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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1산악회
 
 
 
카페 게시글
◆◆정기산행후기 스크랩 봉화 청량산 하늘 다리의 스릴감에,,,
이종태 추천 0 조회 112 09.09.26 10: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일자 : 2009. 09. 13 (일요일, 맑음)  

    
2. 산행지 및 개요 :  청량산(淸凉山) (870.4m) 

 봉화군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청량산도립공원

높이 870m.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문명산(894m)·만리산(792m)·투구봉(608m) 등이 있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금탑봉·연화봉·축융봉·경일봉·선학봉·탁필봉 등 30여 개의 봉우리들이 있다. 기반암은 편마암이다.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렸으며,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의 하나로 꼽혀왔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백산맥에서 들로 내려오다가 예안강 위에서 고개를 이루었다. 밖에서 바라보면 단지 수개의 꽃송이와 같은 흙산 봉우리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짜기 마을로 들어가면 사면이 돌벽으로 둘렸는데 모두 대단히 높고 엄하며, 기이하고 험하여 그 모양을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라고 표현했다. 퇴계 이황도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예찬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여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가 남아 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낙동강 상류가 서쪽 절벽을 휘감아 흐른다. 소나무·단풍나무 등이 우거져 있으며 산정부에는 칡덩굴·다래덩굴·노박덩굴 등이 엉겨 있다. 산 일대 면적 48.76㎢가 1982 8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아슬아슬한 암봉·망굴 등의 자연경관을 비롯하여 내청량사·외청량사 등의 고찰과 유적이 많다. 산의 남쪽 연화봉 기슭에 내청량사가 있으며 조선 후기의 불전건물인 청량사유리보전(淸凉寺琉璃寶殿: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이 있다. 산의 동남쪽 금탑봉 기슭에 있는 외청량사는 높은 절벽 중간에 있으며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어풍대와 잘 조화되었다. 남쪽 축융봉에는 고려 공민왕이 피난와 있던 청량산성과 공민왕당(恭愍王堂)이 있다. 그밖에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를 공부한 곳으로 알려진 김생굴, 최치원이 수도한 곳으로 알려진 고운대 등이 있다.

 

3.누구랑: 1산악회 친구들과

 

4. 산행코스:  
  선학정주차장(10:40출발) - (13) ->입석- (15) ->응진전-(15)->김생굴- (20)-> 경일봉

  - (40)->자소봉- (7)->탁필봉- (15) ->뒷실고개 - (8)-> 자란봉(하늘다리) -(20)->장인봉

  -(3)-> 전망대-(3)-> 장인봉- (20)-> 하늘다리-(8)-> 뒷실고개- (17)-> 청량사

-(15)-> 산학정주차장 (산행완료:15:45 , 5시간소요)

 

5.산행후기:

오늘은 오랜만에 고교 동문 산악회인 령1산악회와 함께 청량산을 등반하는 날이다.  청량산은 규모와 높이만으로는 그다지 내세울게 없지만 ‘육육봉’이라고 불리우는 독특한 모양의 12개의 빼어난 바위 봉우리들 때문에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악으로도 불리운다. 특히 가을이면 낙동강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바위절벽 마다 오색단풍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또, 산자락에는 8개의 굴과 4개의 샘이 있고, 한때 암자 수가 30여개에 이르렀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청량사와 청량정사 두 곳 만이 남아있다. 

  나는 이른 아침 울산 친구와 함께 김해 대동 톨게이트로 가서 부산에서 오는 관광버스와 합류를 했다. 서너 차례 함께 산행을 한 터라 친숙한 얼굴이 여럿 보이고, 몇몇 낯익은 어부인들의 면면도 보인다. 가는 중에 안동소주 기념관에 잠시 들른 후 김해-대구 간 고속도로를 네 시간 정도 달려 목적지인 청량산 입수 선학주차장에 도착 하였다.

  주차장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우뚝 선 바위 앞에 입석(立石)이라고 적힌 팻말이 나온다. 곧장 가면 산성 입구, 공민왕당 등이 나오므로 산행을 하려면 등산로 입구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왼쪽 길로 꺾어야 한다.

  산행 들머리는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 이어져 다소 힘들게 느껴지지만 좌측으로 낭떠러지를 끼고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어 긴장감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시야가 탁 트여있어 전체적인 산세를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다. 특히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에는  안전장치도 되어 있어 안심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뒤로는 산객들이 줄을 이어 뒤따라오고 있다. 올해 단풍은 작년보다 훨씬 좋을 거라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아마 이곳도 본격적인 단풍철이 되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 같다. 등산로를 한동안 따라가니 육중한 바위아래 작은 동굴이 하나 나타나고, 이어 바위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금탑봉 중턱의 절벽아래에 청량사 부속 건물인 응징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법당 내부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이 봉안 되어 있다. 또한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상도 안치 되어 있어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응진전 뒤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는 동풍석이라 불리우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는 바람이 불어도 건들거릴 뿐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응진전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면 큰 바위 틈새에 작은 샘이 하나 나온다. 이는 총명수라는 천연샘으로 신라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신 후 더욱 총명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과거 보러가는 선비들이 이 물을 마시고 효험을 보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이밖에도 금탑봉에는 최치원과 관련된 유적으로 치원암, 풍월대가 있다. 

