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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백대협의 죽음 이 날 밤 위소보는 손발이 근질근질해서 자기 방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손짓 발짓을 해댔다. 그리고 이튿날 서재에 들렀다가 돌아오게 되 자 총총히 달려나가 보석상에서 하나의 커다란 비취 반지를 샀다. 그리 고 그 가게의 장인으로 하여금 한 비단모자 위에 한 조각의 커다란 백 옥(白玉)을 박게 하고 네 알의 둥글고 맑은 명주(明珠) 구슬을 박게 했 다. 이와 같이 하는 데 벌써 사천 냥이나 되는 은자를 쓰게 되었다. 보 석상에서는 귀한 손님이 궁의 태감인 것을 알고는 조금도 이상하게 여 기지 않았다. 사실 궁안에서는 보석을 사갈 때가 많았으며 쓰는 돈은 그 십 배가 되는 적도 흔히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회춘당 약방으로 달려가게 되었을 때 뭇사람들은 이미 지하실 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북경에서 유명한 네 분의 무사를 초청했으며 함께 가서 보증인이 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 고 그들 한 사람에게 이미 이백 냥의 은자를 사례금으로 주었다는 것이 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남의 돈을 얻게 되면 남이 당할 재난을 없애 준다고 했으니 그 네 분 의 무사는 반드시 우리를 돕지 않으면 않되겠지. 그러나 이백 냥의 은 자라면 사례금으로는 너무 적다. 한 오백 냥 갖다 주는 것이 더 좋겠 다. 그리고 네 분의 무사는 너무 적으니 한 열 여섯 분이 오셨으면 좋 았을걸.) 이때 마언초가 사가지고 온 의복과 신발, 그리고 양말을 내놓아 위소보 로 하여금 옷을 바꿔 입도록 했다. 모든 옷가지들이 화려한 것이었다. 그리고 겉에 걸치는 장포는 화호피(火狐皮)로 안을 댄 것이었다. 그리 고 앞섶과 소 맷자락 밖으로 칠이 빤질빤질 하고 매끄러운 털가죽이 나 오도록 되어있었다. 마언초는 말했다. "이 가죽옷은 그들에게 밤을 새워 줄이도록 했지요. 그래서 세냥 육 전 의 은자를 더 얹어 주었읍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비싸지 않소. 바싸지 않아." 그리고 푸른 비단으로 만들어지 마괘(馬괘)에는 열 알의 단추가 달리도 록 되어 있었는데 모두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 도 그가 준 은자는 여전히 반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위소보는 궁에서 근 일 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따라서 편안한 거실에서 거처하며 좋은 음식을 먹는 한편으로 견식 또한 넓어지게 되 었다. 거기다가 이 반 년 동안 상선감의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백 여 명이라는 태감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기도 했고 해서 우두머리 노 릇을 하는 것에 이제 버릇마저 들게 되었다. 이때 온 몸에 치장을 하고 보니 약간 시골뜨기가 벼락 부자가 된듯한 속기가 엿보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으젓해 보였으며 사뭇 초야의 호걸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엿 보였다. 뭇사람들은 이미 한 대의 교자를 안배하여 문 밖에서 기다리도록 해놓 고 있었다. 그리하여 위소보는 교자에 오르게 되었다. 변장을 하게 된 이후 성안에서 걸어다니다가 궁정의 태감이나 조정의 관원의 눈에 뜨이 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행인은 먼저 동성의 무승표국(武勝표局)으로 가서 네 분의 무사와 합했다. 이 네 분의 무사 가운데 첫번째는 북경 담퇴문(潭腿門) 의 장문인(掌門人)인 노무사 마박인(馬博仁)으로서 청진교(淸眞敎)의 문하제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번째의 사람은 타박상의 명의인 요춘 (姚春)이었다. 서노인이 상처를 입게 된 이후 바로 그에게 치료를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이 사람은 명의였지만 금나수와 단타(短打)에는 또한 일절(一絶)이라고 일컬을 수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세 번재는 호면패왕(虎面覇王)이라고 불리우는 뇌일소(雷一嘯)라는 사 람으로서 이 자는 철포삼(鐵布衫)의 무공으로 크게 우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네번째 사람은 바로 무승표국의 총표국주인 금창(金창) 왕무통(王武通)이었다. 마박인 등 네 사람은 이미 위향주의 나이가 무척 어리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직접 대하고 보니 바로 부자집 도련님과 같은 모 습이라 속으로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각기 진근남의 댐병을 오래 전부터 우러러버던 사람들이라 천지회 총타주의 제자이니 나이가 어리지만 반드시 놀라운 재간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감히 그를 얕보지 못했다. 뭇사람들은 차를 마신 이후 바로 양류(楊柳)골목 안에 살고 있 는 두 백씨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위소보와 마박인 그리고 요춘 세 사람은 교자를 타게 되었고 뇌일소 등은 말을 탔으며 나머지 사람은 걸어서 행동을 같이 했다. 현정도인, 번강 등은 모두 명성을 떨친 인물 이라 왕무통은 말을 빌려 주려고 했으나 현정 등은 남들의 주목을 끌기 쉽다고 굳이 사양을 하였다. 일행은 양류 골목에 접어들어 한 채의 붉은 칠을 한 대문 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언초가 앞으로 나아가 문을 두드리려고 하자 갑자 기 문 안에서 은연중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어 리둥절해졌다. 그러고 보니 대문 밖에는 두개의 하얀 등롱이 걸려 있었 다. 바로 초상이 났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마언초는 가볍게 문고릴 잡 고 두드렸다. 얼마 후 대문이 열리면서 늙은 청지기가 나왔다. 마언초는 이미 준비해 두었던 다섯 장의 명첩(名帖)을 건네 주며 말했다. "무승표국의, 담퇴문,천지회의 몇 분 친구들이 백대협과 백이협을 뵙고 자 찾아왔소이다." 늙은 청지기는 천지회라는 이름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온 얼굴 가득 히 노기를 띠우고서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명첩을 받아 들고는 아무 소 리도 하지 않고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마박인은 나이가 들었지만 성질은 열화와 같았다. 대뜸 참을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 종놈이 꽤나 무례하구나." 위소보는 맞장구를 쳤다. "마 나으리의 말슴이 틀림없소이다." 그는 목왕부의 사람에 대해서 역시 무척 꺼려 하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마박인과 왕무통 등이 자기 편에 서주기를 바랬다. 그래야 만 나중에 손을 쓰게 되었을 때 힘이 될 수 있는 협조자의 도움이 그 만큼 많게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후에야 이십 오륙 세 정도 되는 한 명의 젊은이가 걸어나왔다. 키 가 무척 큰 편이었으며 삼베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바로 상복이 아닌가! 그리고 두 눈은 불그스레해져 있음 눈물자욱도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상 태였다. 그는 나서더니 포권을 하고 말했다. "위향주, 마 나으리 왕 총표국주, 여러분들이 왕림하셨는데도 멀리 마 중나오지 못한 점을 널리 이해하십시요. 불초 백한풍이 인사드립니다." 뭇사람들은 포권을 하고 답례를 했다. 백한훙은 뭇사람들을 대청으로 안내했다. 