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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답사입니다. *
정기답사는 홀수달 둘째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이번 답사는 2010년 호랑이해인 "경인년"을 맞아 시산제를 올린 후 답사를 진행하려 합니다. 교수님께서 바쁘신중에 사전답사를 다녀오시고 시산제 지낼 장소를 정하셨습니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한 잣나무가 우거진 야트막한 능선에 자리한 "혈"에서 시산제를 지내려 합니다. 2010년 한해도 "아풍동" 회원님들 무탈하게 해주십사 소원을 담아 정성을 다해 준비하오니 많이 오셔서 함께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시산제를 마치고 충주시내 일원을 답사하려 합니다. 2009년에 이어 테마답사로 진행중인 "청풍김씨" 묘소를 답사합니다. 2009년 6월에 의왕시 왕곡동 일원에 있는 "청풍김씨" 묘소와 2009년 11월에 인천시 "김재로"묘소를 답사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충주에 위치한 "김 극형"묘소와 "벌"명당을 답사하려 합니다. "청풍김씨"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발복도는 답사 당일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운 날씨가 예상되오니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혹시 눈이 올지도 모르니 방한복 및 등산화, 모자, 장갑, 특히 등산용 지팡이를 준비 하시면 더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성으로 준비하오니 모쪼록 많이 참석하셔서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고맙습니다.
1. 일시 :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2. 장소 및 시간 : 아주대 정문 오전 9시 출발
3. 답사지
1) 이상급 묘(충북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엄동마을)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문인(門人)으로,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입격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의 정자(正字)·저작(著作)·박사를 거쳐 형조좌랑 등을 지냈다. 광해군 후반에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인조반정 후에 등용되어 장령·집의(執義)·단천군수(端川郡守)·연안군수(延安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 수령 때는 선정을 베풀어 신망을 얻어 세자시강원의 보덕(輔德)이 되었으며, 이어 병조참지로 있을 때는 치군(治軍)·축성(築城) 등 국방에 공헌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扈從)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묘사(廟社)를 받들고 강화도(江華島)에 들어간 형 상길(尙吉)을 찾아가다가,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2) 경녕군(敬寧君, 1395.12.13~1458.9.9) 묘(충북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엄동마을) 경녕군의 휘는 비이고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개성의 정안군(후의 태종)의 사저에서 효빈 김씨의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관후하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양녕·효령대군과 같이 수학하고 세종대왕의 사부가 되었다. 다섯 임금을 섬기면서 충성을 다하여 국정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필히 자문에 응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정윤이 되고 그 해 10월에 원윤으로 승차하여 종부시 제조가 되었으며, 1417년(태종 17) 9월에 정헌대부 경녕군으로 봉작되었다. 1419년(세종 1) 8월 중국 명나라와의 마찰이 있자 상왕 태종대왕의 정사로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어 국교를 정상화시키는 동시에 파격적인 후대를 받았다. 특히 황제의 친필로 된 어제서(御製序)를 비롯한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 해 11월 18일 환국하였는데 상왕 태종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지금의 무악재까지 나와 환영하고 연회를 베푼 일은 매우 유명하다. 이때 공의 나이 24세였다. 공은 그 후에도 세종대왕을 수시로 보필하고 자문에 응하는 등 국방의 대비책과 불교문화의 정화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명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는 조정을 대표하여 국교를 돈독히 하였다. 1423년(세종 5년) 창기 일점홍과의 음행(淫行)으로 탄핵을 받았으나 세종대왕의 비호로 무사하였고, 1425년 숭록대부(崇祿大夫), 1430년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가 되었다. 세종대왕은 승하할 때 “후일 경녕군 묘소는 왕릉에 못지않게 예우를 갖추어 드리라.”고 했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배위인 부부인 청풍김씨는 참의 김관(金灌)의 딸로 1416년(태종 16)에 혼인하여 군부인에 올라 1450년(세종 32) 4월에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잔작동 축좌이다.
3) 청풍김씨 김관(金灌) 부인 박씨 할머니 묘(충북 충주시 이류면 금곡리 쇠실마을)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청풍군(淸風君) 김관(金灌)의 부인 박씨 할머니 묘이다. 문중이나 지역에서 벌명당이라 부른다. 박씨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묘를 만들 때 수많은 벌들이 나와서 자리를 잡아준 지관이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풍수적인 분석을 하면 섬룡입수하는 기룡혈이다. 과룡처인 듯한 곳에 묘가 있고 앞으로 더 뻗어나간 능선이 안산이 되는 봉우리를 만들었다.
