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 문화유산. 제2부 집계와 분석. 2. 유관 가문별 집계와 분석.
전주최씨가 만들었거나, 가지고 있거나, 배향되었거나, 밀접한 상관을 가진 문화재.
문성공계 문화재를 소재지별로 살펴보면, 경상남도가 10건으로 37%나 점유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안렴사공파 고성종회 가문과 관련된 문화재들이다. 전라북도 7건 중 5건과 전라남도 6건은 모두 중랑장공파 가문과 관련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6건과 전라북도 2건은 연촌공파 가문과 관련된 것이다. 연촌공파 또한 예전에는 매우 적극적이었으나, 근래에 좀 저조해 진 것 같다.
안렴사공파 문화재의 60%를 고성종회가 점유하고 있으며, 중랑장공파 문화재의 73%를 연촌공파가 점유하고 있는데, 연촌공파 문화재는 80년대까지는 증가세를 보여 오다가 90년대 이후 정체되었는데, 고성종회는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문열공계도 전주최씨이고, 후손이 전주를 비롯한 전라남북도에 많이 살고 있으므로, 문열공계 문화재도 전라남북도에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단 한 건도 없고, 모두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에 있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문열공계 전주최씨는 모두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7세손 문정공(文貞公) 최재(崔宰) 후손이다. 문정공의 아버지 전서공(典書公) 최득평(崔得枰)은 전주에서 태어났는데, 전주에서 사록 벼슬을 지낸 청주 출신 곽예(郭預)의 딸과 혼인하였다. 당시 풍습은 사대부가 혼인하면 처가살이를 했다.
그러니까 문정공이 충북 청주시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 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후손이 청주를 중심으로 세거하게 된 것. 지금 전라남북도에서 살고 있는 문열공계 전주최씨는 그로부터 한 참 뒤, 조선시대에 전라남북도로 이사한 사람 후손.
그리고 문정공의 셋째 아들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서울에서 살았고, 둘째 아들 양도공(襄度公) 최사의(崔士儀), 넷째 아들 경절공(敬節公) 최사강(崔士康) 등이 왕실과 혼인을 맺으면서 서울 근교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 분포를 보이는 것이다.
비지정문화재 그림 5건, 교지 등 3건, 유물 1건, 정자 3건, 서원 5건, 묘지석 1건.
첫댓글 아버지(27대손)께서 군대에 계실때 할아버지(26대손)께서 돌아가셔서 가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영상자료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