마박인은 가장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물었다. "백이협이 상복을 걸치고 있는데 댁의 어느 분이 세상을 떠나셨소이 까?" 백한풍은 말했다. "형님이신 한송이 불행히도 돌아가시게 되었읍니다." 마박인은 발을 굴렀다. "애석하군, 애석해! 백씨 쌍목은 목왕부의 영웅이며 호장(虎將)으로서 무림에서는 크게 명성을 드날리고 있으며, 백대협으로 말하면 한창 젊 은 나이인데 어쩌다가 병을 얻어 돌아가시게 되었소?" 이때 뭇사람들은 막 대청에 들어서게 되었고 아직 자리를 잡고 앉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백한풍은 그 말을 듣고 별안간 몸을 돌리더니 두 눈 에 불시를 붙인 듯한 눈빛을 번쩍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마 나으리, 불초는 무림 선배님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예의를 대해 대 접하고 있소이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묻는다는 것은 나늘 비웃는 것이 아니겠소?" 그가 갑자기 노기를 터뜨리자 위소보는 가만 깜짝 놀라 한 걸을 물러서 거 말았다. 마박인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거 참 희안하군. 노부가 모르기 때문에 물은 것인데 어째서 알고 있으 면서도 일부러 묻는다고 하시오? 백이협 형이 돌아가셨으니 설사 마음 속으로 비통해 한다 하더라도 이 늙은이에게 성질을 부릴 수는 없는 일 이 아니겠소?" 백한풍은 차갑게 코웃음쳤다. "앉으시지요." 마박인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앉으라면 앉지 누가 겁낼 줄 아는가." 그리고 위소보를 향해 말했다. "위향주, 자리에 앉도록 하시구려." 위소보는 말했다. "아닙니다. 역시 마 나으리께서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백한풍은 명첩을 보고 찾아온 손님 가운데 천지회 청목당의 향주 위소 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 소년이 바로 위향주이리라고는 짐 작하지 못했던 터라 속으로 의아하고 또한 화가 나기도 했다. 따라서 대뜸 손을 뻗쳐서는 위소보의 왼손 팔을 잡고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가 바로 천지회의 위향주?" 그와 같이 움켜잡은 힌은 엌청나게 세어 위소보는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아! 하는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현정도인은 말했다. "찾아온 손님인데 백이협은 사람을 너무나 무시하는구료." 그리고 손가락을 뻗쳐서는 백한풍의 옆구리를 찌르려고 했다. 백한풍은 왼손을 들어 막으면서 위소보의 손목을 놓고 한 걸을 물러서 며 말했다. "실례했소." 위소보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소매자락을 들어서는 눈물을 닦았다. 백한풍으로서는 정말 뜻밖의 일이었지만 마박이, 왕무통, 그리고 천지 회의 뭇사람들도 놀라고 의아해마지 않았다. 백한풍의 그와 같이 움켜 잡는 수법은 ㄴ카롭기는 했으나 결코 막거나 피할 수 없는 수비는 아니 었다. 그런데 이 위향주는 진근남의 제자인데도 피하기는 커녕 크게 신 음소리를 내고는 눈물가지 흘리니 실로 무림에서는 일대 기이한 사건이 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정, 번강, 마언초 등은 얼굴이 귀밑까지 그반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무척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백한풍이 이때 입을 열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형이 불행히도 천지회의 독수에 죽음을 당했기 때문 에 불초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여......"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뭇사람들은 다투어 물었다. "뭐라구?" "백대협이 천지회의 사람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소?" "그런 일은 절대 없소." 백한풍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들이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 형님은 죽지 않았단 말씀이오? 이리 오시오." 그리고 손을 뻗쳐 다시 위소보의 왼팔을 잡으려고 했다. 이번에는 현정 도인과 번강이 방비를 하고 있었다. 백한풍이 오른 팔을 막 들자마자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앞가슴 쪽을 공겨했고 한 사람은 뒷등을 노 리고서 동시에 손을 썼다. 백한풍은 즉시 비스듬히 걸음을 옮기며 좌우 두 손을 뻗쳐냈다. 현정은 왼손을 쳐들고 오른손을 다시 격추했으며 번 강은 어느덧 백한풍과 일장을 교환하게 되었다. 백한풍은 즉시 초식을 바꾸어 오히려 현정의 목을 찌르려고 들었다. 이에 현정은 몸을 옆으로 날려 피해 버리고 말았다. 백한풍은 날카롭게 외쳤다. "우리 형님이 이미 당신네들의 손에 죽었으니 나도 살고 싶지 않다. 천 지외의 망나니들아! 함께 덤벼 봐라!" 명의 요춘이 두 손을 들어 막으며 말했다. "잠깐, 손을 멈추시오. 이 가운데는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같소 . 백 이협은 말끝마다 백대협이 천지회의 사람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사실이 어떤지 그 설명을 들어보기나 합시다." 백한풍이 말했다. "당신네들은 이리 와 보시오." 그리고는 성큼성큼 내당으로 걸어갔다. 뭇사람들은 자기 쪽의 사람들이 많으니 그에게 어떤 음모나 간계가 있 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판단 아래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막 뜨락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후청(後廳)이었다. 휘장 뒷쪽에는 하나의 관이 놓여 있고 죽은 사람이 관 속에 누어 있었는데 반쪽 머리와 한쌍의 발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백한풍이 영당의 휘장을 들치며 큰 소릴고 부르짖었다. "형님은 돌아가셨어도 눈을 감지 못했으니 이 형제가 어찌 됐든 천지회 의 망나니들은 몇 사람이라도 죽여서 형님의 원한을 갚아 드리리이다." 그의 목이 메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울고 있었던 것 같았 다. 위소보는 죽은 사람을 보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사람은 바로 강소성 북쪽 길가 조그만 반점에서 보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 은 젓가락으로 오삼계의 부하들을 공격하여 꼼짝 못하게 하지 않았던 가! 무공이 고강한데 뜻밖에 이곳에 죽어 있다니 그로서는 놀라운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한 무서운 인물이 사라졌다는 생 각에 한편으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마박인, 요춘, 뇌일소, 왕무통 네 사람은 가까이 다가갔다. 왕무통은 백한송과 한번 만나 본 적이 있는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백대협이 정말 이 세상을 떠났구려. 애석하오" 요춘은 매우 상심한 듯 손을 뻗쳐서는 죽은 사람의 완맥을 짚어 보았 다. 백한풍이 냉소했다. "당신이 만약 우리 형님을 되살릴 수 있다면 나는...... 나는 당신에게 일만 이천번의 큰절이라도 올릴 수 있소." 요춘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이협, 사람은 한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니 너무 슬퍼 하지 마오. 백대협을 죽게 한 사람이 정말 천지회의 사람이란 말이요? 백이협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오?" 백한풍은 부르짖었다. "내가...... 내가 잘못 안단 말이오?" 