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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아비달마집론 제5권
2. 결택분(決擇分)
2.1. 제품 ③[3]
④ 수도[2]
다시 어떻게 이 같은 여러 가지 도를 닦게 됩니까?
득수(得修)ㆍ습수(習修)ㆍ제거수(除去修)ㆍ대치수(對治修)를 가리킨다.
득수란 생기지 않은 선법을 닦아 익혀서 생기도록 하는 것이고,
습수란 이미 생겨난 선법을 닦아서 굳게 머물러 잊지 않고 더욱 늘리고 넓혀 나가는 것이고,
제거수란 이미 생겨난 악한 불선법(不善法)을 닦아서 영원히 끊는 것이고,
대치수란 아직 생기지 않은 악불선법을 닦아서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또 도가 생겨나기 때문에 자연히 습기(習氣)가 안립되는 것을 득수라 이름하고,
이 같은 도가 현전해서 닦아 익히는 것을 습수라 이름하고,
이 같은 도가 현전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장애를 능히 버리는 것을 제거수라 이름하고,
이 같은 도가 이미 자체적으로 장애를 버려서 법을 미래에 머무르게 하여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을 대치수라 이름한다.
또 네 종류의 대치를 대치수라 이름하니,
바로 염괴대치(厭壞對治)ㆍ단대치(斷對治)ㆍ지대치(持對治)ㆍ원분대치(遠分對治)이다.
염괴대치란 무엇입니까?
유루의 제행에 있어서 허물과 걱정이 많은 것을 직접 목격하는 것이다.
단대치란 무엇입니까?
가행도와 무간도를 가리킨다.
지대치란 무엇입니까?
해탈도를 가리킨다.
원분대치란 무엇입니까?
그 이후의 여러 도를 가리킨다.
[도의 열한 종류]
또 도의 차별에는 열한 종류가 있으니, 관찰사도(觀察事道)ㆍ근공용도(勤功用道)ㆍ수치정도(修治定道)ㆍ현관방편도(現觀方便道)ㆍ친근현관도(親近現觀道)ㆍ현관도(現觀道)ㆍ청정출리도(淸淨出離道)ㆍ의근차별도(依根差別道)ㆍ정수삼학도(淨修三學道)ㆍ발제공덕도(發諸功德道)ㆍ변섭제도(遍攝諸道)이다.
이 같은 여러 도는 그 자체에 따라서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라고도 말하니, 4종정행(種淨行)ㆍ4종법적(種法迹)ㆍ4종사마타(種奢摩他)ㆍ3무루근(無漏根)이다.
[보리분법의 건립, 다섯 가지 문의(門義)]
여기서 보리분법(菩提分法)은 모두 다섯 가지 문의(門義)에 기인해서 건립하게 된다.
이는 그 소연(所緣)에 연유하기 때문이고,
그 자체에 연유하기 때문이고,
그 조반(助伴)에 연유하기 때문이고,
그 수습에 연유하기 때문이고,
그 수행의 과보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4념주(念住)]
4념주(念住)의 소연이란 신수심법(身受心法)을 가리킨다.
또 4사(事)가 있으니 아소의사(我所依事)ㆍ아수용사(我受用事)ㆍ아자체사(我自體事)ㆍ아염정사(我染淨事)를 가리킨다.
이러한 것의 자체(自體)는 혜(慧)와 염(念)을 가리키고, 그 조반(助伴)은 그것에 상응하는 심ㆍ심소 등이고, 그 수습은 내신 등에 있어서 순신관(循身觀) 등의 관을 닦는 것으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내외에서도 이와 같다.
내신(內身)이란 이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내색처(內色處)이다.
외신(外身)이란 외부에 존재하는 외색처(外色處)이다.
내외신(內外身)이란 내처에 상응하는 모든 외처가 근에 의지받는 것을 가리킨다.
또 다른 사람의 신체 내에 존재하는 내색처이기도 하다.
‘신체 따위에서 신관(身觀)을 닦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영상신(影像身)과 본질신(本質身)의 평등을 분별하는 것이다.
‘내수(內受)를 관찰한다는 것’이란 내신에 기인하여 생겨난 수(受)를 가리킨다.
외수(外受)란 외신에 기인하여 생겨난 수를 가리킨다.
