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향기 날리는 숲으로
정경림
여름 숲에 밤꽃향기 쏟아붓던 날
푸르름과 꽃들이 평화를 부른다
머리에 하늘을 꽂고 마음속에 그대를 담고
이파리 총총히 엮어 드리운 오솔길 따라 걷는다
신록은 화덕의 불처럼 타오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 문 이름 모를 새들
빨간 산딸기 오밀조밀 익어가는
햇살이 일렁이는 숲으로 달려본다
서럽 깊숙이 숨겨놓은 추억을 꺼내면
슴벅슴벅 저며 내는 가슴속 하루에도
몇 차례 기와집을 짓지만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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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가현산의 숲
정경림
이른 아침 푸른 산은 안개를 껴안고 앉아
이제 막 익어 가는 열매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다
꽃을 보면 눈이 부시고 초록 이파리를 보면 가슴이 시원하다
꽃이 잠시 머물다 총총 떠나간 가지마다 무성히 생겨나 오래오래 있는 이파리
쪽빛 하늘에서 내려오는 밝은 햇살로 목욕하며
흥겨히 춤추는 가볍고도 깊은 초록 영혼
산딸기 줄기에는 뾰루지 같은
붉은 열매가 혀를 날름거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산새들의 입맛 다시는 소리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자신의 나신을 비추던
고라니 한마리 흥에 겨워 뜀박질하다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고
햇살에 가려진 풀꽃들 사이로
지혈이 올라와 잔디를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
유월의 산속에는 뻐꾸기가 사랑 놀음에 빠지고
길 잃은 다람쥐의 꼬리에는 더위가 찾아와
하품을 매달고 있다.
2020년〈인천문단〉49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