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기소 소식을 접하면서 잠시 농담이 아닐까 기대해봤다. 괴상한 논리를 펼쳐보임으로써 검찰이 스스로가 가진 무지막지한 권력에 대해 조롱을 보내는 게 아닐까 싶은 기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정도 유머감각이 있었다면 사회가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테지만. 농담이 아니라면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정부요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이어지는 걸까. 공적인 일을 맡은 사람에겐 사적인 개인의 영역과 공적인 역할의 영역이 다르다. 그리고 이 공적인 영역에 대한 비판은 제한없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 비판이 정당하다면 수용하고, 아니라면 반론을 제기하면 된다. 이런 제한없는 비판을 통해 공적인 영역은 건강한 긴장감을 얻고, 그를 통한 논의과정을 통해 진행되는 일은 탄력을 얻는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당연한 과정 자체를 문제시하고, 공적인 논의에 개인이 피해를 주장하는 일이 일어나는 건가. 정 전 장관이 육체로 강림한 이명박 정부의 소고기 협상정책이라거나 인간으로 위장한 광우병 바이러스라도 된다는 건가. 그렇다 하더라도 공적인 영역에 대한 비판과 의견제시는 그 자체고 다른 강제력에 의해 제한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판단되고, 지지받거나 비판받으며 자율적으로 제어되면서 해당 의제에 대한 논의가 발전시켜간다. 이렇게 자유롭게 제시되는 의견에 대한 판단을 사회구성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게 성숙한 민주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과정에 힘을 가진 몇몇이 그 힘을 남용해 어깃장을 놓고, 그에 따라 정당한 의견제시가 잘못한 일 취급을 받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곳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그저 동물의 왕국일 뿐이다.
결국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건 그 의도를 문제삼겠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그리고 언론에게 그 의도를 제한한다는 건 결국 언론활동을 금지시키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어떻게 모두에게 공정한, 모두를 만족시키는 언론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모든 현상은 해석일 수밖에 없고, 모든 해석은 왜곡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말하는 것은 자신이 본 것이요, 인간이 본 것은 자신이 믿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 또한 제작자의 의도가 담긴 편집된 매체다. 그 의도가 담긴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모든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문제삼겠다는 거랑 다를 바 없다. MB정책에 대한 분노로 차 프로그램을 만들든, 소에 차여서 분풀이로 만들든 그 사실 자체는 중요한게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이 낚았다고 신나서 이메일 공개한 건 그저 그만큼 인권감수성이 없다는 걸 드러낸 일일 뿐이라는 거다.
언론이 가진 의도에 대한 정당성의 판단은 이해당사자들의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닌, 그 매체를 접한 수용자들의 입장과 리액션을 통해 이뤄진다. 북극의 눈물을 보고 지구온난화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난만큼 그 의도는 인정을 받은거고, PD수첩을 보고 얼마뒤 청계광장에 2만명이 모이면 그만큼 그 의도가 인정을 받은 거다. 이렇게 다중에 의해 정보가 재의미화됨으로써 정보가 권력을 가진 소수나 개인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걸 방지하는 것도 현대 민주사회의 장점 아닐까. 그걸 부정하는 건 임금 마음대로 학자들을 파묻고 협객들이 복수를 위해 날뛰던 시대에 대한 향수 때문인가.
그리고 뭐, 사건을 맡는 경찰의 입장은 절대적으로 공정한가. 검찰활동 자체가 의도가 담긴 편집의 연속일텐데. 사전에 나름의 시선과 입장을 가지고 사건에 접근해 질문을 만들어 조사를 진행하고, 그걸 토대로 편집하고 배치해 공소내용을 제작하고, 재판을 연출하고. 의도적인 정보배치와 과정과 누락이 어디 남의 동네 얘기인가. 당장 용산참사 재판에 공개하지 않는 수사기록은 뭔가. 재판 때 유리한 정보들만 나열하고 불리한 증거는 어떻게든 입수해 공개하지 않는게 검찰의 오랜 연출관행으로 아는데?
안타깝지만 검찰이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그 선동방송은 당연히 나름의 의도가 담긴 편집과정을 거쳤지만 없는 소리를 한게 아니고, 그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반응 또한 검찰에겐 결여된 감각인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백만명이 그저 소가 미쳤다니까 놀라서 촛불로라도 소독해보려고 달려나온걸까. 단순히 주저앉는 소가 무서웠으면 축산업 공장주들에게 따지고 채식을 비롯한 지금과는 다른 식습관에 대해 고민하는 운동들이 바람을 탔겠지.(그러지 않은건 좀 아쉽지만) 그런데 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까.
