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 / 김규련
서둘러 샤워를 하고 쫒기는 와중에서도 나는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상복에는 매치할 차림이 별로 없다. 검은 색 바지와 블라우스를 입고, 얼마 전에 메이시 스토어에서 산 검정 스웨터를 걸쳤다. 그것은 정가의 1/3, 세일가격에 샀기로 감사의 마음으로 애용하는 터였다. 예식 복장이 너무 허술하다 싶어 다이아몬드 귀걸이와 진주목걸이를 걸었다.
남편은 벌써 차를 대기해놓고 나를 은근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늦어도 잔소리를 하거나 채근하는 법이 없다. 그저 일상이 그런 듯 묵묵히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가진 많은 장점들 중의 하나로 나를 편안하게 해줘서 감사하는 대목이다.
평소에 자주 만나곤 했던 이웃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에 가야했는데 아침에 너무 느긋하게 내 볼일을 다보고 왔나보다 하고 속으로 후회했다.
그날은 일주일 전에 시작한 라인댄스 교습이 있는 날. 고등학교 후배가 하도 권하기로 지난주부터 시작된 스케줄이다. 땀 빼기에는 아주 좋은 운동이었다. 나보다 한참 아래 나이, 젊고 예쁜 사람들과 어우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내게도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된 듯 활기가 넘쳐났다. 그래서j 장례식장에 갈 시간이 빠듯해지고 말았다.
우중충하고 쌀쌀한 가을 날씨 탓인지 장례식장은 슬픈 분위기로 더욱 한기가 돌았다. 고인은 90세에 돌아 가셨지만 열심이 자기관리를 하셨고 꽤나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셨다. 우리 옆집에 사셔서 이따금씩 저녁에 마실 나온 듯 들려 세상 돌아가는 얘기랑, 속의 얘기 등, 많은 추억을 공유했었다. 그분 손자 조사를 들으니 내 마음은 더 울적했다.
95세인 우리엄마 생각이 겹쳐져 눈물을 흘리다 진주목걸이에 손이 갔다. 그게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진주목걸이는 지난 해 한국방문 때 엄마가 갖고 있던 보석들 중에서 특별이 내게 주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서둘러 목에 걸고 왔다 그것을 잃어버렸다.
세상사 돌고 돈다더니 오래전에 읽었던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 내용이 생생히 떠올랐다. 문교성 장관 관저 야회 초청을 받았던 르와젤 부인 마틸드. 친구 포레스티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목에 걸고 그 밤 화려한 신데렐라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새것을 사서 반환했던 고리채무 때문에 10년 고생 끝에 할머니가 다돼버렸던 이야기다.
그 밤, 내내 그녀의 남편 르와젤이 아내가 다녔던 곳을 밤새 두루 찾아다녔던 것처럼, 장례식이 끝나기 전에 나는 내가 다닌 장소를 역 추적해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그 진주 목걸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교회 주차장에서 승차. 목사님들과 여러 장로님들, 권사님들이 다 같이 타고 온 교회 버스 안과 내가 앉았던 자리도 샅샅이 찾아봤다. 거기도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를 후회 했다. 진작 여유를 갖고 옷을 입을 걸, 진주목걸이를 단단히 목에 걸고 확인할 걸, 엄마가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실까? 정말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목걸이였을 터인데...
애석한 마음이 떠나질 않아 장례 장소에서 교회까지 돌아오는 길에 줄곧 바깥쪽만 내다보고 있었다. 남편이 위로의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 교회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거야” 라고. 마침내 출발지 교회에 도착했다. 나는 어둑어둑한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발견치 못했다. 맥이 빠져 어깨가 축 널어졌다. 체념했다. 낮에 자동차를 세워뒀던 곳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자동차문을 열려고 했다. 내 발밑 쪽에서 무언가 설핏 스친 듯했다. 아! 거기 그게.
어쩔 수 없다고 단념했던 것이 기적으로 돌아온 그 기쁨은 잠시. “믿음이 적은 자여......” 그 말씀이 떠올라 내 청각의 환청을 듣은 것 같다. 물 위를 걷다말고 물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더딘 자성. 선견자처럼 내게 순정한 위로의 그 말을 건넸던 남편의 예감은 어떤 경지에서 나온 건지 짐작됐다.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진주 목걸이 얘기로 다시 돌아가본다. 뜻밖에 부딪친 현장은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놓는다. 전율이 이는 그 반전. 우연한 기회, 길거리에서 마주친 포레스티는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다. 잃어버린 다이아몬드 목걸이. 4만 프랑 채무 때문에 꽃다운 시절을 바닥 삶으로 다 보냈다는 말을 들은 그녀의 탄성. “참 불쌍한 마틸드! 그 목걸이는 모조품이었어. 기껏해야 5백 프랑 밖에 되지 않는 거였어.”
내 진주 목걸이 해프닝은 모파상의 ‘목걸이’처럼 심금을 울릴만한 반전은 아니지만 나와 엄마와의 마음이 전처럼 같을 수 있어 해피 엔딩이다. 이렇게 미국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 더욱 그랬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주차장. 모두들 타인의 주차공간을 존중 해주었기때문에 대낮 5시간동안이나 그 목걸이가 거기 그냥 있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 살만한 세상. “하나님 감사 합니다” 저절로 나온 그 말이 밤 기류를 타고 부푼 내 마음이 풍선처럼 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