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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1: 19 죽은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 ( 하 ) - 히 11: 22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21) 빚진 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기를 힘써야 한다. (마 18: 23-24)
(22) 포도원 품꾼
하나님은 계속하여 죄인을 성도로 부르신다. 이때 성도는 남과 비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구원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구원을 주심과 상급을 주심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이다. (마 20: 1-16)
(23) 두 아들
구원은 형식적 눈물이 아니라 회개와 실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특히 유대인의 율법주의와 이방인의 회개를 암시한다. (마 21: 28-32)
(24) 불의한 농부
복음을 거절하고 무시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심판이 있다. 특히 유대인의 율법주의와 이방인의 회개를 암시한다. (마 21: 33-41)
(25) 혼인 잔치의 초청
하나님의 구원초청이 처음엔 호소처럼 계속되나 끝내 거절한 자 및 준비치 않은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 (마 22: 2-4)
(26) 싹난 무화과나무
말세가 가까울 때에 성도는 시대적 특징을 분별할 수 있다. (마 24: 22-23)
(27) 열 처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의 천국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 평소의 계속되는 준비가 필요하다. (마 25: 1-13)
(28) 달란트
인간에게는 각기 고유한 능력과 한계가 있다. 하나님은 그 공적의 결과가 아니라 맡은 바 직분대로 열심을 다한 정도에 대하여 상급과 심판을 행하신다. (마 25: 14-30)
(29) 양과 염소
현재는 선과 악이 무원칙하게 혼돈된 것 같으나 훗날에는 확연히 구분되고, 그에 따른 심판이 있다.
(마 25: 31-36)
(30) 식물의 성장
인간의 눈으로는 안보이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계속 진행되어 세상 끝날이 마침내 온다. (막 4: 26-29)
(31) 깨어 있는 문지기
늘 깨어 일할 것과 아울러 재림의 급박성을 경고해 준다. (막 13: 34. 눅 12: 35-40)
(32) 두 빚진 자
중한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으며 오히려 그들이 더 감사할 것이다. (눅 7: 41-43)
(33) 선한 사마리아인
신앙 및 인격의 가치는 외적 신분이나 계급이 아니라 그 순수성과 실천으로 평가된다. (눅 10: 30-37)
(34) 밤중에 찾아온 벗
하나님은 열심히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눅 11: 5-8)
(35) 어리석은 부자
영생을 준비하지 않고 이 세상 생활에만 집착하는 자는 어리석다. (눅 12: 16-21)
(36) 선한 청지기와 악한 종
재림은 분명하므로 당장 심판의 위험이 없다고 태만하지 말고 평소에 맡은 바 직분에 성실하라. (눅 12: 42-48)
(37) 열매 없는 무화과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나 복음을 받아들여 그 열매를 맺지 않은 자는 철저히 심판하신다. (눅 13: 6-9)
(38) 높은 자리
겸손은 세상적 미덕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유한 자로서 성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눅 14: 7-14)
(39) 망대 건축
주의 사역을 하기 전에 미리 세밀한 계획과 결단이 요구된다. (눅 14: 28-30)
(40) 전쟁하는 왕
성도는 영적으로 세상과의 전투를 수행하는 자인 바 자기 점검이 요청된다. (눅 14: 31)
(41) 잃어버린 드라크마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연약한 여자가 잃은 재산을 찾는 심정처럼 뜨겁다. (눅 15: 8-10)
(42) 탕자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영접하신다. (눅 15: 11-32)
(43) 불의한 청지기
죄인도 세상 일에는 갖은 지혜와 꾀를 내는데, 성도는 하나님의 일에 더욱 자신의 능력을 다하며 특히 지혜를 다하여야 한다. (눅 16: 1-9)
(44) 일하는 종
성도는 조그만 일을 하였다고 상급을 바라기 전에 그것이 마땅한 의무임을 깨달아야 한다. (눅 17: 7-10)
(45) 과부와 재판관
끈질기게 기도하는 자에게는 분명한 응답이 있다. (눅 18: 2-5)
(46)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참 모습을 깨달은 자만이 결국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눅 18: 10-14)
(47) 열 므나
동일한 구원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은 각자의 열매에 따라 상급을 주신다. (눅 19: 12-27)
(48) 선한 목자와 양
성도와 예수의 관계는 절대 사랑과 절대 의존의 관계이다. (요 10: 2-5)
(49) 포도나무와 가지
인간은 오직 생명과 구원의 주이신 예수 안에서만 참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다. (요 15: 1-6)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삭이 제물로 바쳐진 사실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상징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Bruce) '엔 파라볼레'는 본 절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예시'임을 암시한다(Lane).