뭇사람들은 그가 너무나 슬픈 나머지 평소의 침착한 태도나 예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로 미루어 그들 형제의 정이 얼마나 돈독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번강은 노기가 가라앉 은 듯 생각했다. (그의 형이 죽었으니 사정 없이 손을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백한풍은 이때 두 손으로 허리를 잡더니 영당 앞에 서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형님을 해쳐 죽게 한 사람은 평소 천교에서 고약을 파는 서가라 는 늙은 도적이외다. 이 도적의 이름은 서천천(徐天川)이라고 하며 별 호는 팔비원후(八臂猿후)라는 사람으로서 천지회 청목당에서 직책이 있 는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도 당신네들은 잡아떼겠소?" 번강과 현정 등 모든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양류 골목으로 찾아온 것은 백씨 형제에게 어째서 그들이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는가를 캐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백씨 형제 가운에 형인 백한송은 이미 서천천의 손 아래 죽고 말았으니 참말로 뜻밖이 아닐 수 없었다. 번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백노이, 서천천 서형님께서는 우리 천지회의 형제임에는 틀림이 없소. 하지만 그는...... 그는...... 아...... !" 백한풍은 노해 부르짖었다. "서가라는 늙은 도적이 죽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설사 그가 죽었다 하 더라도 개 돼지만도 못한 늙은 도적으로서는 우리 형님의 목숨을 보상 할 만한 자격도 없소." 번강이 역시 노해 말했다. "말을 좀 점잖게 할 수가 없겠소? 그러고서 어찌 무림의 호걸이라 할 수 있소. 그대의 말대로 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백한풍은 부르짖었다. "난...... 나도 모르겠소. 나는 당신네들 천지회라는 한 떼의 개도적들 을 모두 박살내고 말 것이오. 그리고 나는 당신들과 함께 죽겠소. 모두 함께 죽는 것이 깨끗할 것이오."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죽은 사람의 곁에서 한 자루의 강철칼을 뽑아 들 고는 몸을 날리며 마치 미친 호랑이처럼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데 그 칼에서는 휙휙하는 바람이 일었다. 천지회의 번강과 현정 등은 다투어 가지고 있던 무기를 뽑아들고서 적 을 맞아 싸울 준비를 했다. 위소보는 재빨리 마언초의 등 뒤로 가 숨었 다. 그때 별안간 호통이 터져나왔다. "손을 쓰지 마시오!" 그 소리는 모든 사람의 귀가 윙윙거릴 정도로 울렸다. 그리고보니 호면 패왕 뇌일소가 두 손을 들고 천지회의 모든 사람들 앞을 가로막고서는 백한풍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백이협,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면 나부터 죽이시오." 이 사람의 성명은 정말 음성이나 태도에 잘 어울렸다. 그 호통소리가 그야말로 뇌성이 치는 듯한 위엄이 서려 있는 것이 아닌가! 백한풍은 형을 잃은 나머지 어느 정도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태였다. 한데 그와 같은 호통소리를 듣게 되자 머리가 약간 맑아진 듯 말했다. "내가 왜 당신을 죽이겠소. 우리 형님을 당신이 죽인 것도 아닌데 말이 오." 뇌일소는 말했다. "이 천지회의 친구들도 당신 형님을 죽인 사람이 아니오. 더군다나 천 하 천지회의 무리는 적어도 이삼 십 만이나 되는데 그대혼자서 모조리 죽일 수 있을 것 같소?" 백한풍은 어리둥절했으나 곧 큰 소리로 맞섰다. "한 사람을 죽이면 한 사람으로 만족하겠죠. 그리고 한 쌍을 죽이면 한 쌍으로 만족할 수 있소."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문밖에서 급히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마치 십여 필의 말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 같았다. 요춘은 말했다. "아무래도 관병인 것 같소. 모두들 무기를 거두시오." 번강과 현정 등은 뇌일소가 그들의 앞을 막고 있고 백한풍이 달려들어 사람을 해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는 모두 무기를 거두어 들였다. 백한풍은 큰 소리로 말했다. "설사 황제 폐하께서 온다 하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소."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골목 안으로 달려들어 오더니 대문 앞에서 우뚝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 밖ㅇ;ㅔ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 둘째 아우, 나일세." 사람의 그림자가 흔들하더니 한 사람이 담을 뛰어넘어서는 달려들어왔 다. 이 사람의 나이가 사십여 세 쯤 되었으며 매우 늘름한 기상을 하고 있ㅇ는데 갑자기 안색이 삭 변하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과연...... 과연 백 큰 아우가 ...... 백 큰 아우가......!" 백한풍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집어던지고는 마중나가며 부르짖었다. "소(蘇) 네째형, 우리 형님이..... 우리 형님이......" 그는 그만 말을 잇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했다. (이 사람은 혹시 목왕부의 성수거사(聖手居士) 소강(蘇岡)이 아닐까?) 이때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십여 명이 몰려들어왔다. 남자도 있었고 여 자도 있었는데 그들은 시체 앞에 이르더니 그 가운데 몇 여자가 대성통 곡을 하기 시작했다. 한 젊은 부인은 백한송의 처 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백한풍의 처였다. 번강과 현정 등은 여간 겸연쩍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그저 죽을둥 살 둥 울부짖는 것을 보고 더 머뭇거렸다가는 그들이 울음을 그쳤을 때에 는 설사 손을 써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호되게 욕을 얻어 먹을 것 같 았다. 위소보는 처음 백한풍에게 손목을 한 번 세차게 움켜잡힌 이후 그 통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본래 그는 자기들 사람 의 수가 많은 점을 생각하고 현정과 번강 등에게 백한풍을 사로잡게 하 고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그의 엉덩이를 칠팔 번은 걷어차 화풀이를 해 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대방의 수가 점점 불어 나는지라 싸우게 된다면 득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따라서 그는 가슴 을 두근거리며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현정도인이 잇 따라 눈짓을 하는 것이 뺑소니를 치자는 것이 아닌가! 바로 자기의 마 음에 꼭 맞다고 생각하고 즉시 몸을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모두들 가서 지전과 양초라도 사들고 와서 다시 죽은 사람에게 큰절이 나 하도록 합시다." 백한풍은 부르짖었다. "도망치겠다고? 그렇게 쉽진 않을걸?" 그리고 달려들어서는 맹렬히 오른손을 휘들러 번강의 뒷등을 후려치려 고 했다. 번강은 노해 부르짖었다. "누가 도망친다는 것이오?" 그리고는 몸을 돌려서는 왼손을 들어 막았을 뿐 반격하지는 않았다. 이 렇게 되자 현정 등 뭇사람들은 모두 다 그자리에 서있게 되었다. 위소보는 어느덧 문 입구에 도달ㄷ해 있었고 한 발을 문밖으로 내 딛고 있던 참이었다. 이때 소가라는 남자가 입을 열고 물었다. "백 둘째 아우, 이 몇 분은 누구이신가? 불초가 알아보지 못함을 용서 하시오." 