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번호는 지정 순서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국보 1호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숭례문은 한양 도성(都城)의 정문. 도성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이 있는 도읍(都邑)일 뿐만 아니라, 둘레만 해도 20km가까이 되는 읍성 중에서도 최고의 읍성이다.
어떤 분은 읍성이 한국에만 있다는데 중국 북경도 가보면 자금성 앞 천안문광장 남쪽에 정양문(正陽門)이 있는데, 북경 도읍의 내성(內城) 정문이다. 우리가 숭례문을 남대문이라고 부르듯이 중국 사람들은 정양문을 치엔먼 즉, 전문(前門)이라고 부른다.
정양문 앞에 5호선 지하철 전문역이 있다. 5호선은 순환선인데 20여개 역 중에서 얼추 20개 정도가 무슨 문 역이다. 5호선 지하철 노선 부근으로 내성이 있었던 것같다.
정양문(正陽門) 남쪽 서너 정거장 거리에 천단(天壇)이 있어서 북경 외성은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읍성(邑城)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肅靖門) 광희문(光熙門), 소의문(昭義門), 창의문(彰義門), 혜화문(惠化門)
흔히 창의문을 북문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창의문이 북대문 인줄로 잘못 알지만, 북대문은 숙정문이고, 삼청동 한식집 삼청각 맞은 편 산 위에 있다.
숭례문은 조선이 개국하여 한양을 수도로 정할 때 건축되어,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사변 등 전쟁을 거치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버티어 왔다. 1907년 일본 태자 요시히토(嘉仁, 일본의 제123대 다이쇼(大正) 천황)가 서울에 왔는데, 숭례문이 좁아서 통과할 수 없으므로 헐어 버리려고 했다가, 헐지 않고 성벽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숭례문을 보존한 이유는 좋아서가 아니고, 임진왜란 때 가토키요마사(加藤淸正)가 입성한 문이기 때문이랍니다. 숭례문은 조선총독부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해방 후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소실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 이분은 전주최씨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전주최씨의 역사에서 말씀드리겠지만, 간단한 설명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0호 죽정 최유경 묘역을 설명할 때 말씀 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