시민들은 검찰의 빈곤한 상상력만큼 덜 떨어지지 않아서 배후세력 없이도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걸 못 읽고 단순히 선동방송과 그로 인한 폭동을 이야기하는 건 PD수첩과 동시대를 사는 시민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검찰식으로 얘기하자면 불순한 의도를 가진 모씨에 선동된 무지몽매한 검찰이, 정부에 다른 목소리를 낸 시민들을 선동에 놀아난 우매한 무리로 만들고 있으니까.
그런 검찰을 커버쳐주려는 청와대의 반응도 정말이지 눈물겹다. 동정표로 무마하긴 글렀을텐데. 청와대는 자신들의 말이 그대로 자신들에게 향하는 것을 모르는 걸까.
그렇게 엄청난 사회적 반발과 '혼란'을 불러온 정치를 했다면, 외국같으면 벌써 정권이 퇴진했을 일이다. 공공의 가치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한 행동들에 대해 정치의 이름을 붙여줄 수는 없다. 그건 잘해야 협잡이요, 명예훼손도 못되는 모독이다. 이거야말로 음주운전자가 정부를 이끌겠다는 것 아닐까. 이명박 정부는 음주운전 동호회인걸까?
그리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국민장 때 공중파 방송에서 모두 같은 내용이 나오는게 그렇게 지겨웠다면 지난 올림픽 때는 어떻게 참았을까. 설마 메달 하나 딸 때마다 지지율 오르고 촛불은 꺼지니 신나서 그랬던 건 아니겠지? 듣기싫은 말에 징징대는 세 살짜리 아이처럼 그랬을리 없다. 하지만 자꾸 그 수준으로 보이려하는 이 어리석은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 '본말전도'의 뜻은 알고 썼는지 모르겠는데, 비판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가 딱 그렇다. 정부는 단어 앞에 V가 붙었나 아닌가 따질 시간에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뭔지, 비판들을 관통하는 핵심이 뭔지나 분석해봐야하지 않을까. '쇄신'은 만능치트키가 아니니까.
비판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민주사회를 구성할 자격도 없고, 공동체 속에 함께 살자면 민폐 뿐이다. 지금이라도 함께사는 방법을 배우던가, 지구를 떠나던가 해야하는 건 아닌가 싶다.
첫댓글우리사회는 의외로 부조화가 매우 깊은 것 같습니다. 자칭 민주화의 대부라고 하는 김 대중 씨와 그 추종세력도 광주 전남에서는 한날당과 같은 짓을 버젓이 하고 있답니다. 우리사회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게 분명합니다. 원칙과 상식, 기본이 통용되는 사회를 그리며 살아있는 양심이 판을 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깨어 있는 의식을 갖춘 국민이 힘써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의민주주의의 심부름꾼으로 뽑아놓고 먹고 마시고 자고 하는 것밖에 할 게 없다는 무력감...세상 살기 싫어지고 사람들이 측은하지만 이제 다시는 이 땅을 떠날 궁리를 하거나 어디 숨어버리거나 해야겠다는 못난 생각은 안 하겠습니다. 가신 님에게 두 번 죄짓는 게 되니까요. 건강 유의하시고 잘 견뎌내시길 바래요.
첫댓글 우리사회는 의외로 부조화가 매우 깊은 것 같습니다. 자칭 민주화의 대부라고 하는 김 대중 씨와 그 추종세력도 광주 전남에서는 한날당과 같은 짓을 버젓이 하고 있답니다. 우리사회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게 분명합니다. 원칙과 상식, 기본이 통용되는 사회를 그리며 살아있는 양심이 판을 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깨어 있는 의식을 갖춘 국민이 힘써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의민주주의의 심부름꾼으로 뽑아놓고 먹고 마시고 자고 하는 것밖에 할 게 없다는 무력감...세상 살기 싫어지고 사람들이 측은하지만 이제 다시는 이 땅을 떠날 궁리를 하거나 어디 숨어버리거나 해야겠다는 못난 생각은 안 하겠습니다. 가신 님에게 두 번 죄짓는 게 되니까요. 건강 유의하시고 잘 견뎌내시길 바래요.
결어에 동감을 표합니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