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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국사교육을 받았던 독자제위라면 한번쯤 경연(經筵)이란 말을 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남북어린이 알아맞히기 대회 경연을 떠올리신다면 본 필자 할말없다.
여하튼, 이 경연이란 건 나라 다스리기도 바쁜 임금이 하루에 3번(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씩 꼬박꼬박 수업을 듣는다니, 과연 조선은 유학의 나라이며 군자의 나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니 백날천날 그렇게 공부만 하면 뭐해? 공부하느라 시간 다 보내겠다. 그 시간에 나라일을 하나 더하는게 훨씬 낫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경연이란게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학술토론이나 강의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사실, 지금부터 학문토론과 강의의 탈을 뒤집어 쓴 경연의 정체를 밝히러 떠나보자.
“기상 하십시오 전하, 전하~일조점호 할 시간 입니….”
“야이 자식아, 왕이 무슨 일조점호야? 빠져가지고…. 그냥 사고1로 처리하고 사고내용은 근무취침이라고 해라.”
“전하,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오늘 조강(朝講 : 아침 경연)이 잡혀있는지라….”
“젠장, 또 뭔 놈의 조강이래? 경연 좀 하루 빼먹으면 안 되냐?”
왕은 기상과 동시에 대비전과 왕대비전에 아침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거의 대부분 내시를 보내기 일쑤였다. 대비전에 대한 아침인사를 하고 난 다음 왕은 정신을 가다듬었는데, “어이 도승지, 오늘 경연 주제가 뭐야?”
“에, 논어 술이(述而)편입니다.”
“허…미치겠네, 야, 내가 세자시절부터 지금까지 논어만 골백번은 더 봤거덩? 이제 아예 외운다 외워! 그런데 그걸 또 본다고?”
“아니…사서오경 중에서 그래도 기본이 되는게 논어라서 말입니다. 기본에 충실해라! 히딩크 보십시오. 기초체력부터 길러서 결국 월드컵 4강도 만들고…”
“내가 오버하지 말랬지! 조강이잖아 조강! 지금 장난할때야? 저쪽 패널들 잔뜩 자료 준비해서 한바탕 덤벼들텐데 지금 농담이 나와!”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얘네들 이번에 또 연회 베풀고 회포 푼거 가지고 들고 일어날 텐데, 이걸 어떻게 넘어가야 하지? 그래, 이번에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 재정지출을 늘렸다고 대충 버텨보자.”
그랬다. 조강은 하루에 3번하는 경연 중 가장 껄끄러운 강의였다. 당장 의정부의 삼정승과 육조판서,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의 삼사 인원들까지 총출동해서 학문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논어 술이편에 보면 자왈(子曰) 사즉불손(奢則不孫)하고, 검즉고(儉則固)니 여기불손야(與其不孫也)론 영고(寧固)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뜻을 해석해 보자면 공자가 말하길 사치하다 보면 공손하지 못하고, 검소하다 보면 고루하기 쉬운데, 공손하지 못한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라는 뜻입니다, 전하”
“음…좋은 말이네”
“…….”
“뭐 좋은 말인 거 알았고, 에또 그래설라무네 공자님이 검소하게 사는 게 좋다는 말이지?”
왕이 이 말을 하자마자 호조판서 득달같이 달려든다.
“맞습니다 전하, 옛 선현의 말씀을 살펴보면 모름지기 군자란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소인배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하였사옵니다.”
“그래서?”
“공자도 말하길 검소한 것이 사치한 것보다 낫다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이를 잘 아시는 전하께서는 연일 연회를 베풀어 나라 재정을 적자로 몰아가셨습니다. 군자는 모름지기 깨달음을 얻으면 실천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어찌하여 전하는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인지….”
“야야, 또 그 이야기야? 내가 말했지? 경제는 말야 심리적인 거라니까…. 계속 안 좋다 안 좋다 하면 진짜 안 좋아지는 거라니까. 그리고 말야 있는 사람이 돈을 풀어야 돈이 돌고 경제가 도는 건데 있는 애들이 돈을 안 풀잖아? 그러니까 나라에서 적자재정을 만들어서 일부러 돈도 풀고 분위기 한번 업 시키고 그런거 아니겠어? 나도 이렇게 노는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다 나라 경제 살려보자고 힘든 거 참아가면서 술판벌이고 연회도 열고 하는 거야.”
“전하! 공자님이 사치하는 것 보다는 검소한 게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대안을 내놓으라니까 대안을! 내가 술 마시고 논건…. 아니 술 마시고 논 척 한 거는 다 돈을 돌게 만들어서 경제위기를 좀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니까!”
“전하, 돈을 돌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술 마시는 것 말고도 다른 건전한 용처도 많을 것인데, 어찌 연회를 벌이셨습니까? 하다못해 공공근로사업을 연다던가 하면, 이 얼마나 건전하겠습니까?”
“야~좌의정 너 말 잘했다. 접때 IMF때 공공근로라고 사람들 모아서 풀 뽑기 시켰지? 그게 효과 있디? 그거 그냥 쌩으로 돈 퍼다 주는 거였다니까. 차라리 그 돈 가지고 일자리 창출하는데 쓰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을 거야! 이거 왜이래 소비재를 진작시켜야 경제전체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거라고~.”
조선시대의 경연(經筵)이란건 대충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말은 학문연구와 학술토론이라지만, 학문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왕을 압박하고 정치토론으로 몰고간 일종의 ‘신하와의 대화’같은 그런 자리였다. 심하게 말하자면 왕은 하루에 세 번씩 100분토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선천적으로 공부하는 거 좋아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왕(세종대왕 정도급)이 아닌 이상 여간 고역이 아닌 것이 경연이었다. 학문을 핑계 삼아 정치현안을 말하고 이를 토론으로 끌고 가 왕고의 토론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경연의 진짜 목적이었던 것이다. 왕이란 것도 그렇게 편한 직업은 아니란 사실을 확인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자료출처 : 스포츠 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