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챙기지 않고
ㅡ주천대에서
술을 챙기지 않고
주천대에 가는 것은
아무래도 심심한 일일 것이다
무욕의 가을 냇물을
한 사내의 맑은 얼굴이 바라보고 있다
지난 계절엔
물비린내에 피냄새가 배어 있었다
한밤중에는 바람에 쓸리는 댓잎 소리가
누군가의 끌려가는 신음 소리로 들릴 때도 있었다
달 아래 모래밭을 배회하는 일이 잦았다
맞은 편 석벽에다
난 왜 단단하지 못한 결심만을 할까
하소연을 던지면
더 외로워져라
더 외로워져라
그 사내의 알 듯 말 듯한 답변이
벽을 뚫고 나와
내 무른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술을 챙기지 않고
주천대를 찾는 것은
아무래도 심심한 일
이 가을의 빛만으로는 취할 수 없는 일
*시작노트
'한 사내'란 울진에서 20여년간 은둔 생활을 한 만휴 임유후(1601~1673)를 두고 한 말이다.
그를 빼고 주천대를 말할 수는 없다. 그의 동생과 숙부,숙부의 아들이 인조반정과 관련하여 죽임을 당하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울진에 왔다. 그는 한양사람이었고 당시 나이가 27세였다. 그가 왜 울진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울진의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었다.
윗시의 2연은 그의 울진 이주 초기 시절의 임유후를 상상하며 써보았다. 그때 그의 마음은 석벽이 되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제목을 '술을 챙기지 않고'라고 한 것은 지역의 주민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어울렸던 임유후와 그가 작명한 주천대를 생각하며 지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