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와집(凝窩集) 이원조(李源祚)생년1792년(정조 16)몰년1871년(고종 8)자주현(周賢)호응와(凝窩), 취송(鷲松), 나고(懶高), 호우(毫宇), 만귀산인(晩歸山人)본관성산(星山)초명영조(永祚)시호정헌(定憲)특기사항조승수(趙承洙), 정종로(鄭宗魯)의 문인. 유정문(柳鼎文), 유치명(柳致明) 등과 교유
凝窩先生文集卷之四 / 上樑文 / 道東書院水月樓上樑文
철종 | 3 | 1852 | 임자 | 咸豐 | 2 | 61 | 鄭蘊의 「桐溪續集」을 교정하다. ○ 8월, 玄風, 昌寧, 統營, 晉州, 錦山, 德山 등지를 유람하다. ○ 12월, 대사간이 되었으나 곧 체차되다. |
集靑衿而講衣鉢之傳。寒水照月。控翠渚而仰門牆之卓。畵棟連雲。混混一鑑源頭。煌煌三字楣額。念斯文始闡於環嶠。猗遺躅尙傳於戴尼。河東道交。想聯卓於伊院。漢西高弟。肇登門於煕川。理餘韻於玉溪。古亭琴濕。尋舊刻於釰澤。內院碑刓。盖先生直接於淵源。俾後學不迷於門路。光風霽月之都在。立得小學根基。秋毫泰山之可傡。期至大聖閫域。主敬直達於天德。靑邱倡性理之論。率禮偶符於地名。玄都値文明之運。所以百世之公議。莫不一辭於儒宗。尸祝初卜於雙溪。蕩然八載之燹。縟儀克擧於兩廡。巍乎五贒之班。謂密邇於墳庵。中年倡移安之擧。起曠感於涓濩。聖朝渙頒額之音。矧惟嫡脉之相傳。迺有寒翁之繼起。襲徽美於我之自出。啓正路於抽關。究志業於人皆可爲。奉洪規於八室。肆後人景慕靡間。東楹揭虔。粤諸贒磊落相望。別祠旁列。獨恨門制之不備。只緣院力之未遑。繚垣牆於中正堂前。旣有藏修遊息之所。歷階級於喚主門外。尙欠高明爽朗之觀。暇日登臨。庶幾循序而造極。遺風緜邈。詎緩塗雘而餙墉。遂合一鄕之衿紳。載營三間之架棟。層欄邃閣。占面勢於端方。曠野平沙。敞眼界於縹緲。萬疊雲嶂穹碑。如見於羹牆。一曲淸江眞源。直通於伊洛。非欲侈大於舊制。自此增重於吾林。駕風霆於空樓。庶豁堯夫之胷次。裝烟月於小艇。擬續武夷之櫂歌。課後進於詩禮絃歌。雨珠逬地。慕前修於揖讓升降。星斗在天。得其門而入焉。次第敬堂義牖。登斯樓而望也。羅列智水仁山。聊凭百尺之脩樑。敢陳六偉之短唱。
拋樑東。活水源流左右逢。瑤琴試奏舷頭月。理契鳶魚在鏡中。
拋樑西。蒼翠羣巒入檻低。十疊雲屛開活畵。幅巾端坐簡編稽。
拋樑南。第一江山眼界參。麗澤當年傾盖處。至今遺躅野人諳。拋樑北。洛臯齋裏思先則。蓮纓抵案坐深更。活潑天機隨處得。拋樑上。谷霧林霏不敢障。勿四省三眞訣傳。肯敎冥擿終迷向。
拋樑下。照寒亭畔月明夜。須將方寸證靈通。寶鑑玄珠光氣射。
伏願上樑之後。益鞏基礎。永蕆苾芬。流峙有控護之靈。旣濟功役。風雨無動撓之患。大壯規模。吾道由是而益明。阽曠原而高覰。儒風菀然而丕振。望周行而齊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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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선생문집 십팔(晦堂先生文集 十八)
회당집(晦堂集) 卷三十五 / 墓碣銘 默軒李先生 [萬運] 墓碣銘 幷序
회당집(晦堂集) 장석영(張錫英)생년1851년(철종 2)몰년1926년자순화(舜華)호추관(秋觀), 회당(晦堂)본관인동(仁同)일명석교(碩敎)
철종 2 1851 신해 咸豐 1 1 10월 24일, 龜尾 仁同 角山里에서 태어나다.
