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과 전쟁 레퀴엠
[예술에의초대 2023.6월호]
유월과 전쟁 레퀴엠
정두환 (문화유목민)
...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
6월의 시 / 이해인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유월이다.
우리네 삶의 유월은 아름답고 화려한 저 장미보다 더 붉은 핏빛의 아픔이다...
지난 100년의 세계사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처럼 강인하고 다양하며, 적극적인 삶을 살았던 민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안정을 요구하는 진정한 평화의 길은 아직도 묘연하다. 평화를 위한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전쟁을 막아야 함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직접 경험한 우리네 어르신들이 한분 두분 세월의 언덕을 넘어가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하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위기에 강한 민족의 특성을 잘 반영하며,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였음에도 불안하고 허전한 생각은 왜일까?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생각과 사고의 성장은 이루어졌는가? 서로를 향한 마음과 진정한 회복은 이루어졌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이는 유월이다.
유월이 오면 필자는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의 전쟁 레퀴엠(War Requiem)을 듣는다. 이 곡은 브리튼이 1961년과 1962년 사이 작곡하였으며, 초연은 1962년 5월 30일, 메레디스 데이비스(Meredith Davies.1922-2005)가 지휘하는 버밍험 심포니 오케스트라(Birmingham Symphony Orchestra)에 의해 이루어졌다.
텍스터는 미사와 더불어 영국 시인이자 군인이었던 웰프레드 오웬(Wilfred Edward Salter Owen. 1893.3.18.-1918.11.4.)의 시가 사용되었다.
“나의 주제는 전쟁이며, 전쟁의 아픔이다...
한 시인이 오늘날 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경고일 뿐이다.”
시인 웰프레드 오웬의 말이다. 시인은 시(詩)로 전쟁의 아픔을 경고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인의 가슴 저린 아픔의 사연을 외면한다. 모두 6악장으로 구성되어있는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은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단조의 비극적인 세계를 시작으로 오웬의 네 개의 시가 들어있는 ‘분노의 날(Dies Irae)’을 지나 ‘봉헌문’, ‘거룩하시도다(Sanctus)’, ‘저를 구하소서(Libera me)’ 구원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나면 ‘천국에서(In paradisum)’는 솔리스트와 합창이 모두에게 축복을 빌며 음악은 끝이 난다.
이 전쟁 레퀴엠은 1958년 새로이 건축된 코벤트리 대성당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기 위해 브리튼에게 작곡 의뢰하여 거행된 미사 음악이다. 1940년 영국은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된 코벤트리 대성당을 존치 시키며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고자 옛 대성당 옆에 코벤트리 대성당을 새롭게 지었다.
우리는 ‘한’(恨)의 민족일까? ‘흥’(興)의 민족일까? 보기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필자는 우리 민족을 ‘흥’의 민족으로 이야기한다.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서도 죽은자의 넋과 산자의 한을 달래기 위하여 진혼가를 노래하는 민족이다. 격렬한 리듬과 소리 속에 망자와 산자의 한을 한덩어리로 엮어 소리의 제물을 올리니 말이다. 우리도 전쟁의 아픔으로 얼룩진 유월이 오면 가슴 저린 슬픔과 사연들이 생의 한가운데로 소환되어 울부짖는다. 생사의 확인도, 애달픈 사연의 전달도, 점점 어려워지는 시간을 맞고 있으며, 이를 지켜보는 세월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져 내일을 알 수가 없다.
유월이다. 필자는 또다시 전쟁 레퀴엠을 듣는다. 언제까지 이 행위를 반복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산자는 망자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국을 위해 희생당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산자의 당연한 책무이자 의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향한 총부리를 이제는 치워야 한다.
유월의 망령(亡靈)이여!
그대들의 숭고한 정신을 빌어 기도하오니
이 땅에 전쟁을 거두어 주소서!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으로
아군도 적군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동행하게 하소서!
https://www.bscc.or.kr/01_perfor/?mcode=0401060000&mode=2&no=11124&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