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秋使高句麗김춘추가고구려에사신으로가다.삼국사기열전.hwp
春秋使高句麗 (춘추사고구려)
○<善德大王>十一年壬寅, <百濟>敗<大梁州>, <春秋>公女子<古 炤>娘, 從夫<品釋>死焉. <春秋>恨之, 欲請<高句麗>兵, 以報<百濟>之怨, 王許之. 將行, 謂<庾信>曰: "吾與公同體, 爲國股肱. 今我若入彼見害, 則公其無心乎." <庾信>曰: "公若往而不還, 則僕之馬跡, 必踐於<麗>·<濟>兩王之庭. 苟不如此, 將何面目以見國人乎." <春秋>感悅, 與公互 手指, 血以盟曰: "吾計日六旬乃還, 若過此不來, 則無再見之期矣." 遂相別. 後<庾信>爲<押梁州>軍主. <春秋>與<訓信>沙于{沙干} , 聘<高句麗>, 行至<代買縣>, 縣人<豆斯支>沙干, 贈靑布三百步. 旣入彼境, <麗>王遣太大對盧<盖金>館之, 燕饗有加. 或告<麗>王曰: "<新羅>使者, 非庸人也. 今來, 殆欲觀我形勢也, 王其圖之, 無後患." 王欲橫問, 因其難對而辱之. 謂曰: "<麻木峴>與<竹嶺>, 本我國地, 若不我還, 則不得歸." <春秋> {對} 曰: "國家土地, 非臣子所專, 臣不敢聞命." 王怒囚之, 欲戮未果. <春秋>以靑布三百步, 密贈王之寵臣<先道解>. <道解>以饌具來, 相飮酒 , 戱語曰: "子亦嘗聞龜兎之說乎. 昔, 東海龍女病心, 醫言: '得兎肝合藥, 則可療也.' 然海中無兎, 不奈之何. 有一龜白龍王言: '吾能得之.' 遂登陸見免{兎} 言: '海中有一島, 淸泉白石, 茂林佳菓, 寒暑不能到, 鷹 不能侵.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 因負兎背上, 游行二三里許. 龜顧謂兎曰: '今龍女被病, 須兎肝爲藥, 故不憚勞, 負爾來耳.' 兎曰: '噫, 吾神明之後, 能出五藏, 洗而納之. 曰{日} 者小覺心煩, 遂出肝心洗之, 暫置巖石之底, 聞爾甘言徑來, 肝尙在彼, 何不廻歸取肝, 則汝得所求, 吾雖無肝尙活, 豈不兩相宜哉.' 龜信之而還, 上岸, 兎脫入草中, 請{謂} 龜曰: '愚哉, 汝也, 豈有無肝而生者乎.' 龜憫默而退." <春秋>聞其言, 喩其意. 移書於王曰: "二嶺, 本大國地. 分{令} 臣歸國, 請吾王還之. 謂予不信, 有如 日." 王 悅焉. <春秋>入<高句麗>, 過六旬未還. <庾信>揀得國內勇士三千人, 相語曰: "吾聞見危致命, 臨難忘身者, 烈士之志也. 夫一人致死當百人, 百人致死當千人, 千人致死當萬人, 則可以橫行天下. 今國之賢相, 被他國之拘執, 其可畏不犯難乎." 於是衆人日{曰} : "雖出萬死一生之中, 敢不從將軍之令乎." 遂請王以定行期. 時, <高句麗>諜者浮屠<德昌>, 使告於王. 王前聞<春秋>盟辭, 又聞諜者之言, 不敢復留, 厚禮而歸之. 及出境, 謂送者曰: "吾欲釋憾於<百濟>, 故來請師. 大王不許之, 而反求土地, 此非臣所得專. 嚮, 與大王書者, {圖} 死耳."[此與本言{書 /記 }<眞平王>十二{<善德王>十一} 年所書, 一事而小異, 以皆古記所傳, 故兩存之.]
