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은 피/가해로 다루고 어떤 사건은 동등한 주체들의 갈등으로 다뤄야 하는지, 피해호소인과 가해지목인은 어떻게 적절히 대하며, 사건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가장 궁금했고, 고민이었다. 물론 이런 궁금증을 공부로 해소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했다. 피해자 지원 가이드북을 만들고 갈등 관리 프로세스를 짜고 가해자 상담과 교육까지를 오래 고민해 온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남긴 자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엔 나의 어떤 경험을 피해와 폭력으로 '정체화'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해자를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결국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피해와 가해를 다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세상에는 '완전한 회복과 배상'이 있을 수 없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제대로 사과할 사람이면 애초에 그러지도 않았다"는 말의 함정이 뭔지, "진심어린 사과만 해결된다"는 말 뒤에는 어떤 것들이 숨어 있고, 간과되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예를 들면 완전한 사건의 종결 방식의 하나로는 '인정, 사과, 사죄, 배상'하지 않는 가해자를 죽이는 것' 이 있을 수 있다. "아버지의 원수!"를 외치며 가해자에게 칼을 꽂는 방식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포함한 많은 서사 창작물을 참조하고 나와 내 주변의 많은 경험들을 들여다 보면, 그것조차 온전한 답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모든 불가능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후, 피해 경험 그 후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했다.
컴퓨터 파일을 지우듯 어떤 경험을 깔끔하게 삭제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경험 이전'의 사람이 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