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된 변형의 현상학적 세계
- 풍경화에 색면 컴포지션을 접목, 새로운 회화양식 구축 「」 『』
글_ 박명인 미술평론가
변형의 계기에서 본 감각과 지성
신종섭의 1980년에서 현재에 이르는 작품은 감각적인 동시에 지적인 창조가 조화를 이룬 종합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60년대 초, 홍익대학 시절의 서정성이 짙은 반추상의 세계로 부터 시작된다. 타계하신 수화 선생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 200자 원고지에 쓴 빛 바랜 편지에서도 느껴진다.
1962년 5월18일의 "지금 뒷산에서 꾀꼬리가 우네, 점심 시간이라 학생 전원이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한가로히 담소들을 하고 있네, 참 아름다운 평화로운 정경일세, 우리 미술학부 교수실에는 자네가 두고 간 그림이 정면에 걸려 있다네, 자네 작품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네, 어디 꼭 붓을 들어야만 작품이 되겠나?. 예술이란 정신적 준비 기간도 있는 법이니 장차의 군의 군복무 생활이 살이되고 피가 될지도 모르는 궅센 정신훈련이 있기를 바라며 우리 학생들도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네." 라는 내용과, 동년 8월. "교정엔 자네들의 후배들이 꼭 차있고 이제 가을 곷들이 그 중에도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네, <중량> 예술에의 꿈은 못견디게 고독의 골목에 있을지도 모르테. 부디 명랑하고 아름다운 꿈을 잊지마소." 라는 내용은 한 폭의 정감이 담긴 시와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육군 101보충중대 이등병 시절 수화 김환기 선생이 보낸 격려 편지문이다. 작은 문구이면서도 매번 싯구처럼 아름답고 한폭의 풍경화처럼 청초한 글귀로 군복무 중인 제자를 격려하던 수화 선생은 신종섭에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개딷게 하는 감성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60년대 작품들은 모두 한국의 정서를 가득 담은 보색 계통의 온화한 반 추상계열의 그림이다. 두번째 로는 오랜 교편 생황에서의 번뇌로부터 온 변형이다. 제자들에게 전통과 규범을 벗어나지 않도록 아카데믹한 수업지침을 강조하던 교육자로서의 당연성은 자신의 작품 변화에 사실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교육자적인 사고와 하가로서의 강한 실험정신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는 사고의 대립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교육자적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늘 고심하여 왔다. 그렇지만 수 많은 화가들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것」이란 결국 형상성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한 것이었고, 그 범주를 넘어 선다는 것은 어찌보면 황당무계할 정도로 몽상적이고, 불안한 것이어서 엄두도 나지 않았다. 교육자로서의 지성이 이를 용납하지 못할만큼 보수성을 키워 놓았던 것이다.
신종섭은 거듭되는 번뇌와의 싸움에서 과감히 자신의 양식으로 정착시키기로 결심했다. 1986년에 시작된 「붉은산」의 풍경화가 그것이다. 당시 주변의 많은 화가들이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추상적인 추상회화를 답습, 모방,재창조하는 행위가 미술의 흐름을 압도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가뜩이나 교편생활로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느라고 고심하던 그가 이러한 추상회화에 편승하느탸 아니면 평범한 풍경화가로서 자신의 화풍에 머물것이냐 하는 번뇌는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신종섭은 번뇌로부터 실마리를 풀었다. 풍경화와 추상회화를 동시에 수용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절충적인 방법의 선택, 그것은 「풍경화와 색면 컴포지션의 접목」이었다. 풍경화이면서 추상회화이고, 추상회화이면서 풍경화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추상이란 자칫 서양의 것들과 흡사해 지는 모방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 외국인이 보아도 한국의 산이라는 인상을 갖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면 한국의 산은 서정성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산의 기세를 너무 단순화하면 산의 이미지보다는 그야말로 색면 컴포지션에 국한된다는 사실이 또다른 벽이 되었다. 자연은 확실히 예술미의 원형이며, 아름다운 자연이란 문화적 이미지가 탈색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때문에 화가는 즉흥적인 그림을 그려서는 안된다. 즉흥이란 사실성에 치우치고 외상에 묶이기 쉽다. 강한 그림보다는 평범한 그림을 선호했던 고정관념의 시대에서 개성과 독창성을 내세우는 과학의 시대가 도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자는 오늘날의 회화를 놓고 비평자의 입장에서 확실하게 작품을 이해한다고 장담하지는 않는다. 다만 평자는 화가와의 대화를 빌어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많은 관객이 작품을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글을 엮는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두려워 하듯이 평자도 화가의 그림을 비평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이다.
