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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000yr B.P. 이후 일어난 가장 중요한 환경 변화는 해수면 변동이며, 이를 안다는 것은 한 지역의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환경과 인간과의 상호관계로부터 나아가 인간의 생존전략을 알 수 잇다는 것, 이른바 Broad Spectrum(사냥, 채집, 물고기잡이, 농사 등 다방면의 생산활동을 포괄하는 식량의 광역화)도 이로부터 출발했다는 것 등을 되새겨 보면 이 현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다.
한편 해수면 변화는 주로 빙하기 및 간빙기의 교호작용으로 인한 기후변화로부터 일어나지만 기후변화와 해면변화에는 상당한 시차(time lag)가 있다. 최근에는 심해저의 유공충 등을 이용한 산소동위체비 분석으로 해면변화에 대한 자세하고 많은 정보가 쌓이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추산(estimation)이므로 어떠한 고고학적 · 역사적 사건을 설명함에 있어 여기에만 의지하거나 가설을 세우려는 작업은 약간의 주의를 요한다. 더구나 이는 비단 고고학에서만 주목받는 주제가 아니라 지리학, 지형학 및 지질학, 해양학 등 환경관련의 모든 학문에서 이에 기초하여 옛 환경을 복원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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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교재로 쓰는 책의 일부(申叔靜, 2002,「해수면 변동과 고고학」『考古學硏究方法論』, 서울대학교출판부)를 옮겨적어봤다. 고환경을 복원하고 그로부터 옛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더구나 이런 부분은 지극히 자연과학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비록 접한다고 해도 필요성이나 정당성을 찾기가 어렵다. 예를 들면, "옛날에 우리집 앞마당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거랑 지금 그렇지 않은 거랑 대체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냐?"라고 하면 참 할말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과학적인 연구는 그 자체보다는, 인접 학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크나큰 의의가 있다.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료들이 많이 축적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들여서 재미없지만 꾸준히 자료들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오늘날 고고학에 있어 이런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의 도입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해수면 변화의 경우 앞서 얘기했듯이 일반적으로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반적으로 해수면은 최후빙기 최성기에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아졌으며, 그 이후 빠른 속도로 상승하여 전신세(全新世)의 기후 극상기(Climatic Optimum 또는 Atlantic period라고 하며 대략 6,000yr B.P.를 전후로 현재보다 2도 이상 기온이 높았던 때로 보고 있음)에 최대높이까지 도달하였다고 보고 있다. 지구의 나이가 마지막 단계로 접어든 신생대(新生代)인데 신생대는 제3기와 제4기로 나눌 수 있고, 제4기는 다시 갱신세와 전신세로 나눌 수 있다. 빙하기는 갱신세이며 전신세는 최후빙기인 셈이다. 위에서 언급한 15,000yr B.P가 바로 갱신세를 가리키며 그 이후의 기후 변화가 인류의 역사에 있어 크나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환경적인 면은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 전공자들이 많이 관심갖고 공부하는 부분이며(구석기연구자는 지질학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음)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 했지만 최근에는 역사시대에도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주인장 역시 얼마전부터(차에 대해 글을 쓰면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신세의 해수면이 상승할 때의 속도와 유형에 대해서는 크게 2가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주로 북미지역의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바로 후빙기의 해수면은 smooth하게 상승했으며 현재까지 계속해서 꾸준히 상승하여 왔으므로 현재보다 해수면이 높았던 시기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 및 다른 지역에서 우세한 관점으로 후빙기의 해수면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몇번의 정체기가 있었고 6,000yr B.P.