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일정을(나는 영재수업, 첫째는 으뜸인재 수업) 마치고, 3시에 있는 창극 공연을 보고 바로 대음집으로 향했다.
이번 창극 공연은 정조를 소재로 한 ‘어느 왕의 슬픈 사랑 이야기’였다.
남원에서는 매달 1회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창극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화의 도시라 그런지 공연 관람의 기회가 많다.
대음집에 도착하니 벌써 해질녁이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 저녁 식사를 위해 불을 지핀다.
오늘 저녁 메뉴는 장어구이다.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는 장어를 여기 와서야 먹게 된다.
아들 녀석과 장갑을 끼고 마당을 돌며 불을 지필 마른 장작과 나무들을 주워 모은다.
처음에는 마르고 작은 나뭇가지들을 그다음에는 단단하고 큼직한 나무를 줍는다.
작은 나뭇가지들은 불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큰 나무들은 숯을 만들기 위합니다.
마당 한가운데 화로에 불을 지피고 그 옆으로 의자를 펼친다.
급하게 고기를 구우려면 마트에서 숯을 사는데 오늘은 느긋한 저녁 시간을 즐기고 싶어 마당 주위에서 나무를 구해다가 숯을 만든다.
밥 먹는 시간을 늦어지겠지만, 불을 지피고 숯을 만드는 그 과정을 자녀들과 함께하니 더 소중하다.
주말 한가하기만 한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니 행복하다.
지금, 이 시간들을 자녀들이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그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첫째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마당에 음악을 튼다.
특히 아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아내는 IU의 노래를 좋아한다.)
요즘 첫째가 많이 변했다.
아니 변하려고 무던히 노력 중이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애정 표현도 하고,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돕는다.
이제 사춘기도 다 지나갔나 보다.
다행이다 별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 주어서.
첫째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요즘 엄마 아빠에게 큰 힘이 된다.
드디어 큰 나무에도 불이 붙어 숯이 만들어진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불타는 나무를 뒤척거리며 서서히 숯을 만든다.
나무에 붙은 불이 점점 꺼지고 열기를 가득 담은 숯만 남는다.
석쇠를 올리고 그 위에 장어 등장.
평소에 잘 먹지 못하던 장어가 이제서야 불 위로 올라간다.
아내가 냉동실 어딘가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장어 3마리.
장어는 오늘을 기대하며 그렇게 냉동실에 숨어 있었나 보다.
장어를 굽고 있으니 어느새 길냥이들이 마당에 어슬렁댄다.
어디 얻어먹을 게 없는지 장어 주위를 맴돈다.
예전에, 마당에서 고등어를 구운 적이 있다.
정성스레 숯을 만들어 약불로 30분이 넘게 훈연한 고등어였다.
그 고등어를 예쁜 접시에 담아 잠시 마당 한편에 둔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그 고등어를 길냥이들에게 뺏겼다.
다음 고등어를 굽고 있는 사이, 정말 잠깐이었는데... 돌아보니 접시가 비어있다.
마당 한편에서는 고양이들이 한 마리의 고등어를 기분 좋게 뜯고 있더라.
얼마나 화가 나던지...
정말 정성스레 구운 고등어를 길냥이들에게 뺐기다니.
허탈했다.
이번에는 어림없다.
오늘 장어는 내가 지키고 또 지키련다.
잠시도 한눈팔지 않으리.
너희들이 이 주위를 어슬렁거린다고 절대 빈틈 주지 않겠다.
장어를 먹기 좋게 잘라, 이리 돌리며 저리 돌리며 노릇노릇하게 구워 바로 접시에 담고 마당에 미리 펼쳐놓았던 테이블 위로 올린다.
테이블 위에는 갓 지은 뜨끈뜨끈한 밥과 텃밭에서 막 뽑은 상추와 깻잎 그리고 아내표 김치찌개가 놓여있다.
모두 모여 장어 한점을 상추에 싸 입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서로의 입에도 상추쌈을 넣어준다.
하하호호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