고종 26 1889 기축 光緖 15 39 봄, 곽종석, 이승희 등과 安陰의 金猿山을 유람하다. ○ 心蘇亭과 葛川書堂에서 향음주례를 행하다. ○ 여름, 「四禮節要」를 抄集하기 시작하다.
고종 36 1899 기해 光武 3 49 봄, 庶母 金氏의 상을 당하다. ○ 곽종석, 이승희, 李斗勳 등과 이진상의 「四禮輯要」를 白蓮菴에서 교정하다. ○ 여름, 李種杞, 張升澤, 이승희 등과 檜谷書堂에서 曺植의 「南冥集」을 교정하다.
고종 40 1903 계묘 光武 7 53 겨울, 陜川의 梅村으로 이거하다. ○ 「儀禮集傳」을 저술하다.
고종 41 1904 갑진 光武 8 54 가을, 이승희, 곽종석이 방문하여 小學堂에 모여 文敬公 金宏弼을 위한 儒契를 창설하고, 士相見禮를 행하다. ○ 겨울, 백형과 高靈 盤龍寺에 머물자 李基元, 李俒, 족손 張在鵬 등이 수학하다.
- - 1911 신해 - - 61 3월, 소학당에서 강학하다. ○ 곽종석과 이진상의 「春秋集傳」을 茶田에서 교정하다. ○ 5월, 「춘추집전」을 大浦里 祖雲憲陶齋에서 교정하다. ○ 9월, 學稼亭에서 강학하고 行禮하다.
- - 1915 을묘 - - 65 여름, 소학당에서 강학하고 金宏弼과 鄭汝昌의 釋菜儀를 행하다.
- - 1920 경신 - - 70 봄, 金宇顒의 東岡精舍에 대한 記를 짓다. ○ 鷄龍山과 호남의 명승지를 유람하다. ○ 부지암정사에서 「旅軒集」 重刊을 위하여 舊本을 교정하다. ○ 灆溪書院에서 鄭汝昌의 「一蠹集」 刊所 首任으로 청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않다. ○ 서울에서 人道公議所가 창립되어 總議長으로 취임할 것을 청하였으나 사양하다. ○ 겨울, 인동의 靜谷山齋에 머물며 강학하다.
- - 1921 신유 - - 71 여름, 玄風 第一江山亭의 儒會에서 강학하고, 김굉필과 정여창의 석채의와 향음주례를 행하다. ○ 서울 太極敎 유생들이 출석을 요청하였으나 사양하고 〈經義七條〉를 지어 보내다. ○ 5월, 卜潤弼이 모사하여 影像을 그리고, 화상에 自贊하다. ○ 8월, 부인상을 당하다.