 총명수 좌측을 돌아가면 멀리 산자락에 앉은 청량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어풍대가 나타난다. 수십 길 낭떠러지 위에 위치한 어풍대에서 보면 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탁필봉, 자송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어풍대는 내청량과 외청량을 연결하는 중요한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청량지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인물인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 와 보름 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어풍대를 조금 지나면 길이 좌우로 나뉘는데 왼쪽 길은 청량사 방면, 오른쪽 길은 김생굴 가는 길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시간도 되고 하여 내친김에 김생굴을 다녀오기로 했다. 오른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5분 정도 가니 김생폭포와 김생굴이 나온다. 김생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로 그가 글씨를 연마하던 곳이라 하여 김생굴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설화에 의하면 김생의 글씨와 청량붕녀의 길쌈솜씨를 두고 누가 더 나은지 대결을 하였는데 김생이 내기에서 패하자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1년을 더 연마하여 10년을 채운 뒤 명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고 한다. 동굴 옆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류희지가 지은 김생굴 시가 눈에 들어온다. “김생의 웅건한 글씨 대대로 다투어 전해졌으니 묻노니, 여기서 공부한 것이 몇 년인고 옛터 황량하고 사람도 없지만 지금 그 유적은 오히려 완연하네”

  김생굴을 돌아본 후, 원래 위치로 돌아와 다시 오던 길을 가니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안부가  나온다. 안부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지친 몸을 재충전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르막 길을 20여분 힘을 다해 올라가면 경일봉이 나타난다. 경일봉은 흔히 볼 수 있는 봉우리로 그다지 특색은 없어 보인다. 

  경일봉을 지나 평평하게 이어진 산길을 따라 가다가 철제 계단을 오르니 탁필봉 가는 길과 이어진 작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선두를 유지하고 있던 친구들과 후미그룹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지만 나는 좀 더 지나 식사를 하였다. 

  여기부터는 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는 능선길 산행이 계속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서너 차례 반복하고, 철계단과  집채 만 한 기암괴석들을 넘나들면 자소봉 정상(840m)이 나온다. 정상 주변으로 난간이 둘러쳐져 있고 아래로는 20m 가량의 수직 절벽이다. 정상에서 동으로는 일월산이, 북으로는 소백산과 백두대간 능선이, 남으로는 축융봉이 한눈에 들어와 장쾌한 조망이 시원하다.

  자소봉에서 5, 6분 정도 가면 탁필봉(820m)이 나오고, 탁필봉에서 7, 8분 정도 거리에 연적봉이 있다. 세 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넘어 급경사 길을 내려가면 뒤실고개가 나온다. 능선을 따라 조성된 나무계단마다 병목현상이 생겨 지루한 산행길이지만 마음은 넉넉하다.  

  뒷실고개를 넘으니 선학봉이 나오고 잠시 평평한 길을 가니 하늘다리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하늘 다리는 해발 800m지점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연장 90m, 통과 폭 1.2m, 지상고 70m에 이르는 국내 최고(最高), 최장(最長)의 산악현수교량이다. 1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조심스럽게 다리를 지나가지만 마주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바람으로 인해 조금씩 다리가 출렁거린다. 대담한 이들은 아예 대놓고 흔들어 보기도 한다.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 이런 걸까. 짜릿한 스릴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란봉을 넘어가면 청량폭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이어지는 가파른 철계단을 따라가면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의상봉)(870.4m)이 나타난다. 정상 주위엔  숲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조망은 그리 좋지 않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단체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친구 실호와 정기 총무 회사 직원과 함께 가까스로 사진을 찍은 후, 왼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저녁노을 아래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풍광을 감상하였다.

  전망대에서 바로 하산하는 길은 현재 막혀 있어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장인봉을 지나 하늘다리를 건널 때 하늘 다리를 왕복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 수없이 관세음보살 주문을 외웠다. 그래서 그런지 올 때는 별 두려움 없이 지나올 수 있었다.

  자린봉을 거쳐 뒷실고개에서 오른쪽으로0.9km 정도 급경사길로 내려가면 청량사이다. 나무계단이 깔린 하산길이라 조심해서 내려가니 나뭇가지가 세 갈래로 갈라진 200년 된 소나무와 삼층석탑이 반겨준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송광사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에 의해  중창된 고찰이다. 주법당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은 규모는 아담하지만 볼수록 정이 간다.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준다는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을 모신 법당이다. 현판을 올려다보면 글씨가 아주 힘이 넘치는데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친필이란다.

  불자라서 사찰을 찾을 때면 불상 앞에 절을 하곤 하는데 마침 약사여래불이라고 하니 부처님께 기도를 올린다. 소원은 늘 그렇듯 ‘나와 가족의 건강’이다. 삼층석탑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불자 산악인들이 단체 법문을 듣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산 봉우리에 둘러싸인 절의 자태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청량사는 청량산(淸凉山) 열두 봉우리의 한가운데 옴폭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봉우리들이 사방 바람을 막아주고 따스한 햇살의 기운을 모아주는 좋은 터에 위치하고 있다. 절 입구 가까이에는 찻집 안심당(安心堂)과 약수터, 장독대 등이 있어 산사의 아늑함을 더한다.

  청량사를 빠져나와 시멘트로 된 내리막길을 800m정도 곧장 내려오다가 일주문 근방에서 피로한 발을 계곡물에 담그니 쌓였던 피로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온몸이 개운해진다.

  상쾌한 마음으로 계속 내려오니 ‘청량산 청량사, 라는 입석판이 보이고 먼저 내려온 동료들이 눈에 띈다. 20여분 관광버스를 달려 도산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안동시청 앞의 한식집 밀레에서 저녁을 겸한 하산주까지 함께 하고 나니 세상에 부러워할 것이 없는 멋진 하루를 보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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