백한풍은 말했다. "그들은 천지회의 개새끼들이외다. 우리 형님은 ......우리 형님은 바 로 그들에게 해침을 당해 죽었소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던 사람이 모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챙그랑! 소리가 잇따라 일어나는 가운데 무기가 어둠 속에서 싸 늘한 광채를 발했다. 대뜸 그들은 손님들을 에워싸며 마박인과 요춘, 그리고 뇌일소와 왕무통 등 세 사람까지도 한 복판에 두고 에워싸게 되 었다. 왕무통은 소리내어 껄걸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마형, 뇌형제, 요의원, 우리가 언제 천지회에 가입했나요. 우 리 몇 사람의 덕행으로는 천지회의 친구들을 위해 신발을들 자격도 없 을 것이외다." 그러자 소가라는 중년의 사내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몇 분은 천지회의 사람들이 아닌가 보죠? 이분 요의원께서는 아마도 함자가 춘자시겠죠. 불초는 소강이라 합니다. 백씨집 큰 아우가 불행히 도 돌아갔다는 소문을 듣고 완평(宛平)에서 달려왔으며 너무나 슬퍼서 미처 가르침을 받지 못했군요. 정말 실례가 많았읍니다." 그리고 그는 뭇사람들에게 읍으로써 예를 했다. 왕무통은 포권을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역시 성수거사께서는 명불허전이군요. 정말 견 식이 높고 풍모가 엿보이는 영웅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역시 여러 사람을 일일이 소개했는데 첫번째로 위소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바로 천지회의 청목당 향주이신 위향주이십니다." 소강은 천지회가 10당으로 나누어지며 매 한 당의 향주가 모두 몸에 절 예를 지니고 있는 영웅호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ㅗ다. 그러나 이 위향 주는 뜻밖에도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부자집 도련님 같지 않은가! 그는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얼궁에는 내색하지 않고 포권 을 했다. "오래 전부터 명성은 들었소이다." 위소보는 쳇! 하고 웃으며 포구너으로 반례를 하고서는 문가에서 되돌 아서며 물었다. "오래 전부터 무엇을 들었죠?" 소강은 어리둥절해졌다. "불초는 오래전부터 천지회의 십당 향주가 하나같이 영웅호걸이라는 것 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소이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알고 보니 그랬었구려!" 소강은 그의 언행이 경박한 것을 보고 속으로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즉시 왕무통에 의해 나머지 사람들이 소개외었다. 소강은 자기와 함께 온 사람들을 천지회의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그 가운데두 사람은 그의 사제였다. 그리고 세 사람은 백씨 형제와 사형제 였다. 그런가 하면 나 머지 몇 사람은소강의 제자이기도 했다. 백한송의 부인은 남편의 시체 위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 있었고 백한풍의 부인은 한편으론 울면서 한편으로는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몇 여자들은 이쪽으로 와 인 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때 요춘은 입을 열었다. "백이협, 도대체 백대협이 무슨 일로 천지회와 다투게 되었는지 백이협 이 이야기를 해 보시구려!" 그리고 기침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운남 목왕부는 무림에서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읍니다. 그리고 천지회의 규칙은 언제나 지극히 엄해서 모두 다 억지를 쓰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무어라고 해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지 않겠읍니까? 오늘의 이 일은 결코 싸운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 아 닙니다. 이곳에 있는 마노사와 뇌형제, 그리고 왕 총표국주 및 불초등 은 쌍방과 설사 교분이 있는 사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오래 전부터 쌍 방의 명성을 흠모하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소이다. 백이협, 그대는 우 리의 대단하지 않은 체면이나마 생각하셔서 그 동안의 연유를 말씀해 주시는 것이 어떻겟습니까?" 왕무통은 말했다. "솔직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지만 천지회의 친구들은 정말 백대협이 작고하신 줄을 모르고 있었소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들이 찾아와 스스로 창피당하는 것을 자초하겠소이까?" 소강은 말했다. "그렇다면 위향주와 뭇사람들이 이곳에 온 것은 또 무엇 때문이오?" 왕무통은 말했다. "우리는 솔직히 말씀드릴 수 있읍니다. 천지회의 친구들이 그들의 서천 천 서형이 목왕부의 친구에게 얻어맞아 중상을 입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늙은이들도 청해서는 이곳으로 와 그 연유를 묻고자 했던 것입니다." 소강은 싸늘히 말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죄를 따지러 왔구려." 왕무통은 말했다. "그 말은 감당할 수 없소이다. 우리 몇 사람은 강호에서 밥을 빌어먹고 있는 처지이며 모두 다 친구들이 체면을 세워 주는 덕택으로 살아가는 형편이 아니겠소? 시비곡절은 자연히 공론이 있기 마련이며 그 누구도 양심을 속이고서 터무이없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오." 소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왕 총표국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청으로 가셔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죠." 뭇사람들은 다시 대청으로 나갔다. 소강은 사제와 제자들에게 무기를 거두라고 말했다. 백한풍은 손에 들고 있는 강철 칼을 좀 처럼 손에서 떼어내려 하지 않았다. 소강은 뭇사람들에게 자리를 권하여 앉은 후 입 을 열었다. "백 둘째 아우, 당시의 실재 상황이 어떠했는지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 를 해 보게나." 백한풍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저께 오후였죠. ......" 그 한마디를 말하게 되었을 때 불현듯 울화가 치미는 듯 손에 들고 있 던 강철 칼을 한 번 휘둘렀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움츠렸 다. 백한풍은 자기의 그와 같은 행동이 너무나 거칠고 물하다고 생각되 어 칼을 힘주어 땅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네모난 벽 돌이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이어 그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저께 오후 저와 형님은 천교에 있는 한 술집에서 슬을 마시고 있었 읍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의 관원이 네 명의 장정을 데리고 들어 왔소이다. 그런데 그 네명의 장정은 꼴 사납게 거드럼을 피웠으며 술고 음식을 시키는 데 바로 운남의 말을 했죠." 소강은 '아' 하며 일성을 발했다. 백한풍은 말했다. "저와 형님으 그들의 말투를 듣고는 주의를 하게 되었읍니다." 왕무통과 번강 등은 목왕부의 사람들이 대대로 운남성에 살고 있었으며 소강과 백한풍 등은 바로 운남성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북경성에서 고향 말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자 자연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 다. 