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감사와 행복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1.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십시오.
12.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수고하고,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십시오.
13.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그들을 사랑하고 극진히 공경하십시오. 그리고 서로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14.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게으른 사람들을 훈계하고 소심한 사람들을 격려하며 약한 사람들을 붙들어주고 모든 사람을 인내로써 대하십시오.
15.여러분 중에는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고, 언제나 서로 남에게 선을 행하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16.항상 기뻐하십시오.
17.늘 기도하십시오.
18.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글 중 일부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선교여행(A.D. 50-52년경) 때 설립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그곳에 머물렀던 3주 만에 설립한 교회로 야손의 집에서 출발한 가정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유대인 개종자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인지라 신앙적으로 무지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의 간섭과 박해를 받아 급히 이곳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충분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지만 가혹한 박해 중에도 훌륭하게 믿음 생활을 지켜 바울의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1:2-10).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최대 관심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이들은 예수님이 당장이라도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갖은 핍박 속에서 성도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자꾸 죽어가자 조바심이 일었던 것이죠. 이들은 죽은 자들이 주의 재림 때 어떻게 될지, 과연 재림이 언제 올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삶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매우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받은 바울은 주의 재림과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먼저 주의 재림에 관하여서는 ‘주님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약속된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때에 갑자기 들이닥칠 것이라 말합니다. 그 멸망의 때는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결코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믿는 교우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기에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 빛의 자녀이며 대낮의 자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때문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으라’고 요구합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구원의 희망으로 투구를 쓰라’고 권면합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말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라’고 합니다. 이 격려와 도움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길입니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에게는 존경과 사랑으로, 교우들끼리는 서로 화평함으로, 약하고 못 미치는 자들에게는 격려와 사랑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특히 자기보다 못한 이들을 세세히 지적하며 잘 돌보라고 하십니다.
14-15절을 읽어 보죠. “게으른 사람들을 훈계하고 소심한 사람들을 격려하며 약한 사람들을 붙들어주고 모든 사람을 인내로써 대하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고, 언제나 서로 남에게 선을 행하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바울이 가르친 성도의 자세는 감사의 마음과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행위가 없다면 존경과 사랑, 소통과 화평, 격려와 돌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는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려는 노력이며 나와 남의 가치를 동등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주는 바울의 권면을 생명의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헬렌 켈러를 아시죠. 생후 19개월 되던 때 시각과 청각을 잃었으나 장애를 극복하고 평생을 감사와 봉사로 살았던 분입니다. 그녀는 7세 때 설리반 선생을 만나 글과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일생을 농아와 맹인을 위해 일했고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에도 기여했습니다. 그의 감동적인 삶은 <나의 삶>, <헬렌 켈러의 비망록> 등의 책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의 책 중 20세기 최고의 에세이로 평가받는 <3일 동안만 본다면>이란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앞을 못 보는 헬렌 켈러가 3일 동안 기적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보고 싶은 가를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 모습을 내 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싸인이 반짝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특징짓는 행위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감사가 "기독교인의 근본적인 태도"라 강조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창조자에게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기독교인에게 감사는 감정과 생각뿐 아니라 행동과 행위를 동반하는 영적 미덕입니다. 기독교인은 감사를 통해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코람 데오)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겉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밖으로 나올 수도 없습니다. 주어진 규율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감옥과 수도원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감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엄격한 규율 등등의 환경은 비슷하지만 감옥 안의 죄수들은 대개 불평으로, 수도사들은 늘 감사로 매일을 살아간다는 점이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는 행복한 삶의 기초가 됩니다. 플라톤을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야말로 인간 삶의 목적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가 추구한 행복은 그리스어로 에우다이모니아(eudaemonia)란 말인데 영어 표현으로는 좋은 영혼(good spirit)이란 뜻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적 행위의 목적으로서의 좋음을 말합니다. 이 좋음은 단계가 있는데 최상의 좋음이 ‘행복'(eudaimonia)이라는 것입니다. 이 최상의 좋음은 신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데서 오는 것으로 오늘날의 행복 개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의 추구를 말할 때 그것은 많이 웃고 깔깔거리자는 뜻이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상의 즐거움과 좋은 대화의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그에게 원초적인 느낌이나 전율, 오르가슴은 아주 낮은 단계의 좋음일 뿐입니다.
서양 고대철학에서 시작한 행복에 대한 논쟁은 서양 철학사에 있어 일관된 논쟁의 주제였습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체제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개념은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최근 대중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행복의 개념과는 많이 다른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 1908~1970)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5가지의 욕구로 정리하였습니다. 자 이제부터 매슬로가 말하는 5가지 욕구 중 나는 지금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안전과 신체적 보호 욕구(safety and security needs), 소속과 사랑의 욕구(belonging and love needs), 존중 욕구(esteem needs),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자신의 욕구가 집중되어 있는지요.
매슬로는 이 5가지 욕구 중 최상위에 속하는 ‘자아실현’을 고대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행복, 에우다이모니아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이 이 5가지 욕구 중 어디에 해당하고 있더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감사의 마음과 행동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은 무한합니다. 그 욕망을 풀어 놓으면 만족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사를 채우면 아무리 작은 것에서라도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의 전제 조건은 감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지난 시간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痴)라는 삼독(三毒)에 대해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한번 상기해 보죠.
이 삼독은 모두 ‘나(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에 미혹한 것이 우치이고, 그 어리석음(우치)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으면 탐욕을 일으키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분노(진에)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삼독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감사입니다.
캐나다 웨스트파크 교회 찰스 스톤 목사가 최근 '처치리더스닷컴'에 '감사가 뇌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찰스 목사는 여러 뇌 연구자들의 논문을 분석하여 이 글을 썼는데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 감사는 더 많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연구 조사에서 참가자들 중 한 그룹은 매일 감사하는 내용을 일지에 기록했고 다른 그룹은 짜증나는 일들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감사 일지를 쓰는 사람들은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그룹보다 행복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Emmons & McCullough, 2003).
2. 감사는 '친사회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같은 연구에서 감사 일지를 쓴 사람들은 개인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친사회적'(pro-social)이 되었다는 뜻입니다(Emmons, 2006).
3. 감사는 수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두뇌와 신체는 충분한 수면을 필요로 합니다. 상쾌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저하됩니다. 중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감사는 수면을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우울증을 줄이고 간접적으로 불안감을 감소시켰다고 합니다(Korb, 2012).
4. 감사는 더 건강한 마음과 몸을 만듭니다.
감사는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을 증가시켜 행복감을 줍니다. 또한 도파민과 관련된 뇌 영역을 활성화시켜 몸과 생각의 움직임을 더욱 활성화 시켜 줍니다.
5. 감사는 물질만능주의를 약화시킵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감사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물질주의의 평균적인 특성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McCullough, 2002).
6. 감사는 부정적 감정과 이를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긍정적인 회로보다 5배 이상의 부정 회로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두뇌의 '부정적인 편견'이라고 불리는 것이죠. 감사는 우리의 두뇌를 긍정적으로 만듭니다.
이처럼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바와 같이 감사는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초대하는 크나큰 힘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감사의 마음과 행위가 충만하여져서 우리의 삶과 이웃들의 삶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가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8.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