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수상자 : 이권현
수상 일시 : 2023년 12월 01일 금요일 오전 11시
수상 작품 : 나의 스승 방직공장 아가씨
나의 스승 방직공장 아가씨
어느새 나도 할아버지가 되어 자식들과 손자들이 함께하는 추석이나 설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가족의 모임인데도 가끔은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우선 그들이 사용하는 말이 사뭇 다르다. 압축표현이나 신세대들이 쓰는 언어가 가족 간에서조차도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비단 언어의 표현에서 오는 어려움만이 아니다. 시골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나로서는 급속도로 발전한 정보화기기 활용 능력이 무척 버겁기만 하다. 여덟 살 손녀가 다루는 스마트폰이며 태블릿피시의 조작 능력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쩜 이 사회는 변화하는 사회 속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습과 훈련이 절대적이며 평생학습의 자세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에 배움과 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는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함에 따라 그에 비례하여 학습의 양을 늘려 가려 하는데 나는 체력적으로나, 기억력 등 정신적인 면에서도 예전 같지 않아 다가올 미래의 최첨단 시대가 결코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특히나 정규교육과정의 학교 교육을 마친 지가 벌써 50년, 그때와 지금의 교육내용이나 학습 매체 등은 달라도 너무 크게 다르다. 그러기에 상시 유ㆍ무형식과정을 통해서 정보화 교육에서부터 인문 소양 교육까지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 왔다고 생각했는데 많이도 부족함을 느낀다.
어느 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습했던 내용을 까맣게 잊게 되어 절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52년 전 절망의 환경을 극복하고 은행원으로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서 당당하게 사회활동을 마치고 지금은 은퇴자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제자를 생각해보면서 너무나 안일한 생각으로 살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52년 전, 나는 두메산골 출신으로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등록금 면제로 입학은 하였으나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지금처럼 고정적으로 아르바이트할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숙식 문제가 학업의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나는 그때 교회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야학 반딧불 학교의 고입검정고시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치며 교회로부터 약간의 보수를 받았고 교회 내 별동에서 기거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그때의 학생들 대부분은 버스차장과 방직공장의 아가씨들이었다. 낮 동안 고된 일과를 마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공부에 임하던 그들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이 울컥해진다. 그때 그들의 처연한 삶을 오늘 우리는 얼마나 리얼하게 읽어낼 수 있을까. 그때 그들은 배움에 한이라도 맺힌 듯 감기는 눈꺼풀을 까 올리며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신념으로 학습장을 꽉 메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대학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강원도 고성지방의 최전방 소대장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주말이면 병사들과 배구, 축구를 했으며 가끔은 소대원 단체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를 다녀온 한 병사가 숙녀복 차림의 여성 사진을 보이며 나에게 물었다. 혹시 이 사진 주인공을 알겠느냐고. 당연히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병사의 설명에서 그녀는 교회의 반딧불 야학에서 공부했던 아가씨로 병사의 누나라고 했다. 병사의 누나는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 했다. 야학을 통해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야간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의 모 은행에서 근무했었단다.
하지만 그놈의 출신이 뭐가 그리 중요했는지, 성실하게 일 잘하는 동료에 대해 칭찬은 못 할망정 방직공장에 근무했다는 딱지를 붙여서 ‘공순이’라고 수군거리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니 그 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상상하게 된다. 그녀는 출신학교, 학맥 등의 편 가름에 끼일 곳이 없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은행을 퇴사 교사의 길을 택하였단다.
당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교사 과정 연수를 마치면 선생님으로 임용이 될 수 있었다니 은행을 퇴직한 것이 전화위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부대 단체 사진 속에서 나를 발견했고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나를 찾아낸 것이다.
어쩜 이 소식이야말로 내 인생 처음 맛보는 큰 감격이었고 행복이었던 같다. 대학생 시절 나의 불우했던 청년기를 생각하면서 열정과 진심으로 야학생들을 이해하고 가르쳤었다. 선생님이 되었다는 야학 학교 학생은 당시 22세의 방직공장 아가씨였으며 제일 앞줄에서 많이도 졸면서 공부했고 23살에 중학 과정을 마친 후 초등학교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불가능이 없음을 증명해 보인 경우라 하겠다.
나는 52년 전 제자의 공부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잠시 새로운 시대에 전개되는 변혁의 일상에 두려워했던 생각을 바꾸며 용기를 얻게 되었다. 양질의 삶이란 현실사회의 대열에서 낙오자가 되지 말아야 했다. 배움을 통해서 시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늘 새로워짐을 느낄 수 있을 때 삶의 질은 더더욱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래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고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기말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생소하기만 했던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 빅데이터에 기반한 ‘4차산업혁명시대’라고 하는 용어들과도 많이 친숙해졌다. 조만간 졸업작품으로 나만의 창작품이 될 디카 시집을 발간할 계획을 하니 마음은 벌써 푸른 하늘을 비행하는 기분이다.
칠순을 넘기면서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며 무력해졌던 나를 배움의 현장으로 이끈 야학당 제자 방직공장 아가씨, 그녀는 분명 내 제2의 인생에 있어서 롤모델이고 침묵의 스승이었다. 난관이 닥칠 때마다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냈다는 제자의 일생은 감동적이었고 이는 나에게도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내가 지식의 내면화를 이뤄내고 노년기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방직공장 아가씨는 진정한 나의 스승이다.
이권현 : leekh0424@naver.com
2023년 2월 한국수필등단 독일 Duisburg-Essen 대학교(전자공학과) 공학박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조선대학교 교수. 동신대학교 공과대학장 · 대학원장 역임. 한국폴리텍IV대학장. 유한대학교ㆍ김포대학교ㆍ국제대학교 총장 역임.
수상 소감
독자들과 호흡하는 작품으로
아침이면 늘 지인들이 보내오는 카톡 소식에 핸드폰은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따라 경쾌한 운율은 한국수필가협회와 월간 한국수필이 선정한 제16회 한국수필 신인작가상에 선정됐다는 낭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황혼의 나이로 월간 『한국수필』에 등단한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인데, 신인 수필가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상이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상을 통해 독자들의 반향을 일으키는 창작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주문도 따르는 것 같아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저의 작품을 신인작가상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독자들과 호흡하는 작품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