백한풍은 계쏙해서 말했다. "형님은 한동안 듣더니 자리를 격하고서 몇 마디 말을 받았소이다. 헌 데 그 관원은 우리 역시 운남 사람인 것을 보고는 자기네 들 자리로 오 라고 했지요. 저와 형님은 고향을 떠난지 오래 되었고 고향의 소식도 알고 싶던 차에 그 관원이 막 운남에서 온 것 같아 자리를 옮겨 갔읍니 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 관원은 노일봉(盧一峯)이라는 사 람으로서 원래는 오삼계의 위임을 받고 곡정현(曲靖懸)의 지현(知懸)이 된 사람이었읍니다. 그런데 그는 본래 운남의 대리(大理)사람이었읍니 다. 규칙대로 한다면 운남 사람은 본래 운남성에서 지방으 벼슬아치는 될 수가 없었죠. 헌데 노일보은 바로 평서와이 위임한 것이라 그런 문 제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투였읍니다." 번강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욕을 했다. "제기랄, 매국노 오삼계가 위임한 탐관오리라면 거드름을 피울 것도 없 잖아." 백한풍은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 분...... 번형의 마씀이 옳소이다. 당시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이 다. 그러나 우리형님은 고향의 사정을 듣기 위해 오해려 그를 몇 마디 추켜올려 주게 되었죠. 그런데 그 벼슬아치는 더둑더 위기양양해서는 오삼계가 파견하는 벼슬아치들을 서선(西選)이라고 한다고 했으니 그 뜻은 바로 형서와이 선택했다는 뜻이었죠 운남성 전체의 크고 작은 관 원들은 모두가 오삼계가 임명을 한 것이며 바로 사천성과 광서성, 그리 고 귀주성도 서선으로 된 벼슬아치들이 황제가 임명한 벼슬아치들 보다 더욱 기세가 등등한 편이라는 것이었죠." 소강은 그의 말을 듣고 약간 울화가 치민다는 듯 이어서 설명을 했다. "만약 빈 자리가 나게 되면 조정에서도 임명하게 되고 오삼계도 임명하 게 되죠. 그런데 임명되는 사람 가운데 먼저 임지에 도착하는 사람이 바로 그 곳의 관원들 가운데 먼저 한 자리가 비게 될때면 자연히 곤명 에서 더 일찍 알게 되고 또 곤명에서 파견한 사람이 빠르게 되죠. 그렇 기 때문에 조정에서 임명하는 벼슬아치들은 언제나 서선의 벼슬아치들 보다 한 걸음 늦곤하죠." 백한풍은 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 벼슬아치는 평서왕이 조정을 위해 큰 공을 세워 청나라가 천하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특별히 오삼계의 체면을 세워 준다고 말했읍니다. 그리고 오삼계가 어떤 일이고 간에 상주하게 되면 한 번도 발려된 일이 없다고 했읍니다." 왕무통은 이어받아 말했다. "그 벼슬아치의 말은 사실이긴 합니다. 형제도 서남(西南) 각성으로 표 화물을 운송하면서 친히 목격한 바가 있는데 운남성이 나 귀주성 일대 에서는 모두 다 오삼계만 있다고 알 뿐 황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읍니 다." 백하풍은 말했다. "그런데 노일봉은 지현이 된 사람이라면 모두 다 먼저 경성으로 와서는 황제에게 배알을 해야 하며 황제가 친히 벼슬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조 저ㅏ의 규칙이라고 말을 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북경으로 와서 바로 호아제를 뵙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읍니다. 그리고 그는 평서왕 이 자기를 임명한 이상 경성으로 와서 황제를 배알하는 것도 그저 관례 에 따르는 공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읍니다. 그리햐여 저의 형님은 말했죠. '노대인께서 곡정에서 벼슬을 하신다면 본성의 사람이 본성의 벼슬아치가 되는 셈이니 그야말로 더욱더 고향사람들에게 복을 만드는 것이겠구려.' 그러자 노일봉은 소리내어 걸걸 웃었죠. '하하하, 그야 물론이죠,' 그런데 별안간 옆에 다른 사람이 불숙 입을 열었읍니다. ' 이 늙은...... 이 늙은 노적은...... 나와는 그야말로 원한이......!'"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온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 다. 소강은 말했다. "팔비원후 서천천이 말한 것인가?" 백한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바로......" 다급하고 울분이 치민 끝에 목이 메는 듯 말을 하지 못했다.한참 후에 야 그는 입을 열었다. "바로 그 노적이었읍니다. 그는 창 옆의 조그만 탁자 가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죠. '본성 사람이 본성의 벼슬아치가 된 다면 더욱더 수탈하기가 편리하겠군.' 그 도적은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데 할일없이 끼어드는 것이었죠." 현정은 냉행히 그 말을 받았다. "백이협, 서 세째형의 그 한 마디는 잘못 말한 것이 틀림없지 않소?" 백한풍은 싸늘히 코웃음치더니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 한 마디 말은 잘못되지 않았소. 또 내가 언제 잘못 되었다고 말했 소? 그러나...... 그러나...... 누가 쓸데없이 그보고 간섭하라고 했던 가요? 그가 만약에 그처럼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았다면 어찌 이토록 많은 일이 일어났겠소." 현정은 그가 화가 나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을 보고는 더 말을 잇지 않 았다. 백한풍은 계속해서 말했다. "노일봉은 그와 같은 말을 듣더니 발끈해서는 탁자를 때리며 몸을 돌려 서 바라보았죠. 그런데 그 나그네는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이였으며 초 라한 모습이었는데 탁자 위에는 약상자가 놓여 있었고 의자 곁에는 한 폭의 고약을 판다는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이 바로 약을 파는 늙은이였소 이다. 그리하여 노일봉은 호통을 내질르던군요. '이 늙어 죽지 못한 것 아!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그러자 그가 데리고 온 네 명의 장정이 다투어 달려가서는 그 나그네의 탁자를 치며 욕을 했고 한 명의 장정은 그의 옷자락을 잡았죠. 나 역시 눈이 멀어서 그 나그네 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가 일시 의분에 비웃는 말을 했 으나 크게 당할 것이 두려워 짐짓 나가서 말리는 척하면서 네 명의 장 정들을 밀어젖혔죠." 현정은 칭찬의 말을 했다. "과연 백이협은 정말 인정이 많으시구려. 그것은 정말 영웅적인 행위로 소이다." 그는 백한송은 이미 죽었는 데 반하여 서천천은 중상을 입었지만은 십 중팔구 죽지 않을 것이니까 자기네들 쪽에서 득을 본 셈이라고 생각했 다. 따라서 이 일에 있어서는 쌍방이 좋은 말로 해결을 지어야 하니까 입으로 몇 마디 백한풍을 추켜세움으로써 그의 화를 가라앉히자는 수작 이었다. 그런데 백한풍은 그의 그와 같은 수작에 넘어가지 않고 그를 노려보더 니 말했다. "영웅은 무슨 영웅이요? 나는 못난 놈이외다. 눈이 있어도 그 나그네가 음흉하고 악랄한 것을 몰라보고 그저 좋은 사람이거니 하고 생각했으니 말이오. 그런데 그 노일봉은 벼슬아치의 거드름을 피우며 큰 욕을 했 소.그야말로 역적이라면서 경성에는 불안한 백성이 너무 많아 반드시 무겁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했죠." 번강은 입을 열었다. "그 관원은 그야말로 오삼게의 세력을 믿고서 운남성에서 백성들을 압 박한 것도 부족하여 북경성까지 와서는 사람을 못살게 굴려고 하는군." 백한풍은 말했다.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지요. 그때 그 벼슬아치는 잇따라 호통을 내지르며 장정들에게 그 서가 노적을 묶어서 관가에 보 내 사십 대의 곤장을 맞히고는 칼을 씌워서 뭇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 고 했소. 그러나 그 노적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죠. '나으리 그렇게 큰소리를 치게 되면 힘에 겹지 않나요? 