경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2~5m 정도 높았다고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과 일본 학자들도 후자쪽이며 바다와 강가의 퇴적과정을 설명하는데에 있어서도 후자의 모델이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해안의 퇴적과정을 유리하게 해주는 것은 해수면 정체기이며, 해수면이 급작스럽게 상승하면 퇴적지형을 보존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와 주변 나라의 해수면 연구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연구성과가 미비하기 때문에 주변 나라의 연구성과는 굉장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중국의 경우, 해수면 변동연구는 굉장히 활발하다. 중국의 바다는 동쪽에만 있고 위에서부터 발해, 황해, 동중국해, 남중국해로 이름붙어 있다. 해안선은 단조로운 편이지만 제3기 및 제4기의 지각 · 단층운동이 활발하였던 탓에 이들을 함께 고려한 해수면 변동연구가 쉽지 않으며 학자에 따라 견해차도 많이 나고 있다. 전신세의 경우 발해만의 서쪽 평원과 북중국 대평원(the Great Plain), 그리고 복건성 연안과 남중국 해안의 산호초, beach rock 등에 대해 연구된 것이 많다. 중국의 경우 해수면 상승의 주요 원인을 기온상승에서 찾고 있는데 특히 제4기 해진(바닷물이 육지쪽으로 들어오는)은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양자강 유역은 13,150~12,400yr B.P. 동안 온도가 7도나 올라감에 따라 해수면은 -83m에서 -35m로 무려 50m나 상승함을 확인했다. 기온 상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중국의 옛 기후연구를 따르면 기후 극상기는 7,000yr B.P.지만 해수면이 최대로 상승하는 것은 6,000yr B.P.으로 대륙빙하가 녹고 바닷물 온도가 오르는 동안 1,000년 가량의 시간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특징적인데 아마 단순한 기온상승을 떠나 기타 지리상의 변화도 한몫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발해지방의 경우, 요령지방과 산동반도를 포괄한 연구가 특히 많다. 발해의 서쪽 연안에서는 3차례에 걸쳐 주요한 해진이 이루어졌고 해수면 변동이 상당히 심했었다. 최대 해진(황하 해진) 시기를 두고 6,000yr B.P.이냐 7,000~5,000yr B.P.이냐 견해가 분분하지만 일단 최대 해진기에는 해안선이 내륙 깊숙히 들어와 현재 해안선보다 70~100km씩 더 들어갔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즉, 신석기시대에 발해만의 지도는 우리가 요즘 알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보다 내만(內彎)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요동반도의 경우 최대 해진시기는 고고학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요동반도의 신석기시대 지층에서는 토탄층(이탄층 혹은 黑土)이 자주 확인되는데 대개 토탄층 위에서 신석기시대 중기의 유적(6,000~5,000yr B.P.)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토탄층의 형성은 그 이전임을 짐작할 수 있겠다. 요령성은 좀 이르게 나타나서 대략 7,500yr B.P.에 흑토가 형성되고 있다. 토탄층은 부패와 분해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식물의 유해가 진흙과 함께 늪이나 못의 물 밑에 퇴적한 지층을 가리킨다. 즉, 토탄층이 생긴 시점은 본래 지형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되며 해수면 상승이 일어났다는 의미가 된다. 즉, 중국 신석기시대 중기 유적이 형성되기 전 기온이 상승했었고 그 시기의 해안선은 지금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왔었다는 뜻이 된다. 즉, 우리가 요즘 떠들어대고 있는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들에 대해서 이런 부분도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산동지방의 경우는 10,000년~6,000년 전 사이에 해수면이 0.9~1.1mm/yr.의 속도로 급속히 상승해서 6,000yr B.P.에 지금보다 4~5m가 더 높았으며 6,000yr B.P. 이후로는 +5~-2m의 오르내림을 되풀이했다. 장강의 경우 해수면 극상기는 7,000yr B.P.이고 강서지방에는 7,200yr B.P.으로 보고 있는데 이때는 현재 해안선에서 약 200km씩 내륙쪽으로 들어갔다고 여겨지고 있다. 즉, 현재의 지도와는 전혀 다른 지형이었다는 소리가 된다. 한편, 장강의 삼각주지방에서는 10,000yr B.P.에 현재보다 27~21m 정도 내려갔던 해수면이 8,000yr B.P.에는 현재보다 -7~+8m로 올라왔고, 6,000yr B.P.에는 현재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남부로 내려와 복건성 쪽에서는 3기 이래로 활발한 지각운동이 있었고 4기에 들어와서 지각운동이 더 심해진 가운데 10,000yr B.P.에 현재보다 30m 정도 내려가 동중국해와 비슷했던 해수면이 9,000yr B.P.에는 -28m, 7,000yr B.P.에는 -10m였다가 6,200yr B.P.에 최대 해진이 일어났다.
