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선생님
“다 모이 봐라 인자부터
영순이 누나한테 샘이라 해야칸다
너거들 알았제..“
구름조차 힘이 들어
산허리에 매달려 쉬어가는
산골 마을에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춰 아기 새들처럼 입을 모아가며
아이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이 마을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분교에서 나는 소리를 따라
교실로 들어가 보니
선생님이라 하기엔
아직 앳되고 어린 소녀가
풍금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네요
풍금 소리가 끝나자
아이들은 그 소녀를 따라
초원이 펼쳐진 운동장으로
다들 종종거리며 나아가고 있었고요
“언니야...
노래 더하면 안 되나“
“영숙이니 자꾸 언니 언니 하는데
샘이라 불러야된다 앙카나“
네….
그렇습니다
알고 보니 여기 분교에 유일하게
계셨던 선생님이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지만
오신다는 선생님이 없어
9명이 전부인 이 학교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영순이가
모래언덕 조각구름 같은 맘이 된
아이들의 선생님이 된거랍니다
누굴 위해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처럼 아름다울까요
아이들에게 칠판에 한자 한자
써내려간 글자들은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의 마음속에선
시가 되어 흘렀습니다
내가 울테니
너희는 웃으라며
자기 손톱을 닮은 초승달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음악선생에다
체육선생까지
묵묵히 하루를 걸어가는
12살 선생님께 그 고마움을
말로 다하진 못한다고 합니다
“철이, 니 참말로 숙제 안해올끼가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야제
너거 오매 니 키운다꼬 얼매나
고생하시노“
“알겠심더.. 샘!''
학교를 갔다 온 철이는
하늘에 구름과 꽃이 어울려
놀고 있는 길을 따라 소풀 먹이려고 와서는 풀밭에 누워 햇살에 놓아둔
행복을 찾아 숙제를 하고 있네요
“철이, 니 뭐하노.. 거기 누워서”
“내 숙제한다..”
“영순 샘이 무섭긴 하나 보네”
“어디 무서워서 그카나
샘이 우리를 위해 노력하시는데
보답해야 안 되겠나“
지붕 위에 걸린
달을 닮은 늙은 호박들을
바라보는 풍성한 맘으로
눈만 뜨면 마주하는
이 행복이 고맙기만 합니다
책가방을 사이에 두고 오늘은
시험을 치는 날,
“가방에 책은 없꼬 딱지랑 구슬이랑 황금 박쥐 만화책삐 없노?"
"그라고 만화책은 와이리 젖었노
너거 엄마한테 새 가방 하나
사달래라“
“우리 오매가 돈이 없다 카더라“
그래서 우리 형아가 중학교 갈 때
그 가방 내준다켔다”
“샘예..상철이는 오늘 저거 오매
환갑이라고 읍내에 사진 박으로
가야 된다꼬 오늘 못나온다 카데예“
가난한 집 창문처럼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12살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자 떠들지 말고 ..
남의 것 보면 빵점 처리한데이,..“
“샘예..
철이가 컨닝구 하는데예”
“내가 언제...”
하얀 해님이 하늘 가운데 올 때까지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필을 콧구멍에 넣었다가
생각나지 않는 머리까지 긁어가며
시험을 치고 있습니다
주번이 된 영자는 읍내에서
번데기를 사먹는 친구들을 보고선
다음날 칠판에다 불량식품 사먹는
아이
“김철수”
“박철”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빈 하늘에 뜬 낮달을 바라보듯
쳐다보던 철이는
“문디 가스나 지도 얼마 전에
부엉이 할머니 문방구 앞에서 달고나
두 개나 사 먹었으면서...“
“그건 내 동생 하는 거 가르쳐
준기다”
“젓가락이 네 입에 들어가는 거
다 봤거덩”
“그건 잘됐는가 맛만 본 거고”
둘이 늘 잘도 붙어 다니는
몸과 마음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 아이들을
싱긋이 바라보며 웃고만 있던
12살 선생님은
“다들 조용히 하고 책들 펴거래이
근데 철이 니는 늦잠 잤디나
얼굴이 와그리 퉁퉁 부었노”
“언지예 ...