내외수(內外受)란 내외신(內外身)에 기인하여 생겨난 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수심법(受心法)도 이와 같다.
신체에 있어서 순신관을 닦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수(受) 등에 있어서 순신관이나 수신관(受身觀) 등의 관(觀)도 그 대응되는 그대로이다.
또 수습에도 욕수습(欲修習)ㆍ근수습(勤修習)ㆍ책수습(策修習)ㆍ여수습(勵修習)ㆍ용맹수습(勇猛修習)ㆍ불식수습(不息修習)ㆍ정념수습(正念修習)ㆍ정지수습(正知修習) 및 불방일수습(不放逸修習)이 있으니, 이는 수습에도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욕수습이란 작의(作意)하지 않는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근수습이란 해태(懈怠)의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책수습이란 혼침(昏沈)과 도거(掉擧)의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여수습이란 마음을 비열하게 하는 성품의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용맹수습이란 누(漏)가 있어[所漏] 피곤하게 하는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불식수습이란 약간의 선법을 얻게 되면 곧 만족하는 희(喜)의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정념수습이란 세존의 가르침을 잊게 만드는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정지수습이란 죄를 범하면 곧 후회가 따르는 수번뇌를 대치하는 것이다.
불방일수습이란 모든 선법을 버리게 하는 액(軶)의 수번뇌를 대치하려는 것이다.
그 수행의 과보란 네 가지의 전도(顚倒)된 취(趣)를 끊고 사제에 들어가기에 신체 따위가 이계(離繫)하는 것이다.
[4정단]
4정단(正斷)의 소연이란 이생(已生)ㆍ미생(未生)ㆍ소치(所治)ㆍ능치(能治)의 법이다.
이것은 자체적으로 정근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조반은 그것과 상응하는 심ㆍ심소 등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수습은 계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욕(欲)ㆍ책(策)ㆍ여(勵)의 수습이 생겨나 바로 정근하되 마음을 경책하여 마음을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까지 모든 구절은 수(修)의 정근과 그 의지하는 바를 드러낸 것이다.
의지하는 바란 욕(欲)을 가리키는 것이고,
정근이란 책과 여의 수습 따위가 지(止)에 있어서 사상(捨相)의 일어남을 작의(作意)하는 도중에 혼침과 도거를 줄이고자 정근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야 마음을 경책하여 마음을 지키게 된다. 그 수행의 과보는 일체의 소치(所治)를 남김없이 버려서 능대치(能對治)에 있어서 성취하거나 늘어나는 것이니, 이것을 그 수행의 과보라고 이름한다.
[4신족]
4신족(身足)의 소연이란 이미 만위(滿位)를 성취한 정(定)에서 만들어지는 일이다.
이것은 자체적으로 삼마지를 가리키고, 그 조반은 욕과 근으로 마음을 관찰하는 것과 그것에 상응하는 심ㆍ심소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욕삼마지(欲三摩地)란 무엇입니까?
은근한 방편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근삼마지(勤三摩地)란 무엇입니까?
무간도의 방편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심삼마지(心三摩地)란 무엇입니까?
예전에 삼마지를 닦았던 그 유력(有力)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관삼마지(觀三摩地)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교법을 전해 듣고서 속으로 스스로 간택(簡擇)하는 것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또 욕삼마지(欲三摩地)란 욕(欲: 의지)이 생기는 것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근삼마지(勤三摩地)란 책(策)과 여(勵)에 일어나는 정근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심(心)삼마지란 마음이 지속되는 것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관(觀)삼마지란 마음의 경책에 연유해서 접촉되는 심일경성이다.
수행의 과보란 여덟 종류의 번뇌를 끊는 행을 되풀이하여 수습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그 여덟 가지입니까?
욕(欲)ㆍ정진(精進)ㆍ신(信)ㆍ안(安)ㆍ정념(正念)ㆍ정지(正知)ㆍ사(思)ㆍ사(捨)이다.
이와 같은 여덟 종류를 간략하게 거둬서 가행(加行)ㆍ섭수(攝受)ㆍ계속(繼續)ㆍ대치(對治)라고도 일컫는다.
또 욕(欲)과 근(勤)으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인연을 모으고 흩어지게 하는 원리수(遠離修)와 열등하지도 흩어지는 것도 아닌 그러한 두 가지에 의존하는 수순수(隨順修)를 가리킨다.