신경통이 재발할지도 모르니 제 가 한 자으이 고약을 붙여 드리죠.' 그러면서 그는 약상자에서 고약을 꺼내더니 두 손바닥 사이에 끼웠죠. 귿이어 접혀져있던 고약이 펴지게 되었소이다. 나는 처음으로 그 노적이 흉악하게 나오는 장정들을 두려 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의심쩍게 생각했는데 그가 고약을 펼치 는 수법을 보고는 형과 한 번 눈길을 마주치게 되었고 어느덧 알아차리 게 되었죠. 고약 중간의 약은 서로 엉켜 있어서 불에 쬐어야만이 갈라 놓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는 두 손바닥 사이에 잠시 끼우는 동안 내력으로 고약을 부드럽게 한 것이니 그 공력이야말로 대단한 것이죠. 그가 고약을 돌리게 되었을 때 고약은 김을 무럭무럭 내놓고 있었죠. 그 노일봉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연신 장정들에게 그 노적을 잡으라 고 다그쳤죠. 그제서야 나는 더 그 벼슬아치의 주구들을 막지 않고 그 들이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꼴을 보자며 내버려 두었소. 한 명의 장 정은 내가 비껴서는 것을 보고 즉시 노적에게 달려들었소. 그러자 그 노적은 웃으며 말했소. '그대도 고약이 필요하시오?' 그러면서 그는 그 고약을 장정의 손안에 놓았죠. 그러자 그 장정은 욕을 해댔소. '이 늙 은 망나니야 무슨 수작이야!' 그러자 노적은 그의 손을 한 번 밀었읍니 다. 그순간 그 장정은 몸이 휘청하며 뒤로 물러나게 됐고 철썩하는 소 리와 함께 장정의 손에 들렸던 고약이 바로 노일봉이라는 탐관의 입에 가 척 달라붙는 것이었소." 위소보는 거기까지 듣게 되자 더 참을 수 없어서 '하하!' 하는 웃음 터 뜨려 내며 손뼉을 치면서 좋다는 소리를 했다. 백한풍은 차갑게 코읏음 치더니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더 웃지 못했다. 소강은 물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 백한풍은 말했다. "그 탐관은 주둥이가 고약으로 틀어막히게 되자 재빨리 떼어 내려고 했 죠. 그러나 그 노적은 네 명의 장정을 밀면서 말했소. '당신네 나으리 나 돌봐 주시오.' 그런데 바로 이때 철썩철썩하는 소리가 잇따라 울려 퍼지게 되었죠. 네 명의 장정은 서로 다투어서 너 일장 내 일장 하는 식으로 그 벼슬아치의 따귀를 갈기는 것이었소. 원래 그 노적은 네 명 의 장정의 손을 물리치면서 교묘하게 내력을 운용하여 네 사람의 손이 그 탐관오리를 치게 만든 것이었소. 삽시간에 그 탐관의 양쪽 뺨은 그 만 불그레하니 부어오르게 되었죠." 위소보는 다시 하하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감히 백한풍을 쳐 다 볼 수 없었다. 소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서노형의 별명이 팔비원후라고 하는 만큼 금나수법이나 잔재간은 그야말로 무림에서 일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 과연 명불허전이로 군." 그는 백한송이 서천천의 손 아래 죽었으니 그 늙은이의 무공이 자연 무 척 고강하리라고 추켜줌으로써 백씨쌍웅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덜 느끼 도록 할한 것이었다. 백한풍은 말했다. "저와 형님은 속으로 매우 우스꽝스럽게 그 광경으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 그 탐관은 이미 뺨을 맞아 피를 흘리게 되었고 주루(술집)의 적 잖은 사람들은 들러서서 구경을 하게 되었져. 이 때 그 노적은 큰 소리 로 부르짖었소. '때리면 안돼요. 때리면 안 돼. 나리를 때려서는 안 돼 요. 당신네들은 정말 당돌한 사림들이군. 감히 아랫 사람으로서 윗 사 람을 범하다니 어떻게 나리들 대릴 수 있단 말이오?" 그러면서 그는 네 명의 장정 뒤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는데 그 모 양은 정말 한 마리의 커다란 원숭이였지요. 그런데 그는 그렇게 움직이 면서 손을 뻗쳐 장정들의 손과 발을 움직이게 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은 장정들의 손과 발을 피하는 것 같아서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그가 수작 을 부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소. 그러다가 그 탐관이 얻어맞고 기절하여 땅바닥에 쓰러질 때서야 손을 멈추고서는 자기자리로 돌아가 앉았소. 네 명의 장정은 허깨비에 흘렸지 않나 생각하는 눈치였으며 어 떻게 하여 자기네들의 나리를 때리게 되었는지 까맣게 모르는 눈치였 소. 그런데 그들의 손바닥은 모두 피로 물들어졌으니 틀림없는 사실인 지라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더니 그 탐관을 부축하고서는 그 주루를 나가게 되었소. 번강은 말했다. "통쾌하군. 통쾌해. 오삼계의 주구라면 응당 그렇게 다스려야지 서 세 째형이 탐관을 두들겨 팬 것은 그야말로 천하 백성의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어 준 셈이었군. 백이협, 그대는 어찌하여 그때 서 세째형을 도 와서 몇 대 대리지 않았소?" 백한풍은 대뜸 노기가 다시 끓어 오르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노적은 자기의 재간을 뽐내며 사람을 치고 있었는데 내가 어찌해서 그 를 도와야 한단 말이오? 그가 사람을 치고 있는 것이지 그가 얻어맞고 있는 것은 아니었단 말이오." 현정은 말했다. "백이협의 말씀이 옳소. 처음은 서 세째형의 몸에 무공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서 그 탐관의 장정드이 손찌검하려는 것을 막지 않았소?" 백한풍은 싸늘히 코읏음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흥! 그 탐관과 장정이 떤나간 이후 형님은 주루의 주인을 불러와 개진 그릇과 탁자 그리고 의자 값을 모조리 형님이 물어 주겠다고 했으며 그 노적의 술값도 우리 앞으로 달아 두라고 했죠. 그러자 그 노적은 웃으 면서 고맙다고 했소. 형님은 그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자고 했소. 그러 자 그 노적은 나직이 말하는 것이었소. '오래전부터 송풍 두 형제분의 영명을 흠모해 왔읍니다. 이렇게 만나뵈니 정발 반갑소이다.' 저와 형 님은 깜작놀랐소. 그리고 속으로 그 노적이 벌써 우리의 내력을 알고 있ㄴ은데 우리드은 그를 모르고 있으니 야단이라고 생각했소. 다라서 형님은 말했소. '정말 부끄럽습니다. 실롓하지만 노인장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십니까?' 그 노적은 웃으며 말했소. '불초는 서천천이라 합니 다. 일시 설질을 누르지 못하고 두 형제분들 앞에서 대단치 않은 수법 을 보였으니 웃지나 마십시오.' 그때도 우리들은 여전히 서천천이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모르고 있었고. 다만 그가 탐관오리를 구타하는 것을 보고 자연 우리와는 한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여겼소. 사실 구 탐관을 그가 그토록 때리지 않았더라도 후에 우리 형제 두 사람이 실컷 패주었 을겁니다. 우리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며 한담을 나누게 되었고 퍽 뜻이 맞았읍니다. 그러나 주루에서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없어 그를 이곳으로 청해 와서는 식사를 하게 되었소." 번강은 아 ! 하고 말했다. "원래 서 세째형은 이곳까지 왔었군. 그렇다면 이곳에서 손을 쓰게 된 것이오?" 백한풍은 말했다. "누가 이곳에서 손을 썼다고 했소? 우리 집에서 우리가 어찌 손님과 손 을 쓴다는 말이오?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겠소?" 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씨 형제는 의협심이 뛰어난 분이니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오." 