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5/3)부터 내일 수요일(5/8)까지 아들놈의 주말 휴일 및 업무 차 부산 출장
으로 공군에서 운영하는 해운대의 그린나래호텔(콘도)에서 아내는 오늘 저녁까지 아들과
지내고 나는 회사일과 동물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하루 밤만 보내고 포항으로 올라왔다.
30년 전에 해운대 AID 아파트에서 5년간 살면서 달맞이 길과 백사장은 많이 다녔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고 1983년도 단독 주택을 구입 하려고 연산동과 수영인근을 다니던 중
우연히 먼 친척 되시는 어른을 만나 그분이 땅을 팔려고 매물로 내놓은 지 몇 년이 되었는데
급히 돈이 필요하지만 팔리지 않아 걱정을 하시기에 노포동에 있는 농지 420평을 구입하면서
단독주택 구입은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 AID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당시 AID아파트 13평은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450~500만원으로 동일해서 전세보다는
구입을 했는데 지금은 재개발을 해서 재산권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잊혀지고 낡은 기억 이지만 어릴 때부터 배를 타면서 집안의 묵은 빚(오래된)을 정리하면서
다섯 형제 중 차남으로 가족들의 생계와 형제들을 대학공부를 시키다 보니 내 몫으로
별도로 준비해둔 재산 없이 살아야만 했다.
젊은시절에는 나이도 먹지 않고 항상 젊은 나이로 지내면서 평생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
돈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살아갈 것만 같은 좁은생각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를 많이 해놓지 않았다.
배를 내리고 세상 물정을 모르던 시절 아무런 생각 없이 두건 가량 보증을 섰는데 선배와
지인들이 채무변제의 불이행으로 금융권에서는 독촉장과 가압류 통지서가 날아오고 PC방의
증가로 많은 당구장들이 무더기로 폐업을 하면서 직원들의 인건비와 누적된 적자와 빚 보증에
대한 이자까지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에 아이는 진학을 준비하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국립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하고 서울로 진학하려고 울면서 떼를 쓰고, 아내와 나는
가정형편상 지방에 있는 국립대를 선택하라고 사정을 하면서 대화를 한다
“ 노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땅420평”의 등기부등본을 꺼내놓고 흥정(?)을 하면서
정말 “ 서울로 간다면 땅을 팔아서 돈을 마련해 줄 것이니 서울로 가서 공부를 하고,
지방대학에 진학을 한다면 증여를 해준다”는 뜻을 제시 하면서 월급쟁이가 평생을 모아도
이 땅을 준비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조언과 함께 아들을 설득하고 아들은 며칠간 고민을
하다가 부모의 뜻에 따라 지방의 국립대를 선택했다.
휴일과 방학도 없이 열심히 공부만 하던 대학2년 차 아내는 깊어가는 병으로 장기간의 요양이
필요해 병원에 입원을 하고 갑자기 변화된 환경에 아이는 정신적인 갈등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한 순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1년을 단축시켜서 3년 만에 졸업, 서울의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2년간의 학비를 지원 해주셔서 어려움 없이 졸업과 동시에 공군장교로
입대하여 40개월간의 긴 병역의무를 마치고 다음달 말일 제대를 할 예정이다.
그 동안 어렵게 혼자 공부를 하면서 엄마의 깊은 병으로 인한 걱정과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기 위한 중요한 시기에 부모의 정신적 도움이
필요로 할 때 아비로서 도움을 주지 못한 죄책감에 죄스럽고 미안하다는 마음 밖에는....
COMEX 통신훈련이 시작되면서 전시에 20연대의 사수지역인 강원도 x천면 xx리로 출동해서
정해진 시간 내에 산꼭대기로 JUMP를 해서 사단과 CW(AM)통신을 개통하고 통신망을 지속
시키는 훈련이며, 훈련이 시작되고 약10분만에 사단과 개통을 하니 사단에서는 난리가 났다.
정상적으로 개통을 하는 예상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가량 시간이 소요되는데 비해서
20연대는 훈련을 시작함과 동시에 개통을 하니 출동을 하지 않고 전파를 발사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육군AM통신교본에는 AM(MHF대 및 HF대) 안테나의 설치는 장애물이 없는 곳으로 올라가서
높은 나무 꼭대기에 안테나를 설치해야 효율성이 좋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지만 낮은 계곡에서
안테나를 설치하고 개통을 했기 때문에 산으로 올라가는 시간을 절약 할 수가 있었다.
개통을 하고 무전대기를 하면서 30분 가량 지났을 때 사단에서 통신대 대대장(중령)이 확인 차
직접 개통현장으로 찾아와서 사단 그리고 각 연대와 감도 측정을 해보라고 지시를 하면서
함께 온 사단 FM병이 상대국 상황을 통신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면서 20연대의 완승으로 훈련이
끝나고, 대대장은 질문을 “계곡에서도 산꼭대기에서 발사하는 감도와 차이가 없는지를”.
해상에서의 소형선박은 갑판 또는 해면에서 안테나의 높이는 5미터가 안되어도 세계각국으로
시간과 주파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교신이 가능하고 군의 CW통신 사용주파수는 근거리용인
2메가 중단파대와 4메가 단파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야간에는 지표파에 의한 전파감쇄 및 혼신이
동반하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교신이 가능함을 설명하고 훈련이 끝나면서 무선통신사 합격통보
대신 사단장의 표창장과 함께 일주일간 포상휴가를 받았지만 고참들에게 양보를 했다.
사단기동훈련(FTX)에 대비하여 석 달 전부터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면서 훈련 한 달을 남겨 놓은
시점부터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산과 들에 가서 개인위장과 차량 위장을 위한 위장용 풀과
설상(雪上) 위장망, 추위를 피하기 위해 1.8L용 깡통 2개를 부쳐서 난로를 만들고 간이 난로용
땔감으로는 솔방울 말려서 따불백에 넣어 보관을 하고 연통은 음료수 깡통을 연결하면 화력이
좋은 난로가 된다….
1977년 1월초 6박7일(?)간의 사단기동훈련(FTX)이 시작되고 훈련기간 중에는 37년 만에 닥친
매서운 추위는 바늘로 뼛속 깊숙하게 파고 들고 취사장에서 식사를 타오는 사이에 밥과 국이
얼어 붙어 먹을 수 없고, 수령이 오래된 고목나무도 얼어 터지는 혹독한 추위 속의 훈련은
야전 텐트 속에서 CW전문을 수신할 때는 볼펜 끝이 얼어붙어 글이 써지지를 않아 입김으로
호호 불면서 전문수신을 하면서 훈련은 끝이 났다.
4월에 실시하는 실기시험을 접수를 해보지만 시험은 또 다시 불발로 끝이나고 말았다
시험을 치러야 하는 날에는 군 사령부에서 실시하는 각 사단과의 CW측정 훈련에 대비하여
사단 통신대로 보름간 파견근무를 하면서 사단CW병들과 함께 연습을 해서 11사단 대표로
측정 훈련에 참가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두 번째 실기시험도 포기하고 측정에 참가 해서
1등 표창장은 사단 몫으로 주고 대신 1주일 휴가증을 받았다.
첫댓글 수고하셨네요
좋은글 잘보았습니다~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