이 같은 수행의 과보는 이미 삼마지를 잘 닦아 다스린 까닭에 그 증득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법을 통달하는 것이니 바로 능히 마음을 따라 그 변화[變現]를 통달하는 것이다.
또 온갖 처소의 법 가운데에서 증득을 이루어 자유로운 작용을 감당하게 되기에, 이같이 그 즐겨 원하는 바에 따라 갖가지 신통 등의 일을 능히 처리하고 또 승품의 공덕을 능히 인발하게 된다.
[5근]
5근(根)의 소연이란 4성제를 가리킨다.
이것의 자체는 신(信)ㆍ정진(精進)ㆍ염(念)ㆍ정(定)ㆍ혜(慧)이고,
그 조반은 그것에 상응하는 심ㆍ심소 등이고,
그 수습은 모든 진제에서 인가행(忍可行)을 일으키는 것이다.
정진의 수습[修習情進]이란 근본을 진제에 두고 인가가 생겨나 깨닫고자 정진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염근의 수습[修習念根]은 모든 진제에 있어서 정진을 발휘하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잡아매어 그 행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정근의 수습[修習定勤]이란 모든 진제에 있어서 이미 생각을 매어 두고서 심일경성의 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혜근의 수습[修習慧根]이란 모든 진제에 있어서 그 마음이 이미 정을 얻었기에 간택하는 행을 일으켜 수습하는 것이다.
그 수행의 과보는 진제의 현관을 속히 발명할 수 있는 것이니, 아울러 난법과 정법을 닦아 다스려서 세제일법의 인(忍)을 인발시키는 것이다.
[5력]
5근과 5력(力)도 이와 같다.
차별이란 이로부터 능히 그 소대치(所對治)의 장애를 줄이는 것으로 비록 줄이기는 하되 굴복시키지 못하는 까닭에 위력(有力)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7각지]
7각지(覺支)의 소연이란 4성제의 실다운 성품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의 자체는 염(念)ㆍ택법(擇法)ㆍ정진(精進)ㆍ희(喜)ㆍ안(安)ㆍ정(定)ㆍ사(捨)이다.
여기서 염은 소의지(所依支)에 해당하고
택법은 자체지(自體支)에 해당하고,
정지는 출리지(出離支)에 해당하고,
희는 이익지(利益支)에 해당하고,
안ㆍ정ㆍ사는 불염오지(不染汚支)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염오에 연유하기 때문이고, 불염오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이 같은 불염오를 바탕삼기 때문이다.
그 조반은 그것과 상응하는 심ㆍ심소 등을 가리키고, 그 수습은 원리에 의지하는 것이고, 무욕(無欲)에 의지하는 것이고, 적멸에 의지하는 것을 가리키기에, 마침내 그 버리는 것을 회향하여 염각지를 닦게 된다.
염각지의 경우에서처럼 사각지(捨覺支)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이처럼 네 구의 차제를 드러내 보이는 것에서 사제의 경(境)을 연(緣)하여 각지(覺支)를 수습하게 된다.
그 수행의 과보는 견도에서 끊어지는 번뇌를 영원히 끊는 것을 가리킨다.
[8성도지]
8성도지(聖道支)의 소연이란 바로 이 다음 때에서 4성제의 실다운 성품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의 자체는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다.
여기서 정견은 분별지(分別支)에 해당하고,
정사유는 회시타지(誨時他支)에 해당하고,
정어ㆍ정업ㆍ정명은 영시타지(令示他支)에 해당하는 것이니, 바로 계율로 인해서[見戒] 그 명(命)이 청정해지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정정진은 정번뇌장지(淨煩惱障支)에 해당하고,
정념은 정수번뇌장지(淨隨煩惱障支)에 해당하고,
정정은 능정최승공덕장지(能淨最勝功德障支)에 해당한다.
그 조반은 그것에 상응하는 심ㆍ심소 등을 가리킨다.