춘추사고구려
○<선덕대왕>십일년임인, <백제>패<대양주>, <춘추>공녀자<고 소>낭, 종부<품석>사언. <춘추>한지, 욕청<고구려>병, 이보<백제>지원, 왕허지. 장행, 위<유신>왈: "오여공동체, 위국고굉. 금아약입피견해, 칙공기무심호." <유신>왈: "공약왕이부환, 칙복지마적, 필천어<려>·<제>양왕지정. 구부여차, 장하면목이견국인호." <춘추>감열, 여공호 수지, 혈이맹왈: "오계일육순내환, 약과차부래, 칙무재견지기의." 수상별. 후<유신>위<압양주>군주. <춘추>여<훈신>사우{사간} , 빙<고구려>, 행지<대매현>, 현인<두사지>사간, 증청포삼백보. 기입피경, <려>왕견태대대로<개금>관지, 연향유가. 혹고<려>왕왈: "<신라>사자, 비용인야. 금래, 태욕관아형세야, 왕기도지, 무후환." 왕욕횡문, 인기난대이욕지. 위왈: "<마목현>여<죽령>, 본아국지, 약부아환, 칙불득귀." <춘추> {대} 왈: "국가토지, 비신자소전, 신부감문명." 왕노수지, 욕륙미과. <춘추>이청포삼백보, 밀증왕지총신<선도해>. <도해>이찬구래, 상음주 , 희어왈: "자역상문구토지설호. 석, 동해룡여병심, 의언: '득토간합약, 칙가료야.' 연해중무토, 부나지하. 유일구백룡왕언: '오능득지.' 수등륙견면{토} 언: '해중유일도, 청천백석, 무림가과, 한서부능도, 응 부능침. 이약득지, 가이안거무환.' 인부토배상, 유행이삼리허. 구고위토왈: '금룡여피병, 수토간위약, 고부탄로, 부이래이.' 토왈: '희, 오신명지후, 능출오장, 세이납지. 왈{일} 자소각심번, 수출간심세지, 잠치암석지저, 문이감언경래, 간상재피, 하부회귀취간, 칙여득소구, 오수무간상활, 기부량상의재.' 구신지이환, 상안, 토탈입초중, 청{위} 구왈: '우재, 여야, 기유무간이생자호.' 구민묵이퇴." <춘추>문기언, 유기의. 이서어왕왈: "이령, 본대국지. 분{령} 신귀국, 청오왕환지. 위여부신, 유여 일." 왕 열언. <춘추>입<고구려>, 과육순미환. <유신>간득국내용사삼천인, 상어왈: "오문견위치명, 림난망신자, 렬사지지야. 부일인치사당백인, 백인치사당천인, 천인치사당만인, 칙가이횡행천하. 금국지현상, 피타국지구집, 기가외부범난호." 어시중인일{왈} : "수출만사일생지중, 감부종장군지령호." 수청왕이정행기. 시, <고구려>첩자부도<덕창>, 사고어왕. 왕전문<춘추>맹사, 우문첩자지언, 부감부류, 후례이귀지. 급출경, 위송자왈: "오욕석감어<백제>, 고래청사. 대왕부허지, 이반구토지, 차비신소득전. 향, 여대왕서자, {도} 사이."[차여본언{서 /기 }<진평왕>십이{<선덕왕>십일} 년소서, 일사이소이, 이개고기소전, 고양존지.]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다.
선덕대왕 11년 임인에 백제가 대량주를 격파하였다. 그 때, 춘추공의 딸 고타소낭이 남편 품석을 따라 죽었다. 춘추는 이를 한탄하며 고구려에 청병하여 백제에 대한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길을 떠나기 전에 춘추가 유신에게 말했다. "나와 공은 일심동체로서 나라의 기둥이오. 이번에 내가 만약 고구려에 들어가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공이 무심할 수 있겠오?" 유신이 대답하였다. "공이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면 저의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백제 두 왕의 궁정을 짓밟을 것이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백성들을 대하겠오?" 춘추가 감격하고 기뻐하여 공과 함께 서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며 맹세하였다. "내가 60일이면 돌아올 것이오. 만일 이 기한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 것이오." 그들은 드디어 작별하였다. 그 뒤에 유신은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춘추가 훈신 사간과 함께 고구려에 사절로 가는 도중 대매현에 도착하였다. 그 때 고을 사람 두사지 사간이 푸른 베 3백 보를 그에게 주었다.
