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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불교
 
 
 
카페 게시글
백일법문 서론 2. 중도사상 - 4) 중도사상의 독창성②
정수 추천 0 조회 40 09.12.24 14:40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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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25 09:25

    첫댓글 불교의 중도(中道)와 유교의 중용(中庸)은 비슷하여 개념상 혼동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많이 혼용하여 쓰는 것 같습니다. 중용에서 중(中)이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며, 용(庸)은 평상(平常)을 뜻합니다. 유교에서는 중용을 인간 처세의 중요한 윤리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사(子思)는 중(中)이란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는 상태의 마음이라 하고 화(和)는 이미 발한 정(情)이 중(中)에 의해 조절된 상태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희로애락 어느 것에 치우쳐 평상심을 잃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니 평상심을 잃지 말라는 사회적 처세적 측면이 강합니다.

  • 09.12.25 09:37

    이에 반해 중도(中道)는 유교의 중용에서 보듯 치우친 감정의 조절을 통한 평상심 찾기를 넘어 양극단에 흐르는 견해를 타파하고 바른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나친 쾌락을 구하는 길이고 한 가지는 지나친 고행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이 두가지 길을 버린 것에 중도가 있습니다. 흔히 두 가지 극단은 有와 無)로 대변됩니다. 불교는 연기사상에서 보듯 모든 것(實相)은 공(空)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디에 집착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다 없다에 집착하는 것은 쓸데없는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있다-없다, 좋다-나쁘다로 대변되는 극단적인 견해는 유아적(有我的) 견해입니다.

  • 09.12.25 09:54

    양 극단에 집착할 만한 것이 없다는 무아적(無我的) 견해는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취하게 됩니다. 양 극단에 집착하는 것은 무명(無明)이 가리어 반야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명은 타파되어야 할 근본적 명제입니다. 이 무명이 타파되면 반야지혜가 생기므로 양 극단은 없어지고(雙遮) 유무가 융합된 중도가 살현된다는 것입니다.(雙照) ^-^ _()_

  • 작성자 09.12.27 20:39

    백우님, 감사합니다. _()_ ^-^

  • 09.12.28 23:07

    ....나무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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