그 수습은 각지(覺支)에서 설명한 그대로이지만 그 수행의 과보는 분별하는 것이며, 남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신심 내게 하는 것이며, 번뇌장(煩惱障)을 깨끗이 하는 것이며, 수번뇌장(隨煩惱障)을 깨끗이 하는 것이며, 최승공덕장(最勝功德障)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4종 정행(正行)]
4종 정행(正行)이란
고지통행(苦遲通行: 힘들고 더디게 깨치는 행)ㆍ
고속통행(苦速通行: 힘들지만 빨리 깨치는 행)ㆍ
낙지통행(樂遲通行: 즐겁지만 더디게 깨치는 행)ㆍ
낙속통행(樂速通行: 즐겁고도 빨리 깨치는 행)을 가리킨다.
첫 번째는 둔근기(鈍根機)가 근본정려(根本靜慮)를 얻지 못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이근기(利根機)가 근본정려를 얻지 못한 것이고,
세 번째는 둔근기가 근본정려를 이미 얻은 것이고,
네 번째는 이근기가 근본정려를 이미 얻은 것이다.
[4종 법적(法迹)]
4종 법적(法迹)이란 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을 가리킨다.
무탐과 무진은 계학(戒學)을 능히 증상시켜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정념은 심학(心學)을 능히 증상시켜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정정은 혜학(慧學)을 능히 증상시켜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사마차와 비발사나]
사마타는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 머물게 하되 평등하게 머물게 하고 안정되게 머물게 하고 가까이 머물게 해서[近住] 적정에 따르되, 그 적정이 지극하도록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專注一趣] 평등하게 거두어 지속시키는 것이다.
비발사나(毘鉢舍那: 觀)는 제법을 간택하되 그 간택이 지극하도록 널리 심사(尋思)로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추중(麤重)의 상결(相結)을 대치하려 하기 때문이고, 모든 전도된 것을 조복시키려 하기 때문이고, 전도되지 않은 마음을 잘 안주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또 사마타(奢摩他: 止ㆍ定)와 비발사나에 의거해서 네 종류의 도를 세우게 된다.
어떤 종류는 이미 사마타를 얻었으나 비발사나가 아닌 것이기에 이 같은 유는 사마타에 의지하여 비발사나를 닦아 나가게 된다.
또 어떤 종류는 비발사나를 이미 얻었으나 사마타가 아닌 것이기에 이 같은 종류는 비발사나에 의지하여 사마타를 닦아 나가게 된다.
또 어떤 종류는 사마타도 얻지 못하였고 또 비발사나도 아닌 것이기에 이 같은 종류는 마음을 모아 혼침ㆍ도거를 조복시키는 두 가지 도를함께 닦게 된다.
또 어떤 종류는 사마타와 비발사나를 이미 얻었기에 이 같은 종류는 사마타의 비발사나의 두 가지 도가 화합하여 평등하게 함께 전향[轉]한다.
[3근(根)]
3근(根)이란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구지근(具知根)을 가리킨다.
미지당지근이란 무엇입니까?
가행도나 견도의 열다섯 가지 찰나심(刹那心) 사이에 있는 모든 근(根)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지근이란 무엇입니까?
제16견도위(見道位)의 찰나심 이상인 일체의 유학도(有學道) 가운데 있는 모든 근을 가리킨다.
구지근이란 무엇입니까?
무학도에 있는 모든 근을 가리킨다.
초정려지(初靜慮地)가 드러나는 것에 의지하여 수도하는 때에 역시 욕계의 계(繫)를 닦는 모든 선근이, 그곳에서 자유로움을 얻기 때문이다.
초정려지에 의지해서 욕계의 선근을 닦는 것처럼 이와 같이 일체의 상지(上地)가 나투는 것에 의지하여 수도하는 때에는 모두 하계(下界)와 하지(下地)의 모든 선근을 능히 수습하게 되기에 그것들이 자유로움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⑤ 구경도(究竟道)], 열 가지 무학법
어떠한 것이 구경도(究竟道)입니까?
금강유정(金剛喩定)에 의지하여 일체의 추중을 영원히 그치게 하기 때문이고, 일체의 계(繫)를 영원히 끊어 버리기 때문이고, 일체의 계득(繫得)을 여의는 것을 영원히 증득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차제가 무간도에서 전의(轉依)하여 진지(眞智)와 무생지(無生智)를 증득하는 열 가지 무학법(無學法) 등에 해당된다.
어떠한 것이 그 열 가지입니까?
무학의 정견(正見) 내지는 무학의 정정(正定), 무학의 정해탈(正解脫), 무학의 정지(正智)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이 같은 법을 구경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일체의 추중이라 이름합니까?
