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은 나름대로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즈텍 문명중 하나인 멕시카는 전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의무교육을 도입한 민족으로, 모든 소년, 소녀들은 계급, 직위, 직책에 상관없이 15살에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는 2가지 종료가 있었으며, 하나는 실업계/군사계 학교였고, 나머지는 문과/이과계통으로, 문학, 정치학, 천문학, 신학 등을 가르친 학교였습니다. 아즈텍의 교사들은 스파르타식의 교육을 했으며, 여성은 가정과 보육에 관해서 교육받았으며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은 가르쳐 지지 않았습니다. 귀족제도, 노예제도는 세습이 아니었고, 노예도 노에를 거느릴 수 있었으며, 주인이 자신을 심하게 다루었다는 증거만 있었으면 자유민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즈텍 문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인신공양의 풍습은 야만적이라 불리지만, 사실 그건 그 문명의 일부분만을 놓고 관찰한 겁니다.
그럼, 농경학으로 가 볼까요?
아즈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녹티틀란(Tenochtitlan) 을 예로 들어볼께요. 치암파라고 불린 농경지 유닛에서 아즈텍들은 상당히 효율적인 농경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1년에 7번까지 경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1치암파 (30x2.5미터의 정사각형의 경작지) 는 약 20명을 먹여 살릴 수 있었고, 9000치암파는 18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수도의 상주인구는 20만으로 추정되며, 텍스코코 호수(수도는 호수 안에 섬으로 된 형식입니다) 주변의 인구수를 종합해 보면 약 30만에서 70만까지 추정합니다. 상업도 발달했으며, 네특티틀란의 자매도시인 틀라테롤코 (Tlatelolco) 의 중앙 시장엔 매일 6만여명의 인파가 몰렸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즉, 아즈텍도 나름대로 상당한 문명을 자랑한 국가였습니다.
2) 철기시대란 언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발전되어 갔나?
대체적으로, 철기시대는 서기전 12세기경에 고대 중동지역, 고대 그리스 지역, 고대 인디아 지역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녹 문명이 비슷한 시기에 철시문명을 시작하였으며, 아마 독자적으로 개발해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으며, 아프리카 대륙이 천천히 퍼져 서기 200년경에는 남아프리카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철도 금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하여 의식용으로 쓰였으나, 점차 줄어 가는 구리와 주석을 대체하기 위한 방안으로 철이 점차 널리 쓰였다고 추측합니다. 특히 아나톨리아 지역에서는 체계적으로 철을 생산하였으며, 이는 중동 지역에 고급 철기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청동기 시대와 비슷한데, 그 이유는 청동기 시대도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먼저 시작하여 점차 다른 중동지방으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철기 문명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으로 직접 가져왔고, 그전까지는 그 두 대륙에 위치한 문명들은 독자적으로 철기문명을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대답은 이것이 되겠습니다.
3) 아즈텍에 철기 및 청동기의 사용이 보급화 되지 않은 것은 무었인가?
청동기는 아즈텍에도 존재했었습니다. 청동기와 흑요석 같은 장신구나 도구들은 주로 적국인 타라스칸에서 수입되어 왔으며, 귀족과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었습니다.
청동기의 보급은 그 가격과 희소성으로 인해 주로 장식품이나 비싼 도구들을 쓰는 데 만들어 졌으며 무기로 쓰였을 가능성은 아주 적습니다.
그리고, 비록 아프리카나 인디아같이 독자적으로 철기문명을 발달시킨 예는 있으나, 그들도 교류를 통해서 더욱 철기 제조법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겠죠.
그럼 정리하죠. 마야나 아즈텍이 철기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구대륙과의 교류의 단절이 되겠습니다. "그럼 왜 아프리카나 인디아처럼 독자적인 철기 문명을 발달시키지 못했나?" 란 의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중 제가 선택하고 싶은 대답은 "청동기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으나까" 입니다.