고구려 경내에 들어가니 고구려 왕이 태대대로 개금을 보내 객관을 정해주고 또한 연회를 열어 우대해 주었다. 어떤 사람이 고구려 왕에게 말했다. "신라 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그가 온 것은 아마도 우리의 형세를 정탐하려는 것 같으니 왕께서는 잘 처리하시어 후환이 없게 하소서." 왕은 춘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여 그를 곤혹스럽게 하고자 하여 그에게 물었다.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 나라 땅이니 만약 이를 우리에게 돌려 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하리라." 춘추가 대답하였다. "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감히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왕이 분노하여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미처 죽이지 않고 있었다. 춘추는 푸른 베 3백 보를 왕의 총신 선도해에게 몰래 주었다. 도해가 음식을 준비해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자 농담으로 말했다. "그대도 일찌기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났는데, 의사가 '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섞어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오. 그러나 바다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었오. 그 때 마침 거북 한 마리가 용왕에게 아뢰었다오. '제가 그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북이는 마침내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보고 말했소.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맑은 샘과 흰 돌이 있고 무성한 숲과 맛있는 과실이 있다. 추위와 더위도 없고, 맹금도 침범할 수 없다. 네가 갈 수만 있다면 근심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쯤 헤엄쳐 갔다오. 그제서야 거북이가 토끼를 돌아보며 '지금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토끼 간으로 약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수고를 마다않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라고 말했소. 이를 듣고 토끼가 말했다오. '아! 나는 천지신명의 후예인지라 오장을 꺼내어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다. 일전에 속이 약간 불편한 듯하여 잠시 간과 심장을 꺼내어 씻은 후에 바위 밑에 두었다. 그런데 너의 달콤한 말을 듣고 곧 바로 오는 바람에 간이 아직도 거기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지 않으리? 그렇게 하면 너는 구하려는 약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더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둘이 서로 좋은 일이 아니랴?' 거북이 그 말을 곧이 듣고 돌아갔는데, 언덕에 오르자 마자 토끼가 풀 속으로 뛰어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했다오. '어리석기도 하구나. 네놈은!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 거북은 이 말을 듣고 멍청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는 말이 있다오." 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뜻을 알아 차렸다. 그는 왕에게 글을 보내 말했다. "두 영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여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 보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미덥지 않다면 저 태양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왕은 그 때서야 기뻐하였다. 춘추가 고구려에 간 지 60일이 지나도록 안돌아오자 유신은 국내의 용사 3천 명을 선발하여 놓고 말했다. "위기를 당하면 목숨을 내놓고, 어려움을 당하면 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고 나는 들었다. 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백 명을 대적하고, 백 명이 목숨을 바쳐서 천 명을 대적하고, 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만 명을 대적한다면 천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어진 재상이 타국에 구금되어 있는데 어찌 두렵다 하여 일을 도모하지 않겠느냐?" 이에 모든 사람들이 "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사는 일에 나아갈지라도, 어찌 감히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유신은 마침내 왕에게 떠날 날짜를 정해주기를 요청하였다. 이 때 고구려의 간첩인 중 덕창이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고구려의 왕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고구려 왕은 전날 춘추의 맹세를 들었고, 또한 첩자의 말을 들은지라 그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후한 예로 대우하여 춘추를 귀국케 하였다. 고구려 국경을 벗어나자 춘추가 전송하러 나온 자에게 말했다. "내가 백제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고구려에 와서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대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에 대왕에게 보낸 글은 죽음을 모면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이는 본기 선덕왕 11년 기록과 같은 사건인데 내용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모두 고기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그대로 기록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