간략하게 설명하면 스물네 종류가 있으니,
일체변행희론추중(一切遍行戱論麤重)ㆍ영수(領受)추중ㆍ번뇌(煩惱)추중ㆍ업(業)추중ㆍ이숙장(異熟障)추중ㆍ개(蓋)추중ㆍ심사(尋思)추중ㆍ음식(飮食)추중ㆍ교회(交會)추중ㆍ몽(夢)추중ㆍ병(病)추중ㆍ노(老)추중ㆍ사(捨)추중ㆍ노권(勞倦)추중ㆍ견고(堅固)추중ㆍ추(麤)추중ㆍ중(重)추중ㆍ세(細)추중ㆍ번뇌장(煩惱障)추중ㆍ정장(定障)추중ㆍ소지장(所知障)추중을 가리킨다.
계득(繫得)이란 무엇입니까?
추중이 쌓여 모이는 것에서 계득의 성품을 가립(假立)하는 것을 가리킨다.
계득을 여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추중이 흩어지는 것에서 계득을 여의는 성품을 가립한다.
금강유정이란 무엇입니까?
수도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결(結)을 끊는 도위(道位)에 있는 삼마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가행도에 수렴되거나 무간도에 수렴된다.
가행도에 수렴된다는 것은 이미 제거한 것이 있어서 비록 일체 장애에 방해받지 않더라도 일체의 장애를 능히 깨뜨리는 것이고, 무간도에 수렴된다는 것은 이 같은 무간도에서 진지한 무생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삼마지에서 그 무간도가 견고하여 그 일미(一味: 한결같은 법미)가 두루 가득한 것이다.
이 같은 이치를 보여 주시고자 박가범께서는
“커다란 돌산이 떨어져 나간 부분도 없고 틈새도 없고 구멍난 곳도 없이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처럼, 지극한 선이 시방에 원만하여 거센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가리켜 무간도에서 전의한다고 이름합니까?
이미 무학도를 증득한 이에게 세 종류의 전의(轉依)가 있다.
어떠한 것이 그 세 가지입니까?
심전의(心轉依)ㆍ도(道)전의ㆍ추중(麤重)전의를 가리킨다.
진지란 무엇입니까?
이미 소진된 것에 연유해서 얻게 되는 지혜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소진된 것을 연하여 경을 삼는다.
무생지란 무엇입니까?
과보가 끊어지게 된 것에 기인하여 얻게 되는 지혜이니 과보가 생기지 않은 것을 연하여 경을 삼는다.
열 가지 무학법은 무학의 계온(戒蘊)ㆍ정온(定蘊)ㆍ혜온(慧蘊)ㆍ해탈온(解脫蘊)ㆍ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에 의거해서 설명되는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도제의 네 종류 행상의 차별, 총괄]
이같이 도제에는 총괄적으로 네 종류 행상의 차별이 있으니, 도상(道相)ㆍ여상(如相)ㆍ행상(行相)ㆍ출상(出相)을 가리킨다.
도상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으로 인하여 진실한 이치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여상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번뇌를 대치하기 때문이다.
행상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이 전도되지 않도록 잘 주석하기 때문이다.
출상이란 무엇입니까?
진실되어 상주하는 자취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여러 진제 가운데 있는 열여섯 가지 행상은 모두가 세간과 출세간에 통하는 것이다.
세간과 출세간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그 소지경에 처해서 어질지 못하게 깨달아 들어가거나 어질게 깨달아 들어가는 그러한 성품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고, 장애가 있고 장애가 없는 그러한 성품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고, 유분별(有分別)과 무분별(無分別)한 성품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진제 가운데 있는 무상과 고 등의 열여섯 가지 세간의 행상은 진여의 성품을 잘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번뇌와 소수면(所隨眠)이기 때문이고, 명자와 언설의 문(門)에 의지하여 희론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출세간의 행상은 이것들과 상반된다.
출세간의 행상이 현전하는 때에 비록 다시 현증(現證)하여 무상의 이치를 인견하더라도 명자와 언설로 희론하는 문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 같은 무상의 이치를 인견하는 것에서 무상의 행상이 무상한 이치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 밖의 행상도 그 밖의 이치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이 같음을 숙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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