아브라함이 정작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쳐들었을 때(창 22: 10) 그에게 있어서 이삭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Bruce).
그러나 그 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그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었다.
히 11: 20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라.'고 말했고(창 27: 29) 에서에게 '네 아우를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
야곱도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 오른손을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머리에 두고 왼손을 첫째 아들 므낫세의 머리에 두었는데, 그것은 그의 믿음의 행위였다.
1]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은 이삭에게 그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창 26: 2-5). 이삭은 장차 이루어질 이 약속의 축복을 그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해 주었다(창 27: 27-29,39,40).
이 때 합법적인 축복의 상속자는 맏형인 에서였으나 야곱이 속임수로 그 축복을 가로챘으며 에서는 그 나머지 축복을 받아야 했다(창 27: 39-40).
저자는 이러한 부당성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는 이삭이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두 아들에게 축복하였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삭의 이러한 행위는 믿음의 본질, 곧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절)라는 것에 대한 실증적인 예(例)에 해당한다(Bruce).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실이 비합법적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실을 나중에 이삭이 알게 되었을 때 그 축복을 무효화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 33)고 야곱을 인정해 주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창 25: 23).
히 11: 21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
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본문은 20 절과 마찬가지로 족장 야곱이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아들들에게 축복하였음을 나타낸다(Morris).
야곱은 자신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였다(창 48: 13-20).
이 때 요셉은 장자의 축복을 장자인 므낫세가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야곱은 팔을 어긋나게 하여 오른손으로 차자인 에브라임 머리에 얹고 왼손으로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어 장자의 축복을 차자에게 해주었다(창 48: 14, 19-20).
이러한 사실은 장자에게 축복과 혜택을 부여하는 인간의 관습에 구애됨 없이 하나님은 그의 주관대로 뜻을 이루는 분이심을 시사한다.
2]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본문은 창 47: 31(LXX)의 인용이다. 맛소라 본문(MT)에는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지팡이'와 '침상'이라는 두 가지로 번역이 되는 것은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mth)가 모음을 붙이기에 따라 '말테'(matteh, 지팡이)로 읽을 수도 있고 '밑타'(mittah, 침상)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본문은 70인 역이므로 전자를 택하고 있다.
야곱이 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는 것은 지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9, 13절)같이 살았던 그의 삶을 특징짓는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지팡이는 순례자의 상징적인 물건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Michel).
히 11: 22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
요셉도 믿음으로 임종 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증언하며 그때 자기 해골도 그곳으로 옮겨줄 것을 부탁하였다(창 50: 24-25).
1]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본문은 창 50: 24-25의 내용에 대한 인용이다.
* 창 50: 24-25 –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마침내 선조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과 그 때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갈 것을 유언하였다.
* 출 13: 19 –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 수 24: 32 –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이러한 사실은 요셉의 믿음을 잘 예증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선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내려온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고 확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이는 요셉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믿음을 소유하였음을 시사한다.
히브리서 11: 8-22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실 때 그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가는 길은 미지의 길이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가 명하시는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야만 한다.
둘째, 성도는 천국을 사모하자.
믿음의 족장들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실 성을 사모하였다.
그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이 자신을 생각했고 하늘에 예비된 참된 본향, 즉 천국을 사모하였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마지막 목적지, 우리의 최종적 목적지는 천국이다.
주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 2-3).
요한계시록 21: 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우리는 그 천국을 사모하자.
셋째, 성도는 사라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자.
사라는 나이가 많아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아들을 잉태하는 힘을 얻었고 그 아들을 출산하였다.
넷째, 성도는 아브라함처럼 부활 신앙을 갖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것은 그가 죽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그의 부활 신앙을 증언한다.
우리는 죽은 성도의 복된 부활과 영생을 확신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다섯째, 성도는 이삭과 야곱, 요셉처럼 축복의 복음을 전하자.
이삭은 에서와 야곱에게 장래 일로 축복하였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예언적 축복을 하였으며, 요셉은 출애굽을 예언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을 포함하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은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들을 굳게 믿자.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의 축복을 우리의 영원한 양식으로 삼고 이를 온 세상에 널리 알리자.