4) 김극형 묘(충북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능암부락)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태숙(泰叔), 호는 사천(沙川)·운촌(雲村)이다. 이조판서 김인백(金仁伯)의 아들이다. 박지계(朴知誡)의 문인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산골로 들어갔으며, 병자호란이 끝난 후 창릉참봉(昌陵參奉)·동몽교관(童蒙敎官)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후에 익위사부솔(翊衛司副率)·공조정랑 등을 거쳐 화순현감으로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성리학에 정통하여 유학의 대가 송시열(宋時熱)과 성선체용설(性善體用說)에 대해 편지로 논쟁을 벌였으며,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김극형의 묘에 대하여 대부분의 풍수인들이 청풍김씨 발복의 근원이라고 극찬을 한다. 멀리서 볼 때 수려한 개장과 천심이 나타나고 가까이 가보면 입수룡이 기복과 위이가 확실한데 묘가 있는 곳이 용진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5) 우천석 우팽 부자 묘(충북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우천석은 고려(高麗)의 무신(武臣)으로 본관(本貫)은 단양(丹陽)이며 태어난 시기와 사망(死亡)한 시기를 알 수 없다. 1268년(원종 9) 몽고와의 강화가 이루어 진 후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서 낭장 박신보(朴臣甫)와 함께 몽고의 사신(使臣) 왕국창(王國昌)일행을 흑산도로 인도하여 뱃길을 살폈다. 이는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의 도발을 미리 막고 견제하기 위한 몽고의 조처였다. 1273년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로 제주(濟州)를 거점으로 하여 저항하는 삼별초를 공격(攻擊)에 참가(參加)하였다가 전함을 파선하였다는 이유(理由)로 다루가치(達魯花赤) 이익(李益)의 문책을 받아 투옥(投獄)되기도 하였다. 1277년(충렬왕 3) 전라도안렴부사(全羅道按廉副使)를 거쳐, 1280년 잡단(雜端 : 어사대의 종 5품 관직)에 올랐다 우천석의 묘(墓)는 송강리 행정마을에 있는데 묘의 면적은 약 50여평 정도이고 묘는 방형분이다. 돌을 다듬어 4-5단을 쌓아 호석을 두르고 있는데 호석은 높이가 앞면이 90cm이며 뒤로 가면서 산의 경사면 때문에 낮아져 50cm정도이고 뒤로는 흙으로 연결되고 있다. 네모난 호석의 앞면은 263cm, 옆면은 550cm 정도이며 호석 위로 흙을 쌓고 잔디를 둘렀다. 석물은 상석 일체와 상석(床石)의 좌측에 옛날 묘표(내용 : 高麗侍中丹陽禹公諱天錫之墓)가 있고 우측에는 1980년에 세운 새로운 묘비(내용 : 高麗侍中丹陽禹公之墓)가 있으며 묘비 앞에 문인석(文人石)이 있다. 묘 바로 뒤에는 우천석의 아들 우평의 묘가 있는데 조성 양식이 우천석의 묘와 동일하며 〈고려밀직부사추봉시중사우공평지묘〉란 옛 묘비(墓碑)와 1980년에 세운〈문하시중평장사단양우공지묘 배군부인 청풍김씨합부〉라 새겨진 묘비가 있다. 묘소 입구(入口)에는 천등재(天登齋)란 사당(祠堂)과 숭덕문(崇德門)이라는 출입문이 있고 사당(祠堂) 바로 좌측에 1982년에 단양우씨제단비가 있다.
6) 황담 묘(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시간이 되면 답사합니다) 황담은 토정 이지함 선생의 사돈이라 하는데 이 자리는 토정선생이 자리를 잡은 곳이라 한다. 처음 묘가 있던 곳은 충주댐 건설 후 장마철에는 물이 잠기기 때문에 백호 능선으로 이장을 하였다.
4. 회비 : 4만원 (차량 대여비 및 중식 석식 기타 비용 포함) (당일 총무에게 납부)
5. 연락처 : 총무 김 은 희 (010 - 3228 - 6489) 회장 김 종 대 (018 - 234 - 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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