중동에서 철기 문명이 발달한 주요 3가지 이유는,청동기를 널리 쓰던 주요 도시국가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는 고대때 구리, 주석과 철의 주요 산지였죠) 의 잦은 분쟁으로 인해 청동 무기의 보편화, 둘째 줄어가는 구리와 주석을 대체하기 한 대체소제로써의 철기의 발달, 셋째는 철기가 주요 무역상품이자 무기로써 점차 보편하된 것이 주요 이유였습니다. 즉, 직접적인 원인은 청동기의 부족, 그리고 아나톨리아에서 개발된 발전된 철기생산 기술로 인해 철기가 보급되게 된 것이죠.
아프리카, 인디아도 물론 철기문명 이젠에 청동기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청동을 장신구와 제한된 도구로서 쓰는 아즈텍인에게는 청동이란 상당한 사치품이었으며, 칼이나 창촉 등 전쟁의 도구로 만드는 등 보편화할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뭐, 철기시대때 은을 칼이나 창촉으로 만든다는 것을 상상하면 되겠습니다. 날카로운 도구가 필요하면 흑요석을 잘 갈아 철로 된 칼보다도 날카롭게 만들 수 있었으며, 외과수술에는 흑요석으로 만든 칼을 써 절개를 했습니다.
아즈텍은 어찌 보면 고대 이집트와 비슷한 나라로, 고대 이집트처럼 천문학, 교육학, 농업과 건축학을 발달시켰죠. 바퀴의 발명, 청동기와 철기의 발전, 전차(채리옷)의 발달 등은 거의 다 메소포타미마,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발달한 것으로, 이집트도 나름대로 고도의 문명을 발달시키기는 했지만 (아즈텍에겐 없는) 중요한 발명들은 거의 중동에서 수입해 온 나라이죠. 아즈텍도 이집트와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그들에겐 청동기, 철기, 바퀴, 전차 등을 쓰던 타국이 없었으므로, 결국 그런 것들이 없이 나름대로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첫댓글바퀴.전차가 남미에서 발명되지 못한 이유는 된순히 인접국가와의 문명 단절로만 보는 것 보단 과연 남미에 바퀴라는 물건이 필요했나로 봐야합니다. 바퀴라는 물건뿐만아리라 인류는 서로 떨어져있고 전혀 교류가 없다고 해도 필요에 의해 비슷한 발명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바퀴도 마찮가지죠. 허나 남미(마야 아즈택)에서는 바퀴를 발명할 명분이 없었다고 봅니다. 이유는 바퀴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동물이 없었다는겁니다. 바로 소나 말이죠. 남미에는 이런 동물이 없엇습니다. 그러니 자연 전차도 발명이 안됩니다. 인류가 수만 수천년 동안 수만은 동물중 가축으로 길드린 동물은 딱 16종 이라고 하더군요. 이중 바퀴를 달고있는
첫댓글 바퀴.전차가 남미에서 발명되지 못한 이유는 된순히 인접국가와의 문명 단절로만 보는 것 보단 과연 남미에 바퀴라는 물건이 필요했나로 봐야합니다. 바퀴라는 물건뿐만아리라 인류는 서로 떨어져있고 전혀 교류가 없다고 해도 필요에 의해 비슷한 발명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바퀴도 마찮가지죠. 허나 남미(마야 아즈택)에서는 바퀴를 발명할 명분이 없었다고 봅니다. 이유는 바퀴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동물이 없었다는겁니다. 바로 소나 말이죠. 남미에는 이런 동물이 없엇습니다. 그러니 자연 전차도 발명이 안됩니다. 인류가 수만 수천년 동안 수만은 동물중 가축으로 길드린 동물은 딱 16종 이라고 하더군요. 이중 바퀴를 달고있는
달구지나 전차를 끌수있던 동물은 한정되있습니다. 소나,말 정도죠. 이런 동물이 남미에는 없었으니 자연 바퀴를 발명할 이유가 없던거지요. 사람이 끌고가는 바퀴달린 달구지란 얼마나 비실용적인지 잘 아실겁니다^^. 차라리 한명식 등에 지고 가는게 더 편할겁니다.
청동기까지밖에 못했지만 그런 거대한 건물들과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돌덩이 다루는기술, 거침없이 인간제물을 원하는 신들,,,,요런 이유들때문에 아메리카문명을 외계에서 왔다는 설도 있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