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니힐리즘
박인정
하이데거는 서양 역사를 니힐리즘(Nihilismus)의 역사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니힐리즘의 역사는 형이상학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하이데거는 니힐리즘의 니힐을 ‘존재의 없음’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존재 없음에서 '존재'는 모든 존재자의 존재의미를 말한다.
하이데거는 니힐리즘의 니힐(nihili)이 '존재 없음'임을 증명하기 위해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적 과정을 고찰한다.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의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형이상학의 역사는 모든 존재자의 존재 의미가 망각된 존재론의 역사로 규정한다. 즉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은 '존재자란 무엇인가?'라는 존재자의 궁극적 근거에 대한 해답만 있을 뿐 모든 존재자의 존재의미를 설명하지 못하는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존재망각'의 형이상학은 니힐리즘의 궁극적 원인으로 형이상학 속에 펼쳐지는 존재망각의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할 때 니힐리즘은 극복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이데거는 ‘존재망각’이라는 형이상학의 이러한 역사는 형이상학 자신의 근본 구조 속에 잘 노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형이상학은 존재자로서의 존재자 전체의 진리로써 사유되는 것이라고 말한다.(숲길p.310) 형이상학 속의 이러한 존재자 전체의 사유는 이분법적 구조를 가진다. 이분법적 구조의 이러한 사유는 모든 존재자를 존재와 존재자로 나누고 존재가 모든 존재자를 규정하고 질서지우는 그런 구조이다. 존재자를 질서지우고 규정하는 존재는 형이상학의 역사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플라톤의 '이데아', 데카르트의 '코기토', 헤겔의 '절대정신',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형이상학의 근본구조 속에 드러나는 존재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의 다양한 모습을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 전까지의 기점과 데카르트로부터 니체까지의 기점을 기준으로 존재망각이라는 일관된 형이상학의 구조로 규정한다.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의 역사적 과정을 두 기준의 기점으로 나누는 것은 존재가 모든 존재자를 규정하는 방식과 존재자체의 모습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플라톤에서 시작해서 데카르트 전까지의 형이상학은 존재가 모든 존재자를 초월하여 존재하며 이러한 초월적인 존재의 특징을 통하여 모든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모든 존재자를 모방의 방식으로 규정하며 신으로서의 존재는 모든 존재자를 창조의 방식을 통하여 규정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 전까지의 형이상학은 그 존재의 다양한 모습과 존재자를 규정하는 방식이 다를지라도 모든 존재자의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지 못했다는 존재망각의 역사 속에 일관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데카르트로부터 니체까지 근대의 형이상학 속의 존재는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도 아니며 초월적인 방식으로 모든 존재자를 규정하지도 않는다. 근대의 존재는 인간자신이다. 근대는 인간이 주체로서 모든 존재를 의식 속에 대상화함으로써 표상된 존재로 규정한다. 즉 주체로서의 존재는 주체의 의식 속에 들어온 존재만이 존재로 규정된다. 의식 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존재자는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근대의 이러한 주체로서의 존재도 모든 존재자의 존재의미를 규정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존재자의 존재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란 무엇인가'라는 존재자의 근거를 규명하는 존재론의 역사이며 이러한 역사 또한 존재망각이라는 형이상학의 동일한 영역 안에서 규정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존재망각이라는 형이상학의 구조 속에서 왜 니체를 형이상학과 니힐리즘의 끝으로 보는가? 하이데거가 니체를 형이상학과 니힐리즘의 완성자로 보는 것은 존재를 가치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니체 이전의 형이상학이 불완전한 방식으로 존재자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 니체는 모든 존재자를 가치로 변화시킴으로써 모든 존재자의 존재자체를 없애버렸다고 말한다. 즉 하이데거는 니체가 힘에의 의지의 삶을 유지하고 고양시키기 위한 것만이 가치이며 이러한 가치로만이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함으로써 모든 존재자의 존재의미를 없애버렸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의 모든 존재자의 존재의미를 가치로 변화시킨 니체를 형이상학의 완성자라 말하며 이것은 또한 존재의 완전한 망각이므로 니힐리즘의 완성자라고 봄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