백한풍은 그가 잇따라 자기를 칭찬하는 말을 하자 끝내 현정을 향해 사 의를 표하고는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노적을 이곳으로 모시고 공손히 대접하며 그가 어ㅉ게 우리 형제를 아느냐고 묻게 되었소. 그제서야 그는 모든 것을 속이지 않고 자기는 천지회의 사람이 며 우리 형제가 북경에 오게 되었을 때 그들 천지회에서는 이미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우리 형제와 친구로 사귀고자 했다는 말을 털어 놓았소. 그가 주루에서 탐관 을 구타한 것은 첫째 오삼계를 중오했고, 둘째로는 우리 형제와 사귀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소. 그 노적은 정말 언변이 좋아서 우리 형제들로 하여금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도록 만들었소. 그리고 그 후 청 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되찾자는 일에 대해서 세 사람, 아니 두 사 람과 한 마리의 개는 더둑더 의기투합하게 되었소." 위소보는 그 말을 받았다. "두 사람과 한 마리의 개가 말을 할수록 의기투합했니 그야말로 희한한 일이군." 뭇사람은 우스웠으나 백한풍의 얼굴을 봐서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백한풍은 크게 노해 부르짖었다. "네 녀석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번강은 말했다. "백이협, 이 위향주라는 분은 나이가 젊지마는 우리 청목당의 향주이외 다. 그리고 우리 아랫 위 사람들은 모두 그를 매우 존경하고 있소." 백한풍은 말했다. "향주가 어떻다는 말이오?" 소강은 화제를 돌렸다. "우리 백 형제는 형이 작고한 데 대하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말이 약 간 지나치게 되는 점을 여러분들은 너무 개의치 마시구려. 위향주도 양 해하시구려." 그는 천지회의 향주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신분인데 백한풍이 그저 녀석 이라고 칭한 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백한풍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한번 깨우쳐주자 대뜸 모든 것을 깨닫고 는 다시 위소보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후 우리 세사람은...." 위소보는 그 말에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두사람과 한 마리의 개이지요." 백한풍은 불끈 호통쳤다. "너는...너는..." 그러나 끝내 참는 듯 길게 숨을 내쉬더니 다음 말을 이어갔다. "모두 청나라를 무찌르고 명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 자 자연 오랑캐를 모조리 죽이게 된 이후에는 홍무황제의 자손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데까지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지요. 이때 우리형님은 말했죠. '황상께서는 면전(緬甸)에서 돌아가셨을 때 한분의 나이 어린 태자를 남겨 두셨는데 그는 퍽이나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난 영주(英主) 이지요. 지금은 깊은 산속에서 은거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노적은 그말을 반박하고 나섰소. '진짜 천자에 오르실 분은 지금은 대만에 계 시오' 하면서 말이오." 백한풍이 서천천이 한 말을 인용하게 되자 소강, 요춘, 왕무통등은 원 래 쌍방이 다투게 된 것은 계왕을 옹호하느냐 아니면 당왕을 옹호하느 냐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명나라의 숭정황제가 매산(煤山)에서 목매달아 죽은 이후 청나라 군사가 중원으로 들어서게 되었을 때 명나라의 종실(宗室)에서는 복왕, 당왕, 계왕, 노왕을 다투 어 내세워 각처에서 황제라 일컫게 되었는 데 그때만 하더라도 서로 분 쟁이 잇따르게 되었었다. 그런데 각왕이 죽은 후에도 그 아래에 남게 된 신하들은 여전히 서로 상대방을 경계하고 곱게 보지 않는 터였다. 백한풍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때 나는 노적의 말을 듣고 물었죠. '우리의 나이 어린 황자(皇子) 께서 언제 대만으로 가셨소이까?' 그러자 노적은 말했죠. '내가 말하는 것은 융무천자(隆武天子)소황자이지 계왕의 자손이 아니외다.' 형님은 말했소. '서 노인장이 영웅호걸인데 대해서 우리 형제들은 탄복했소이 다. 하지만 천하대사에 있어서는 어르신의 식견이 떨어지는 구려. 숭정 천자가 붕어하신 이후 복왕이 스스로 제위에 오르게 되었소이다. 그런 데 복왕이 청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혀 죽게 되고 당왕 역시 불행하게도 순국(殉國)하게 되어 우리 영력(永曆)천자가 천하의 군주가 된 것이오. 따라서 영력천자가 순국하게 된 이후 자연히 그 승상의 자손이 대통을 이어야 되지 않겠소이까?' 하고 말이요." 융무는 당왕의 연호이고 영력은 계왕의 연호였다. 그들은 당왕과 계왕 의 옛 신하들 로서 주군에 대하여 모두 다 연호를 사용해서 칭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번강은 여기까지 듣게 되자 입을 열고 말했다. "백이협, 한마디 하겠는데 너무 탓하지 마시오. 융무천자가 순국하게 된 이후 형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동생이 뒤를 잇는 것 아니요. 그래 서 승상의 친형제 소무천자(紹武天子)가 광주에서 대통을 이어받게 되 지 않았소이까? 그런데 그때 계왕은 군사를 보내 소무천자를 공격했소. 모두가 태조황제의 자손인데 청나라 오랑캐를 공격하지 않고 한편 끼리 싸우게 되었으니 이야말로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겠소?" 백한풍은 노해 말했다. "그 노적의 말투 역시 그대와 똑같았소. 그러나 도대체 그 누가 먼저 시비를 일으켰느냔 말이오. 우리 영력천자께서는 순순히 사신을 광주로 파견하여 당왕에게 존호를 버리도록 명했소. 당왕은 비단 성지를 받들 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사를 일을켜 천명에 항거했소. 당왕의 이와 같은 행위는 분명히 윗사람에 대한 반란이며 대역무도한 짓으로서 그야말로 원흉이라 할 수 있소." 번강은 냉소했다. "삼수(三水) 일전을 벌이게 되었을때 불초 역시 참가하고 있었소. 그런 데 어느 쪽의 전 군사가 멸망을 당하게 되었소?" 백한풍은 크게 노한 듯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날카롭게 외쳤다. "당신은 엣날 빚을 셈하자는 것이오?" 위소보는 번강의 말을 듣고 삼수 일전에서 당왕이 이기고 계왕이 졌다 는 것을 알고느 재빨리 물었다. "번형, 삼수일전은 어떻게 싸운 것이죠?" 번강은 말했다. "계왕이 간신들의 교사를 받고 임계정(林桂鼎)이라는 사람을 시켜 군사 를 거느리고 광주(廣州)를 공격하게 되었소...." 소강은 불쑥 그 말을 받았다. "번형, 그말은 사실과 다르오. 그것은 먼저 당왕이 군사를 보내 조경 (肇慶)을 공격했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영력천자 께서는 부득이 군사 를 일으켜서 응전을 하게 된 것이오." 상황은 너나 할것 없이 모두 다 엣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게 되었고 점 차 쌍방은 팽팽히 맞서게 되어 금방이라도 손을 쓸 것 같았다. 요춘이 이 때 연신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몇년전의 옛일은 들먹여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누가 이기고 지든 간에 영광스러운 일은 못되오. 그리고 최후로는 역시 오랑캐에 의해 멸 망당하지 않았소!" 뭇사람은 그 말을 듣고는 그만 입을 다물며 하나같이 부끄러운 빛을 띠 었다. 소강은 말했다. "백 둘째 아우, 대의를 따지는 것은 한사코 끝까지 따져야 하는 일이 아니겠나. 그래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는가?" 백한풍은 말했다. "그 노적의 말은 이...... 이 번씨라는 협사와 똑같았소. 따라서 우리 형제 두사람은 자연히 그와 모든 것을 명백하게 분석해 보이려고 했소. 