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기후에 따라 그 지역의 음식문화가 달라진다고 한다. 벼농사 지역과 밀농사 지역이 가장 대표적인 차이라 할 수 있으며 같은 벼농사 지역이라 해도 자포니카(Japonica)와 인디카(Indica) 경작지역에 따라 음식문화가 다르다. 두 쌀의 찰진 정도와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식문화는 대개 그 문화권 내의 다른 문화적 요소와도 결부되기 때문에 음식문화를 통해서 각 문화권만의 독특한 특징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음식문화(소 · 돼지)가 종교와 결부되는데 음식문화를 통해서 그들의 종교문화적 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도 이러한 음식문화를 확인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청동기주거지 내에서 탄화미가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 하는 부분은 학문적으로 굉장히 큰 가치를 지닌다. 식용으로서의 쌀의 경작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포니카인지, 인디카인지 여부를 밝히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벼농사의 기원이나 전파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고고학계에서 청원 소로리 볍씨를 통해 한국을 또 하나의 벼농사 기원지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은 좀 더 재고해볼 필요가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암튼, 음식이라는 것은 수천년간 보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발견될 확률도 극히 적으며, 일단 발견됐다 하면 학계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오늘 아침 현장을 가다가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와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과거에 와인이라 하면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쳤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기후가 점점 온난화됨에 따라 포도 재배 범위가 남북으로 점점 더 확대되기 때문이란다. 그러다보니 전세계 곳곳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이제는 와인 생산이 더 이상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 몇개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만약 지금으로부터 1천년쯤 지나서 어떤 고고학자가 와인에 대해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한다고 쳐보자. 그럼 그 고고학자는 1천년 전부터 전세계 곳곳에서 와인과 관련된 고고자료(와인잔, 와인병, 포도재배지 및 그와 관련된 유적 등등)를 정리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전에 비해 1천년 전쯤부터 와인 생산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그 원인으로는 기후의 변화(지구 온난화)를 꼽을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그때까지도 몇몇 극단적인 전파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과대전파론) 유럽에서 각지로 수출하는 와인의 양이 증가했다거나 유럽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 포도를 재배하는 비중이 늘어났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연구성과는 음식문화를 통해 고환경을 복원하는 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고생물학자나 병리학자의 도움을 얻어 후대의 고고학자들은 전세계적으로 변화하는 와인 생산의 판도를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칠레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품종은 유럽의 오리지널 품종임에도 병충해가 전혀 없어 그 생산량이나 질에서 프랑스의 와인을 압도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몇몇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프랑스 1등급 와인과 별 차이가 없으면서도 훨씬 싼 칠레산 와인이 전세계에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도 언젠가는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후대 연구자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취합하여 '기후의 변화로 전세계로 와인 생산지가 확대되고 특히 칠레의 경우 병충해가 없으면서도 우수한 품종을 보유하고 있어 새로운 와인 생산지로 떠오를 수 있었다'는 종합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정작 와인의 본가인 프랑스에서는 젊은층들 사이에 맥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점점 와인은 일상 생활이 아닌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만 즐기는 음료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즉, 문화적인 변화가 와인 생산 및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후대 고고학자들이 고고학적으로 추론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유럽에서 밀의 생산이 증가했다거나 맥주 생산량 및 소비량이 증가했다는 근거를 찾으면 그것이 와인 소비량 감소와 연결된다는 추론은 가능할테지만 말이다. 이런 문화적인 변화는 고고자료로 확인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문헌자료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주인장이 지금까지 떠든 것은 먼 후대의 학자들이 신문 기사나 칼럼을 검색하거나 와인 관련된 책자(문헌자료)를 연구한다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지난 수천년간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우수한 기록보존체제를 갖추지 못 했다. 그래서 우리같은 고고학도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면서도 널려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문득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만약 현장에서 확인되는 몇몇 음식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나타난다면...과연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주절주절 떠들어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지만 답은 하나다. 현장을 직접 조사하는 고고학자가 다양한 연구방법론을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당시의 상황을 보존 및 기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2차적으로 학제간 연구가 가능할테니 말이다. 선조가 남긴 100의 문화유산 중 땅 속에 온전히 묻힌 것이 10이라면 우리는 그 중의 1을 파헤치고, 그 중의 0.1만을 온전히 수습하여 연구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하다. 0.1을 갖고 100을 다시 추론하려니 말이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위에서 와인의 예를 들었던 것처럼 추론해야만 하는 부분이 한두개가 아닐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