회당집(晦堂集) 장석영(張錫英)생년1851년(철종 2)몰년1926년자순화(舜華)호추관(秋觀), 회당(晦堂)본관인동(仁同)일명석교(碩敎)특기사항이진상(李震相)의 문인. 허유(許愈), 곽종석(郭鍾錫), 이승희(李承熙), 윤주하(尹冑夏) 등과 교유
晦堂先生文集卷之一 / 詩 / 第一江山
第一江山第一人。至今行客式虛濱。吾東理學明如許。知有先生啓鑰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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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堂先生文集卷之二十六
記
第一江山亭記
天下數山泰山居第一蓋自仲尼之登天下小而泰山高 也東方之山橫亘四維崢嶸而特秀者多不讓於泰山之 高而未聞有以泰山名天下以其未有仲尼之登也昌玄 以來泰白之山折而北又西北夾右大江江上有一小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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楕而翼夷其上如磨盤其形粹然如正人君子之端拱舒 好此寒暄金先生之所嘗登覽而時則有若一蠧鄭先生 自安陰命駕契道同志相與講學於此後人名之曰第一 江山也夫山之高於此者未嘗得其品第而第一之稱反 在乎培塿之小阜何哉是在人不在山得其人則一拳可 高於崑崙不得其人則泰山之高而遜於邱隴也二先生 倡東方性理之學孔道始明及其沒而祭于尼聖之廟是 亦東方之仲尼也是亦東方之第一人也第一人之所過 江山之爲第一不亦可乎後人之爲先生之學者謀於其 後承作亭於江之上山之下修契而落其成名其亭曰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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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江山名其堂曰二老江山之名載在郡誌而百世之下 流傳於野人之口繼自今其名始闡天壤在而江山在矣 江山在而斯亭不廢矣斯亭不廢而二老之精采流韻亦 將與天壤而俱廢矣噫人生斯世做得第一人方盡人職 不可要做第二等人也今吾人生先生五百年之後尙不 免爲下等人則登斯亭也得無愧於其心哉於是而講二 老之道於是而讀二老之書况然摳衣於函丈之間而移 舟於江亭之下推以上之以達於尼丘洙泗則是又天下 之第一江山也二老何人仲尼何人有爲者亦可爲第一 人也是記于第一江山與我同志者而勉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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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堂先生文集卷之三十一
祝文
第一江山亭 寒暄一蠧兩先生釋菜祝文
伏以先生道承千聖師尊百世江山如舊遺風不昧多士登亭依歸有地謹據朱禮釋菜伸誠牖我羣蒙歆我芬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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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서집(巖棲集)
過玄風登第一江山
在茅亭江上。寒暄先生送一蠧至此曰此吾鄕第一江山也。後人因以名之。○己酉
誰遣長江抱此山。更敎雙鳳下人間。千年往跡無人繼。只有閑雲去復還。
암서집 제4권 / 시(詩)
현풍을 지나며 제일강산에 올라서 읊다
기유년(1909, 순종3) 〔過玄風 登第一江山 己酉〕 모정(茅亭) 강가에 있다. 한훤당(寒暄堂) 선생이 일두(一蠹)를 전송하며 이곳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 고향의 제일강산이다.”라고 했는데 뒷사람들이 인하여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누가 긴 강으로 하여금 이 산을 에워싸고 / 誰遣長江抱此山
다시 봉새 한 쌍을 세상에 내려 보냈나 / 更敎雙鳳下人間
천년 전 옛 자취 계승하는 사람 없어 / 千年往跡無人繼
단지 하릴없는 구름만 가고 또 오는구나 / 只有閑雲去復還
[주-D001] 제일강산(第一江山) :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모정 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과 일두(一蠧)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화를 당하고 내려와 함께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긴 곳이다. 경관이 뛰어나 제일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산군 10년(1504)에 처음 지었다고 하며, 고종 22년(1885)에 고쳐 지었다. 이로정(二老亭)이라고도 한다.[주-D002] 봉새 한 쌍 : 김굉필과 정여창 두 사람을 가리킨다.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정석태 김보경 (공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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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輿地圖書) 慶尙道 玄風縣
山川
〔新增〕 照華峯。 琵瑟山南角。 俗傳唐僧一行云“此峯照中華”, 故因以名之。
大見峯。 琵瑟山最高頂。
天王峯。 與大見雙崒。
雙溪。 在縣東五里。 宣廟朝, 士林以金宏弼遺馥之地, 建祠享之。 溪上有樹曰照寒亭, 或謂公命名, 或謂院儒取公“照孤寒”之句以名之。 書院後移甫老洞, 卽今道東也。
玉山。 在縣西五里。 獨立野中, 爲官基下關。
戴尼山。 在縣西十里。 一名台離。 南自昌寧太白山來, 回龍蟠據。 金宏弼居其下焉。 後人以金公之尊奉先聖若戴然也, 故因名“戴尼”。 下有率禮村, 三綱閭、七旌門輝映路左。
第一江山。 在縣西十五里。 有古城基, 不知何代所築。 金宏弼、鄭汝昌往來遊賞, 相與稱之曰“第一江山”, 後人因名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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輿載撮要 卷六 / 慶尙道 玄風縣
形勝
第一江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