지난 12,000년간 중국 해안의 해수면 변화를 종합하면 지금보다 -60~-50m 정도 낮았던 해안선이 12,000~8,000yr B.P. 사이에 거의 0m까지 상승했고 8,000yr B.P. 이후 다음과 같이 3번에 걸친 해수면 상승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6,500~5,000yr B.P. : +2~_3m / +2~+4m
3,500~3,000yr B.P. : +1~+2m
2,000yr B.P. : +1m
B.C 6,000년 이후 중국 해안의 해수면은 꾸준히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음을 알 수 있는데, 중국 전체 해안의 해수면 변동 사항이 각각 다르지만 대개 6,000yr B.P. 이후는 동일한 견해인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기후 극상기와 최대 해진시기가 대략 1,000년의 시간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해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해수면 변동연구는 매우 활발하고 자료도 넘칠 정도지만 해수면 변화에 대한 견해가 사람에 따라, 재는 지점에 따라 다르고 변동의 폭도 매우 커서 이를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지각운동 · 태풍 등 국지적 요인도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요인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가 추가된다면 1,000년의 시간차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일본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본래 일본은 환태평양 조산대를 구성하며 지진으로 인한 큰 규모의 지각운동이 많았으므로 해수면 변동을 연구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조개류 등을 가지고 옛 해안선을 복원하는 작업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재 간또[關東] 지방과 긴끼[近畿]지방에 대한 연구사례가 가장 많으며 시코쿠[四國] 지방 등의 연구는 덜 활발한 편이다.
일본의 해안선은 단조롭지 않으며 열도(列島)로 이뤄져 있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역시 다양하다. 또한 큐슈, 혼슈 등을 감싸고 있는 바다 역시 내해(內海)로서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중국보다 더 심하게 각 지역의 해수면 상승정도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일본에서도 해수면의 최대 상숭기는 대략 6,000yr B.P.로 보고 있지만 이즈[伊豆] 반도 남부의 경우 전신세 초기 이래 계속 침강을 거듭해 3,000~2,000yr B.P.에 다시 융기해 해수면이 최대로 높아졌을 때는 융기 직전인 3,000~2,000yr B.P. 사이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 역시 6,000yr B.P. 무렵에는 전반적으로 해수면이 지금보다 2~3m 정도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과는 조금 다른 연구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서해안의 경우 6,000yr B.P. 경의 해안선은 -4.5m 정도로 매우 낮은데 이는 일반적인 경향과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복원한 동중국의 해안선 변화도를 보면 10,000yr B.P. 무렵의 우리나라 서해안은 지금보다 멀리 육지에서 나가 있으나 중국과는 연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중국측 자료를 확인했을 때 당시의 수심은 -60m 정도라 할 수 있다. 일산 신도시지역의 지질환경조사에 따르면 토탄층에서 나타나는 해수면 상승의 정도는 약 3~4m 정도이며 그 해당시기는 4,300~4,700yr B.P.(보정연대 5,500~5,000yr B.P.)로 측정됐다. 즉, 우리나라 서해안은 대략 5,000yr B.P. 전후한 시기에 해수면이 지금보다 상승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규조류 분석에 의한 연구결과라든가, 기타 다른 방법론에 따른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서해안 지역에서 4,000yr B.P.에는 확실히 해수면이 높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와 달리 동해안은 10,000yr B.P.에 -25m, 7,000yr B.P.에 -10m, 6,000yr B.P.에 지금과 거의 같아지고 이후 대체로 미미한 변화를 보여 거의 안정되어 있다. 해수면이 상승되어 온 경향은 다른 나라의 경우와 대체로 비슷하나 변화율이 매우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해안 역시 4,000yr B.P. 전후로 해수면이 4~5m 정도 높아졌다고 보는데 가장 높이 상승한 추정값은 5~7m 정도일 뿐이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후빙기 해수면 상승의 높이는 최대 5m 가량이며 이 시기는 약 5,000~4,000yr B.P. 무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과 달리 지각이 안정되어 있음과 관계되는 것인지 혹은 우리나라 후빙기의 기후변화폭이 미미함에 기인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한국고고학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해수면 변동에 대한 연구가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주인장이 '차(茶)'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그 점을 절실히 느꼈었다. 과거와 지금, 동방문명권의 자연환경과 기후 등이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봤지만 그에 대해 이렇다할 답을 줄만한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중국측 자료에서 동북 지역에 대한 단편적인 내용들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기후의 반역-기후로 본 중국의 흥망사』,『중국 역사 지리』(차에 대해 공부할때 많이 참고했던 책들)등 다양한 중국의 자연지리 서적들이 나와있는데 우리나라의 연구성과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가시화되고, 환경적인 부분이 학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관련 연구성과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부분은 고고학계도 마찬가지인데 자연에 적응 · 저항하면서 이룩해냈던 것이 인간 문명이었던 만큼 그런 부분을 해석해내야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학계가 이런 시류에 부응하지 못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외국의 연구성과를 한국의 사례에 적용하다보면 부작용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해수면 변동 하나만 보더라도 위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각 나라마다, 각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자연과학적인 연구성과는 연구사례가 축적될수록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섣불리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