본질적인미, 자연의미, 그리고 자의적 미를 총체적으로 캔버스에 올려..
이제까지 변형의 계기를 집어보면서 신종섭의 회화세계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우선 회화는 미와의 절대 관계에 있다. 그 중에서도 앙드레(Le P re Andre, 1675~1764년) 신부의 저서「미의 엣세이」에 수록된 글귀가 정연하여 재록해 보려고 한다.
'본질적인 미는 인간의 제도로부터, 또는 신의 제도로부터도 독립하고 있는 미이며, 자연의 미는 신의 제도에는 의존하지만 인간의 제도로부터는 독립하는 미이다. 그러나 인공적 혹은 자의적 미는 인간의 미에 의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실로 미를 정의 하는 가장 적절한 말인듯 하다. 그런 점에서 ㅎ ㅘ가는 철학자 이상으로 미에 있어서 본질적인 미, 자연적인 미, 인공적인 미를 모두 추구한다. 왜냐하면 화가의 자연에 대한 동경은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며, 가장 많은 체험을 통해 인식하고, 그리고 캔버스 위에 인공적 형상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미와 모태로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 준다. 그리고 풍경화가에게는 자연은 언제나 스승이다. 미적 형상 창조와 내재된 미를 발견하려는 사색의 원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일반적으로는 자연을 외적 미로서만 느끼고 감탄하게 되지만 화가나 철학자는 그 내재된 미의 가치를 타구하는 만큼 「美」에 의해 충분히 그 정신을 표현하게 ㄷ ㅚㄴ다. 그것이 비록 육체적 수공일지라도 화가는 자연의 미를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표현하는 육체적 욕망을 지녔기 때문이며, 그 정신은 무형의 미에서 유형의 미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신종섭의 회화세계는 이같은 미적 상황으로 볼 때, 몇가지 특성이 보인다. 첫째는 풍경화에 담은 색면 컴코지션이며, 둘째는 자연주의적인 풍경화에서 편상학적 세계로부터 차입된 일관된 변형의 세계이다.
'흔히 산이라곡 하면 여름의 녹색 산이나 눈 내린 겨울의 흰 산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신종섭의 산은 전혀 다른 적색 산이나 청색의 산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그의 정신 세계와 미학적인, 그리고 색채학적인 관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정신세계란 프론티어적인 「새로운 젓의 창조」이며, 미학적 관찰에 의한 현상학적 세계로부터 차입된 「일관된 변형의 세계」이다. 그리고 색채학적인 논제로부터 완성시킨 「정신의 빛」에 의한 시감각의 세계를 ㅍ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회화적 표현이 지각속에서 개시되고 있는 세계의형태화는 조형적 형상과 언어와의 상관 관계에서 비롯된 공통성에 의해 형상성 또는 상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화가들은 산으로 들로 스케치 여행을 한다. 그러나 산이 지닌 내면세계는 사실주의적인 경향만으로는 표현이 어려워진다. 여기에는 '형상을 초월하는 세계에서는 언어적으로 규정이 불가능하지만, 내용이 조형적 형상의 다의성이라고 할 수 있는 긴밀한 의미를 산출하면서 일관된 변형을 만든다. 이것이 「의미의 발생을 변환하는 과정」이다' 라는 메를로 퐁티(M. Merleau Ponty)의 독자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학적 논리는 회화에 있어서는 새로운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추상회화가 시도되면서 많은 화가들은 철학자 이상으로 새로운 회화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실험적 탐구에 몰두했다. 그것이 현상학에서 말하는 형상을 초월하는 일관된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종섭의 풍경화는 이러한 점에서 현대회화의 표현양식 중에서도 독창적인 새로운 방법을 양식화했다고 볼 수 있다. 풍경화와 색면 컴포지션과의 접목이다. 물론 변환은 그 의미에서 변형=왜곡이라고 할 수있으나, 여기에 대해 해석하는 것과 해석되는 것의 관계는 의미를 매개로 할 뿐이다, 말하자면 의미에 대한 구성적인 비의미인 셈이다. 그렇다면 회화에 있어서의 색채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일상생활의 착색감각이란 실재로 하나의 구상에 이르며, 사물의 색을 지각하게 되는 것은 물체가 눈에 들어오는 반사광에 의해 그 성질, 다의성, 현상의 중요함을 인지 하는데 있다. 따라서 실채 색과 인지색은 다른 수 있다.