그런데 쌍방은 말을 하면 할수록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그 어느 쪽에서 도 양보하지 않았소. 형님은 그만 크게 화가 나서는 일장으로 탁자를 내려쳐 박살을 내고 말았어요. 그러자 노적이 냉소를 쳤답니다. '도리 를 따져서 이기지 못하자 손을 쓰겠다는 것이오? 목왕부의 백씨상목의 위명이 크게 떨쳐지고 있는 반면 나는 천지회의 일개 무명소졸에 불과 하지만 결코 두려워할 내가 아니오. ' 이 몇마디 말은 그가 천지회의 일개 무명소졸이지만 목왕부에서 명성을 떨친 인물보다는 낫다는 수작 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형님은 말했소. '내 스스로 우리 집안의 탁자를 때려 부셨는대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오? 그대는 말로써 목왕 부를 모욕했는데 도대체 무슨 세력을 믿고 그렇게 나오는 것이요?" 따 라서 쌍방은 말을 할수록 팽팽히 맞서게 되었고 끝내 그날 밤 자시에 천단(天壇)에서 무공을 겨루기로 약정을 하게 되었소." 소강은 한숨을 내쉬며 침울히 말했다. "원래 이 분쟁은 그렇게 돼서 일어난 것이군." 백한풍은 말했다. "그 날 밤 우리 모두 천단으로 갔소. 그리고 몇 마디 말을 나누지 않고 그 노적과 손을 쓰게 되었소. 위소보는 말했다. "아마도 이제 일이 되겠군. 그런데 백대협이 먼저 공격한 것이오? 아니 면 백이협이 먼저 나선 것이오?" 백한풍은 얼굴을 붉히며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형제 두 사람은 언제나 손을 합쳐 사웠소. 한 사람을 상대해도 두 사람이 일제히 덤벼들었고 백 사람을 상대해도 두 사람이 일제히 달 려들었소."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보니 그랬었ㅁ군. 만약 나 같은 어린애와 손을 쓴다 해도 그대들 두 형제는 역시 함께 손을 쓰겠군." 백한풍은 노해서 일장을 들어 위소보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소강 응ㄴ 왼손을 뻗쳐 백한풍의 손목을 잡고는 말했다. "백 둘째 아우, 안 되네. 백한풍은 부르짖었다. "이...이 꼬마가 죽은 형님까지도 비웃는 것이 아닙니까." 위소보는 입을 잘못 놀려 그만 죽은 백한송까지도 비웃는 결과를 만들 ㄹ게 되었고 백한풍이 또 그처럼 미친 듯 날뛰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감히 다시는 말을 하지 못했다. 소강은 말했다. "백 이제, 원한에는 원수가 있고 채무에는 빚장이가 있듯이 그 서가가 백 큰 아우를 해쳐 죽게 됐으니 우리들로서는 그 서가를 찾아 따질 수 밖에 없네." 백한풍은 매섭게 위소보를 향해 말했다. "언젠가는 내 그대의 근을 뽑고 가죽을 벗겨 놓겠다." 위소보는 그에게 혀를 낼름 내밀어 보였다. 소강이 옆에 있는 한 백한 풍이 자기를 어떻게 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정말 근을 뽑고 가죽을 벗긴다 하더라도 어쨌든 오늘은 그럴 수 없으리라고 판단되었 다. 번강은 이때 말했다. "소 네째형, 그대는 백대협이 우리 서형에게 해침을 받고 죽었다고 말 씀하셨는데 그 해침을 받았다는 말은 아무래도 조금 더 고려를 해 봐야 겠읍니다. 백이협은 상방이 천단에서 무공을 겨루게 되었고 서형이 혼 자서 두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니 어떤 음모나 독계를 쓴 것도 아 니고 또 많은 사람의 수로서 이긴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공명정대하게 손을 써서 초식을 겨루었을 뿐인데 어찌하여 해쳤다는 말을 할 수 있 소?" 백한풍은 노해 말했다. "우리 형님은 물론 그 노적에게 해침을 받아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죠. 우리 형제 두 사람은 천단으로 약솔을 이행하러 가기 전에 먼저 상의 한 적이 있었소. 우리 형님은 말했소. "그 늙은이의 두뇌가 멍청하고 천명(天命)이 이르는 곳을 모르고 있지만 역시 반청복명의 동도이니 무공을 겨루게 되었을 때 반드시 천지회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손이 닿 는 것으로써 그쳐야지 정말 그에게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고 말했소. 그래서 우리 두 형제는 사정을 두었던 것인데 그 노적이 악독하게도 살 수를 써서 우리 형님을 해쳐 죽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소." 소강은 물었다. "그 서가는 어떻게 하여 백 큰 아우를 해쳐 죽게 했는가?" 백한풍은 말했다. "우리는 손을 쓰게 돠어 사십여 초를 교환하게 되었으나 승부를 낼 수 가 없었소. 그러자 그 노적이 테두리 밖으로 물러서더니 두 손을 맞잡 고 입을 여는 것이었소이다. '탄복했소이다.탄복했소이다. 오늘은 승부 를 내지 못했으니 그만 겨루기로 합시다. 목왕부의 무공은 천하에서 이 름이 난 것, 정말 고명하오'라고" 번강은 말했다. "그건 좋은 일이 아니겠소? 모두들 싸울 것도 없고 서로의 감정을 해치 지도 않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 아니겠소?" 백한풍은 노해 말했다. "그대는 그 노적이 말할 때의 표정을 보지 못했으니 그런 말을 한 것이 지 정말 그가 호의 로써 그와 같은 말을 한 줄 아시오? 그는 입가에 미 미하게 냉소를 띠우고 있었소. 그것을 분명히 목왕부의 백씨쌍목이 두 사람으로써 한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자기 늙은이 한 사람을 이기지 못 한다 그러니 무공이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는 말은 그저 하는 소리에 불 과하다는 식으로 비웃고 있던 것이 ㅌ림없었소. 그리하여 나는 속으로 화가 나서 말했소. '승부를 내지 못했으면 승부를 낼 때까지 싸웁시 다.' 그 노적은 민첩했으나 지구력은 결코 우리 형제에 비길 바가 못 되어 오래 싸우게 되면 반드시 지게 될 판이라 싸움을 그만 두고 그 기 회를 빌어 뺑소니를 치자는 것이었소. 그러나 내가 그와 같이 말을 하 자 우리는 다시 싸우게 되었고 한참 동안 싸우게 되었을 때 나는 용등 호약(龍騰虎躍)이라는 일초를 펼쳐 공격을 했소. 그 노적은 아니나 다 를까 몸을 옆으로 기울여서는 비스듬히 피하고자 했소. 이 일초는 우리 형제가 익숙하게 연마한 것으로서 형님은 곧바고 횡소천군(橫掃千軍)이 라는 일초를 써서는 왼쪽 다리로 오른쪽을 향해 비로 쓸듯 그의 아랫도 리를 걷어찼으며 오른손으로는 왼쪽을 향해 옆으로 쳐내려가 그로 하여 금 피할 수 없도록 만들었소." 거기까지 말한 그는 횡소 천군이라는 일초를 시늉해 보였다. 현정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일초로 좌우를 협공하니 상대방으로서는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피할 숭 없었을 것이니 정말 두려워겠군." 백한풍은 말했다. "그 노적은 몸을 움츠리더니 갑자기 형님을 품 속으로 부딪쳐갖소. 형 님은 두 손을 뒤집어 그의 가슴팍을 살짝 누르면서 말했소. '하하하 그 대가 졌소...' 바로 이때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 노적은 악랄하게도 중수법(重手法)을 펼친 것이요. 나는 형세가 잘못된 것을 보고 고산유 수(高山流水)라는 일초를 펼쳐 두 손을 차례로 그 노적의 등심을 후려 치게 되었소. 그 노적은 몸을 흔들거리더니 물러나게 되었소. 이 때 형 님은 이미 입으로 선혈을 뿜어 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소. 나는 몹시 초조해서 재빨리 형님을 부축했는데 그 노적은 헛읏음을 몇 번 웃더니 절룩이며 떠나고 말았소. 나는 본래 뒤쫓아가서 몇 대의 주먹을 더 가 격하여서는 그 자리에서 그를 쳐 죽일 수도 있었으나 형님의 상처를 돌 봐야 하기 때문에 그 노적을 상대할 여유가 없었소. 그리하여 형님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형님은 도중에서 자기의 원수를 갚아달 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는 숨을 거두었소. 소 네째형... 우리가 이 원한 을 갚지 않는다면 사람 노릇을 할 수 없을 것이외다."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는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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