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50yxfTq1rAw
땅굴작전을 지휘하는 박경석 특수임무부대장(TF1}
국내는 물론 외신에 철원 DMZ내 땅굴이 발견되었다고 크게 보도가 되자 미국 본토에서 고위 장성들이 줄이어 땅굴을 찾았다. 이 사진은 미국 육군참모총장일행에게 땅굴을 안내하고 있는 나. 일행이 땅굴 천장에 뚫린 천공(다이나마이트 설치를 위해 뚫은 구멍)을 확인하고 있다. 이 천공이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뚫려 있었으므로 한국군 조작설이 쑥 들어갔다. 당시 일각에서는 한국측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 시절 미국측은 박정희의 영구집권 획책으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였다. 사진 오른 쪽은 미국 육군참모총장, 그 바로 뒤 주한 UN군 사령관 (앞 참모총장에 가려 헬멧만 보인다), 중앙은 한국군 제5군단장 이건영 장군, 맨 좌측은 천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나.박경석 특수임무부대장. 한미 두 고위 장성이 열심히 천공을 확인하고 있다. 이 확인으로 말미암아 미국측이 북한군 소행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작은 사안이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다. 미국 육군참모총장이 손전등을 직접 비추면서 천공을 뚫어지게 주시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그의 미소를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음날 모든 내외신은 '철원 땅굴은 북한군에 의해 굴착되었다' 고 일제히 보도하였다. 비로소 한국군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
'그날'을 회상하며
[철원DMZ특수임무부대장. 6사단 작전 부사단장 겸직)
철원 북방 DMZ 내에서 땅굴 탐색 작전을 지휘하는
7개월 동안 숙소로 사용했던 탑차 앞에서...
장군이 DMZ 내에서 상주한 경우는 국군 역사상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내가 이 탑차 안에서 때때로 눈물을 흘린 까닭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박경석의 서재 [작은강의]와 [연재코너]를 탐색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당시 정치군인들의 나에게 가한 핍박과 보복은 오히려 오늘날 박경석의 정의와 불굴의 문학정신으로 굳힐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윤필용,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 가해자는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모두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
아마 그때 정치군인들은 내가 DMZ에서 잘못되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 후 땅굴작전 공로가 인정되어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정치군인들이 내 무공훈장 많은 것을 시샘했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한 방 먹인 꼴이 되었다.
장군 진급과 동시 강원도 철원 북방 DMZ에 투입, 엄동설한에... 난방시설도 없는 구닥다리 화물 탑차에..., 국군사(國軍史)에 또 이런 경우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