예를 들면 착색된 벽면에 매우 강렬한 태양 빛이 들어가면 백색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신종섭의 회화에 있어서 그의 강렬한 「정신의 빛」이 캔버스에 들어가면서 그 빛의 광도에 따라 적색 산이 될 수도 있고, 청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색의 지각」설은 신종섭의 회화를 풍경화가로서가 아니라 색채학적인 추상회화로서 입증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일상의 경험적 사실에 있어서의 색의 불변성을 변이하는 것은 회화에 있어서의 일상성을 거부하는 추상이념이다. 따라서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종섭의 회화세계와 논리가 있다면 그것은 일상성에서도 포착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현대인의 무관심과 같은 것이다. 흔희 일어나고 잇는 현상을 체험하면서도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무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서 사물의 가치를 인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 한 것은 무관심보다 관심이며, 무의미보다는 의미에 대한 파악인 것이다.
일예로 「산은 푸르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산에 오르면 산이 푸르다는 느낌은 갖지 못한다.깊은 산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의 나무잎만이 푸르다고 느낄뿐이다. 반사광에 의해 발생하는 원경과 근경에서 작용하는 시감각의 세계이다. 또한 물이 푸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물에 들어가 물을 손바닥에 떠 보면 무색일 뿐이다. 이것은 모두 입사광에 의해 일어나는 시감각의 세계이다. 결론적으로 반사광은 반사각에 비례하고 입사광에 의해 일어나는 시감각의 세계이다. 결론적으로 반사광은 반사각에 비례하고 입사광은 투과하는 광도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신종섭의 붉은 산은 어떠한 색채 현상일까. 바로 「정신의 빛」에 의해 투과된 색채학적 감성과 물질적 색면 컴포지션이 결속된 제3의 색채인 것이다. 얼핏 보기에 그 색은 물리적 색채로서의 화가적 피상성을 지닌 아니면 단순하게 비논리적으로 표현된 색채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물에 투과된 「정신의 빛」에 의한 새로운 색채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신종섭의 색의 특성은 특시 은의 입자에 존재하는 상당히 많은 원자 덩어리의 색채 성질과 같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작품이 적색과 청색조가 짙은 것은 은의 80밀리크론에서의 황색(반사)와 청색(투과광)으로 착색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원자에서 다른 원자로 이동할 때의 색이 변화하는 성질은 마이젠하이머의 「착색 반응과 비교정량」의 기초 이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80미리크론에서의 착색 반응은 청색이 반사성을 지니는데 160미리크론에서는 투과성을 지니는, 그리고 80밀리크론에서의 반사성을 지니는 상반된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착색 현상은 속도와 광도에 따라 그 성질이 다르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실험적으로 우리는 생활 주변에 흔히있는 은제 컵으로 실험할 수 있다. 은제 잔은 실제로 은색일 뿐이다. 그러나 안쪽을 드려다 보변 빛의 반사에 의해 고려청자의 색보다 더 엷고 고운 청색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색채 성질에 있어서의 착색 성향은 신종섭의 캔버스 위에 나타나는 착색 성질과 같은 맥락에서 보았을 때,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데 한 지표가 될 것으로 생각되어 강조 해 둔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더욱 단순화하고 싶었으나 시각적인 언어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워 풍경화와 색면 컴포지션의 접목에서 오는 「아름다운 산」그림들로 남겼다고 한다. 특성만큼이나 독창적인 성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199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