어제 읍내 중학교에 다니는 형아가
친구들을 여섯명이나 델꼬와서는
아침에 학교가는 지보고 라면 열 개를 던져주며 끓이라고 안캅미꺼“
“영구 너거집에 그리 큰 냄비가
있었나?“
“그래서 고민하다가 코 풀고 발 닦는 양은 세숫대야에다 끓여 줬더니
(야 니 라면 잘 끓이네…. )
카먼서 맛있게 먹데예“
그 말에
아 이들을 책상과 발을 구르며
큰 행복이라도 주워 담은 양
웃음 띤 얼굴로 깔깔깔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구름이 만든 오선지에
별들이 음표가 된
밤하늘에 달님은 지휘자가 되고
바람이 연주를 하고있는 늦은 시간에
철이는 늦게까지
버스정류장앞에 나와 있네요
“철이 니 와 그라고 서 있노
퍼떡 집에 안 들어가고“
“샘예..
오늘 신발공장에 다니는 누부야 온다꼬 전화왔심더”
“철이 너거집은 부자데이
전화기도 있고 누부야가 맛있는 것도 사오고“
밤늦게 학교 청소에 내일 수업할 것까지.끝내고 들어가는 12살 선생님의
빈 어깨는 참 무거워 보입니다
함께 나누지 못한 슬픔 위로
떨구지 못한 눈물이 있었을까요
“오늘 샘이 울들 공부가르킨다꼬
아파가 못나온신단다“
“야 우리 샘 병문안 가야되는거
아니가”
“난 안갈란다
대문 앞에 누렁이가 무십데이”
“동네 사람들도 지나다닐 때마다
대문앞에 어르릉 거리가지고
울오매도 무섭다 카더라''
“울아버지는 누렁일 보고도 안무서운 갑더라 입맛만 다시며 싱긋이 웃기만 하던데,,,,“
“ㅋㅋㅋㅋㅋㅋㅋ
누렁이가 올 여름을 잘 넘겨야
할 텐데..“
봄이 준 행복은 그렇게
아이들의 가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동네 아이들이
윗동네 아랫동네 다 돌면서 빈 병과
박스를 주우러 다니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요
조금 있으면 다가올
스승의날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스승의날 니는 뭔 선물한 건데”
“울 오매가 고구마 갔다주라
카든데..”
“우리 그카지말고
그냥 빈 병 모은 돈으로 샘 운동화
하나 사주면 어떻겠노”
열린 가슴을 다물지 못한 채
아이들은 또 하나의 행복을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샘예 새로 산 필통이 없어졌어예“
주머니에 들어있는 행복을
잃어버린 듯 울고 있는 영자에게
낼 학교 올 때까지
샘이 꼭 찾아줄 테니
걱정 말고 집에 가라며
달래어 보낸 뒤
한 방울,
두 방울 별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떨어져 갈 때
철봉 밑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영구에게 선생님은
지친 그림자를 끌고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뭐하노 영구야”
''....''
“내가 오늘 쪼매 바빠서
먼저 집에 갈 테니까 오늘은 영구
니가 교실문 잠그고 온네이“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되고 싶었던
선생님의 그림자 위에는
영구의 눈물 고드름이 맺혀져 있었고
12살 선생님의 맘속에도 눈물이
바람되어 먼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은
먹은 만큼 행복이 오는 걸까요
다음날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학교에 온 아이들의 눈에
없어졌던 영자의 필통이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게 아니겠어요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듯
시끌버끌하는 아이들에게
흐뭇한 웃음을 보낸 12살 선생님은
교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운동화를 바라보며
“오늘 점심은 내가 자장면으로 쏜다“
하늘에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는
눈망울로 앉아있던 아이들 앞에
자장면이 네 그릇이 놓였습니다
비 오는 날
버려진 비닐우산처럼
자장면을 바라보던 영자는 혼잣말로
“여덟명인데…. 네개만 왔노..“
“문디 가스나 눈치 없꾸로
샘이 돈이 어딨노 네 개라도 시켜준 것만 해도 오감치..“
자장면 그릇 하나를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대고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12살 선생님의 표정은
참 해맑아 보입니다
“야! 그만 먹고 대그빡 좀 치워봐라
내도 먹꾸로"
“하하…. 호호“
“야 자장면에 하얗게
떨어지는 게 머꼬"?
"니 빡빡머리에서 떨어지는
비듬 아니가?"
"더러버서 난 안묵을끼다
니 다 쳐무라 마“
자장면을 먹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산그늘에 붙잡힌 노을이
12살 어린 선생님과 8명의 아이의
마음속에
사랑으로 머물러 섰을 때
“내년에 우리 샘이 중학교 가뿌면
8명밖에 안된다꼬 학교 없애뿐다
카더라“
마지막 수업이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12살 선생님은
칠판에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바래봅니다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