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집에서 만든 채식먹을거리와 생활용품 나눔장터에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즐길 다양한 만들기체험, 싸게 파는 아나바다 장터와 기업이 후원한 옷을 파는 장터, 건강강좌를 곁들였습니다.
수익금을 추운 겨울을 어렵게 보내는 이웃(사람과 동물)들과 나누기로 했습니다.
어머니 손맛이 우러난 채식두계장을 끓여 오신 분,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대추차를 달여 나눠 주신 분, 생채식 하며 현미찰떡에너지바를 만들어 아침 일찍 대전에서 두 아이 앞장 세워 오신 분, 달걀과 우유 없이 순 식물성으로만 달콤하고 고소한 통밀 소보로빵을 만들어 창원에서 오신 분, 과감히 이름을 바꾸고 식생활도 현미채식으로 바꾸신 분, 10여년 고혈압약을 달고 사시던 남편분과 황성수 선생님의 '힐링스테이'에 다녀오신 후 현미채식전도사가 되신 분, 열을 덜 쓰는 채식(로푸드)를 시연해 주러 오신분,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수세미를 뜨신 분, 주일 예배 마치고 고소한 현미흑임자잣죽을 끓여 달여 오신 분, 단식하고 보식 중에 현미가루에 치자 쑥 백년초 가루를 넣어 알록달록 사탕떡 만들기를 하신 분, 현미채식이라면 울산 어디든 달려가 기꺼이 건강강의를 해 주시는 베지닥터 분,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려 앞장 서시는 분, 좋은 사람이 최고의 선물임을 아는 분, 사람들의 작은 재주를 잘 엮어내시는 분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채식으로 세상이 더 평화로와지기를 바라는 채식평화연대 회원들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서 그 곳에 왔습니다. 어른들은 장을 펼치고, 가(울타리)를 치고 아이들을 풀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은 다양한 채식 먹을거리를 배불리 맛보고, 구경도 하고, 오물조물 만들기 체험도 했습니다.
아침 일찍 먼 길 와서 엄마가 만든 현미찰떡 에너지바를 떨이째 팔고, 옆자리 이모가 뜬 마수세미도 팔아 그 돈을 야무지게 챙겨주던 대전에서 온 홈 스쿨링하는 남매, 엄마가 만든 통밀소보로(채식)빵 20개를 금방 동이 나게 팔아 흐뭇해 하던 창원에서 온 어린 남매, 엄마가 뜬 마수세미는 부끄러워서 하나도 못 팔고 여기저기 눈 여겨 보다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200원이면 에이즈 예방 접종 1명, 500원이면 한 끼 식사를’ 줄 수 있다는 모금함에 용돈 1,000원을 넣은 아이, 처음보는 채식먹을거리와 체험에 정신멊이 신났다는 아이, 안 쓰는 물건들을 챙겨 와 열심히 판 개구쟁이 형제까지.
행사 수익금은 사실 아주 작을지 모릅니다. 비슷한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과 평화의 기운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장터에서 아이들은 마음이 훌쩍 자랐을 거 같습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가르친다>는 것은 적당히 가(울타리)를 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적당히 ‘가(울타리)를(르) 치면’ 아이들은 그 안에서 스스로 자라요.”
물론 ‘적당한 가(울타리)’가 중요하겠지요.
첫댓글 늘 감동을 주는군요
고맙습니다^^
아이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간섭이 많아져서 적당히가 잘 통제가 안되는 아빠입니다 ^^;
훌륭한 글에 감사 ^&^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귀한 손님이 와서 아쉽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